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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과 초콜릿, 커피의 역설적 맛과 향

하계훈




하계훈(미술평론가)

오미라는 극사실적 묘사를 통해 사물의 형상을 우리들에게 전달한다. 그녀가 그리는 대상은 달콤한 막대사탕에서 시작하여 커피와 초콜릿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먹거리들은 달콤하고 향기롭다. 어린 아이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맛과 향의 유혹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달콤함과 은은한 풍미가 화면에 담겨있다.


이번 작품들은 오미라가 이러한 소재들을 동물의 이미지와 결합하고 있는 장면으로 구성되었다. 기린, 홍학, 곰, 너구리 등 다양한 동물들은 사탕과 초콜릿, 커피 등과 어울려 나란히 화면에 등장하는데, 그 동물들은 컬러 프린터로 출력한 종이를 오려서 만들어낸 오브제들이다. 사실적인 모습의 동물의 내부는 텅 빈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종이로 만들어진 오브제로서 쉽게 구겨지거나 불에 타버릴 수도 있는 불완전한 존재인 것이다. 이는 마치 동물보호론자들이 주장하는 멸종위기 동물들을 위한 자연보호운동의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오미라의 작품은 작가의 설명이 없이 감상할 때는 지극히 기법적으로 정교하고 도상적으로도 아름답기까지 하다. 색채 역시 밝고 화려한 톤으로 표현되어 이러한 분위기를 더해준다. 그리고 일부 작품에서는 화면 밖 관람자를 향해 맑은 눈망울을 반짝거리는 동물들의 모습이나 화면 한가운데 커다랗게 자리잡고 있는, 잘 알려진 다국적기업인 커피회사의 커피 컵 등으로 인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사랑스런 감정과 아늑함이니 여유로움을 떠올리게 한다. 한마디로 오미라의 작품 속 세계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향기롭고 달콤하다. 


하지만 작가는 이러한 이미지들을 통해 우리들이 살고 있는 자본주의사회의 치부를 고발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아낸다. 작가는 국제사회에서 자본의 논리에 의해 지역간의 빈부의 격차가 더욱 심해지는 현실에서 기아와 빈곤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고통에 주목한다. 그들의 저렴한 노동력에 의해 다른 이들이 안락함을 취하는 현실에 대해 작가는 공정한 무역 거래와 이를 통한 빈곤의 극복을 꿈꾼다. 작가는 이러한 공정한 거래의 중심적인 품목으로 커피 원두와 설탕, 카카오를 선택했다. 


다시 작가의 작품으로 돌아가보면 우리는 동물들의 발치에 녹아내린 사탕이나 그들이 밟고 있는 금화 모양의 초콜릿, 그리고 마치 써커스의 조련사가 그들을 받침대에 올려놓은 것처럼 커피 종이컵 위에 올라 앉아 관람자를 올려다보는 동물들의 모습에 함축된 의미를 다시 한 번 읽어볼 수 있을 것이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미를 추구하는 것을 기본적인 사명으로 여기며 작업해 온 오랜 역사는 근대 시민사회의 등장과 아카데미즘의 쇠퇴에 의해 차차 무너져 내렸다. 화면 속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기본적인 속성은 부정할 수 없지만, 이제는 그 아름다움의 기준이 다양화되고 때로는 새롭게 설정되기도 한다. 군주의 근엄함이나 귀부인의 우아함이 주는 아름다움 못지않게 현실 속의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도 아름다울 수 있으며 더 나아가 밀레의 농부에서처럼 때로는 종교적 차원의 엄숙함 마저 읽어낼 수도 있다. 


오미라의 작품에서는 동물로 상징되는 자연 혹은 저개발 국가의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세뇌에 의해 촉발된 일부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 때문에 고통받거나 생활의 위협을 받는 현실이 은유적으로 담겨있다. 다만 그 표현 방식이 직설적이지 않음으로써 우리들의 무관심을 살짝 꼬집는 재치를 보여주지만 실제로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하는 메시지가 담긴 작품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번에 출품된 작품들 가운데 커다란 커피 종이컵을 가운데 두고 그 앞에 서있는 두 마리의 종이 홍학이 만들어내는 완벽한 좌우대칭의 이미지는 마치 고전주의 시대의 신전에서 벌어지는 종교의식처럼 보인다. 오늘날의 종교는 다국적 기업의 자본이요 그 앞에서 그 앞에서 경배의식을 치르는 동물들은 어쩌면 우리들의 심리적 노예의식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홍학들의 목선이 만들어내는 도형은 사랑을 상징하는 하트 모양으로도 읽힌다. 그렇게 작품을 읽어볼 때 저 홍학들의 다리가 유독 가늘고 힘들어 보이는 까닭은 아마 아직은 우리들에게 고통받는 타인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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