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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 삶의 본질과 정수(精髓)를 담아내는 여덟 개의 시각

하계훈



하계훈(미술평론가)


오늘날 지구촌 세계에서 우리의 생활은 과거에 비해 시간과 공간의 차이가 급격하게 좁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예전에 외국에 사는 가족이나 친지와 접촉할 수 있는 방법은 극히 제한적이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서로가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격리감을 심하게 느꼈었다. 그래서 그들 사이에는 공간의 거리만큼이나 생활환경과 경험, 사고 등등의 불일치가 시간이 감에 따라 더욱 심화되었었다. 이러한 불일치는 공간의 격리에서도 오지만 그 나라나 지역의 역사적 전개 측면에서 다른 지역과 성장의 속도에서 차이가 나는 데에서도 기원하였다. 이러한 불일치에 의해 도시와 농촌의 차이가 생겨났고, 좀 더 크게는 소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차이가 크게 벌어졌었다.


하지만 산업화 사회를 넘어 정보화사회에 들어선 오늘날 이러한 차이는 점차 줄어들고 마침내 순간의 차이, 혹은 차이를 발견할 수 없는 동시화(同時化)의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 이제는 멀리 떨어진 지역과 이곳 사이의 차이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먼 곳에서 발생한 사건 소식이 바로바로 전달되고 비슷한 상품이 동시에 소비되며 같은 영화가 동시에 개봉되는 등등, 이제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지역들이 같은 문화와 정보를 거의 동시에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동시화의 시대에 우리 미술계도 과거의 사고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발견된다. 그러나 아직 과거의 모습에 머물러 있는 사실 가운데 하나는 회화의 장르에 대한 구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아직도 서양화와 한국화를 구분하여 미술대학 학생들을 모집하고, 전시회를 개최하고 미술연감을 작성하고, 작품을 평가한다. 물론 한국적(동양적)인 재료가 주는 특성이 일반화될 수는 없지만 반대로 이를 엄격하게 분리할 필요도 없다. 어떠한 재료를 사용하든 간에 회화는 그저 회화인 것이다.


이번에 전시를 갖는 8인은 이러한 한국미술교육제도에서 한국화 박사과정에서 연구를 하고 있는 작가들의 그룹전에 참여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공통점은 한국적인 재료를 중심으로 작업한다는 점이고, 이번 기회에 함께 작업하는 서로간의 작품에서 공통점을 찾는 데 있어서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번 전시의 참여자는 동덕여대의 박사과정 졸업생과 재학생이 주축이 되어 진행되었다. 참여 작가들은 각자의 개성과 지향점을 크게 수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시회를 함께 개최함으로써 서로간의 작품을 교차하여 나누며 다른 작가의 작품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상대적 비교의 맥락에서 읽어보는 기회를 갖게 된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오랜 기간 다루어 온 먹과 종이를 바탕으로 하면서 작가에 따라 부분적으로 아크릴이나 백토, 금박과 금분 등의 재료를 도입하기도 하지만 재료를 떠나서 이들이 화면 안에 담아내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삶을 둘러싼 생명의 문제나 자연, 그리고 그를 통한 치유와 명상 등 종교적 함의와 동양적인 사유를 바탕으로 하는 주제들을 표방하고 있다.
김주령은 ‘인간의 근본’이라는 거대 명제를 천착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수조 속의 물고기와 인간의 유사점을 발견하고, 그로부터 삶의 의미와 치유의 가능성을 추구하는 채색화를 시도한다. 그리고 고은주는 꽃잎의 표현을 통해 모성과 생명력의 아름다움을 읽어내고 있다. 이들은 서양에서 북유럽 낭만주의 예술가들이 자연의 장엄함으로부터 초월적인 존재와 생명을 읽은 것처럼 자연과의 밀착된 조우와 관찰에서 생명과 치유를 읽어내고 있다.


서수영은 비단에 금박금니 채색을 통하여 불상과 보살상 불화를 정교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얼핏 전통적인 불화 표현으로 보이는 화면 속에는 숨은 그림 찾기처럼 공상과학 영화의 한 배경 장면같은 우주의 표현이 깃들여져 있다. 이러한 태도는 종교와 과학의 조우라는 해석이 가능하며 우주를 포함한 자연의 만물에서 구원과 치유를 구하는 애니미즘의 확대된 해석이 불교신앙과 접점을 형성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자연을 모티브로 삼은 구모경, 안종임, 유희승은 수묵과 채색을 통해 자연과 인간을 탐구한다. 구모경은 수묵을 통해 자작나무와 같은 자연을 탐구함으로써 추상적 조형을 이끌어내고 있으며, 안종임은 ‘사람이 곧 자연’이라는 명제를 시각화하기 위하여 풍경을 인체와 중첩시키는 채색화를 시도한다. 유희승은 흔히 '天 地 人' 이 하나로 수렴하는 일치의 경지를 추구하는 석도(石濤)의 일획에 의한 자연과 인간 혹은 ‘주체와 객체의 합일’을 추구하는 선으로 인물의 연속동작같은 움직임을 묘사한다.


마지막으로 신학과 장은우는 자연이나 일상의 환경에서 좀 더 구체적인 기억과 치유를 추구한다. 신학은 작년 봄에 발생한 불행한 해상사고인 세월호를 모티브로 하여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작품을 한지 설치작업으로 표현했으며, 장은우는 평범한 일상의 공간에 스며있는 서정성과 추억을 상기시키는 작품을 통해 낯설지만 익숙한 양가적 공간에서 개인적인 기억을 되살려 우리의 삶의 터전을 공감하게 해준다. 


이처럼 8명의 작가들은 각각의 예술세계를 전개시켜 나아가면서 기본적으로 먹을 사용하여 필선과 표현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확립해나가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때로는 절제되고 단순화되지만 심상의 정수를 표현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정밀한 선과 점묘를 통하여 대상에 생명을 불어넣기도 하지만, 여덟 명의 작가가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예술적 화두는 생명과 자연이라는 우리 삶의 근본적인 본질과 정수(精髓)라고 볼 수 있다. 


우리의 삶은 평범하다. 그러나 그 평범함이 위대한 것은 예술가들이 마음의 눈으로 그 삶을 바라봐주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말한 것처럼 음악은 예술이지만 그 예술의 용도가 꼭 예술을 위한 것일 필요는 없다. 마찬가지로 미술도 예술이지만 그 예술의 용도와 지향점이 예술 그 자체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미술이 지향하는 지향점은 우리 자신들과 또 다른 우리들인 우리 이웃들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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