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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라는 이름의 자아를 바라보는 주/객체의 합일된 시선

하계훈


 


하계훈(미술평론가)


장선아는 작품 활동을 통해 조형적으로 아름다움이나 표현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한편으로 주제 면에 있어서는 우리 삶의 다양한 현상을 하나로 관통할 수 있는 통합적 원리를 도출하기 위한 사고를 숙성시켜왔다. 작가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하였지만 박사과정에서는 동양철학을 전공하여 주변 사람들로부터 의외라는 반응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작가 본인은 이러한 자신의 창작과 연구의 궤적이 전혀 특이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복잡다양해지는 현대미술의 생태계에서 성공적으로 생존하기 위한 작가로서의 필요한 자기 계발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박사과정에서 동양철학자 가운데 중국 청나라 시대의 화가이자 학자인 석도(石濤)를 연구한 장선아는 <화어록(畵語錄)>에서 석도가 말하고 있는 “일획(一劃)은 조형적인 선의 의미도 있고, 우주만물의 근원인 도(道)를 체득하는 것이기도 하며, 선(禪)적 깨달음을 바탕으로 하기도 하고 창작 전체 과정을 지도하는 원리이기도 하다. 즉 일획은 기존의 여러 연구 성과를 종합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자신의 작품 속에 도입하여서 그것을 실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처럼 장선아는 철학적 사유와 병행하여 진행한 창작과정을 전개해오면서 우리의 삶과 창작의 세계를 관통하는 종합적 원리로서 하나의 획과 같은 요소를 찾아내게 되는데, 작가는 이것을 ‘욕망’으로 정의한다. 그런데 작가가 작품을 통해 우리 삶의 기저(基底)에 흐르는 정서와 정신작용의 핵심을 욕망이라고 간파한 데 대해서, 사전 교감이 없이 장선아의 작품을 마주한 관람자들이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주제를 읽어내는 것은 쉽다고 할 수 없다. 다년간의 사유를 통하여 도출한 작가의 정신세계를 가시적인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것이나 그러한 형상화 과정을 관람자의 직관에 의존하여 소통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관람자가 수고스러움을 무릅쓰고 작가와의 대화를 거쳐간다면 작품에 투영된 작가의 의도와 생각이 드러날 수 있지만, 이러한 단계를 생략할 경우 관람자들은 장선아의 작품에서 오히려 조형적 완성미나 재료를 다루는 작가의 섬세한 손길과 감각적 세련미 등을 먼저 접하게 된다.


작품의 형식적인 측면에서 장선아는 자신이 주제로 채택한 인간의 욕망을 부풀어 오른 풍선의 형상으로 시각화해왔다. 초창기에 작가는 유명 회사의 초컬릿 제품을 풍선의 형상과 결합하고 차량용 특수 도료를 정교하게 입힌다든지, 여성의 복부와 남성의 복부 부분이 앞뒤로 붙어있는 토루소 형태의 조형과 풍선의 이미지를 결합하고 그 형태의 표면을 오묘한 색채로 채색한 작품 등을 제작하였다. 이러한 작품들을 통하여 작가는 외형적인 아름다움이나 풍요로운 볼륨감을 연상시켜주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금방이라도 터져나올 듯한 형상이 내포하는 내면의 갈등과 그 속애서 충돌하는 욕망의 카오스적 상태를 표현해냈다. 


이번 전시에서 장선아는 풍선의 볼륨감을 조형화한 작품들 중에서 부풀어 오른 풍선 위에서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는 듯한 자세로 웅크리고 있는 여성의 모습을 올려놓은 작품을 연작 개념으로 여러 점 소개한다. 형태상으로 부풀어 오른 풍선은 볼륨감과 긴장감을 유발시켜주며 의미상으로는 인간의 욕망의 위태로운 팽창을 가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욕망이라는 거대한 구조물 위에 웅크린 채 생각에 잠겨있는 듯한 인물은 욕망의 노예로서 삶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면서, 그러한 삶의 끝에서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는 회고와 반성의 자아, 혹은 욕망에 이끌리는 삶의 가치면에서 풍선에 앉아도 무게감을 전해주지 못할 정도로 내면이 공허하고 속이 빈, 그래서 풍선 위에 놓일 수 있는 자아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 인물의 얼굴 표정이 사실적으로 자세히 묘사되지 않은 것은 욕망과 유혹을 따라 살아온 자신의 모습에 대한 외면이자, 그로 인해 스스로의 삶으로부터 초래되는 허무와 고독에 애써 눈을 감는 인간의 초상인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풍선 위의 인물이라는 기본적인 조형을 흙으로 굽거나 브론즈로 성형하고 그 표면에 에나멜 도료나 철안료(metal paint), 카펫 재질감을 내는 안료를 분사하기도 하고, 채색된 표면을 연마하고 다시 채색과 연마를 수차례 반복하여 미묘한 표면 질감을 추출해내기도 한다. 이러한 작품들에는 사계절이나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나타내는 제목이 부여되는데, 받침대에 놓여서 조명을 받은 이 작품들은 주제를 넘어서서 조형적으로 다채롭고 아름답다는 느낌까지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작품들이 귀납적으로 수렴되는 것은 결국 우리의 삶, 그리고 그 삶을 지배하는 욕망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장선아는 이번 전시를 통해 이러한 표현을 넘어서서 작가와 관람자 사이의 소통과 교감을 유도하는 작품을 시도한다. 이번에 출품되는 일부 작품 앞에는 거울 형태의 프레임이 설치된다. 그리고 그 거울 표면은 이미지를 반사하도록 에나멜 도료가 발라지는데 그 표면은 고르지 않게 의도적으로 왜곡되어 있다. 그리고 그 거울같은 표면은 이미지를 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일부 텍스트를 표면의 뒤쪽으로부터 내비침으로써 관람자가 작품 앞에 서면 왜곡된 자신의 모습이 작품의 모습과 함께 비춰지면서 동시에 내부에서 드러나는 텍스트와 부분적으로 혼합되는 종합적 이미지를 만들어내게 된다. 작가는 이러한 작품을 통해서 결국 작품, 혹은 작품으로 형상화된 우리 삶의 모습이 대상화에서 타자와 자아가 동일한 하나로 융합되는 현상을 표현하고자 하였으며, 결국 이것은 그녀가 공부해온 석도의 ‘주체와 객체의 합일’ 유불도(儒彿道)가 하나로 귀결되는 원리로 설명할 수 있는 우리의 삶을 이미지화하는 시도라고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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