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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체적 난국

하계훈




하계훈(미술비평가)



국립현대미술관이 관장의 공석상태를 장기화하면서 미술관 내외부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떠돌며 괴소문 수준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작년 가을부터 전임 관장이 개인적 비리에 의해 직위해제된 뒤 자동적으로 임기가 만료되었고, 뒤늦은 신임 관장 선임 작업은 지난 3월에 마지막 단계에서 2명의 후보자로 압축되었지만 웬일인지 최종 결정을 앞두고 두 달이 넘도록 임명이 차일피일 미루어지고 있다. 혹시라도 이 글이 활자화되어 출판되기 전에 관장이 임명되는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그것은 시기를 놓친 김빠진 결정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관장의 직무대행을 해오던 기획운영단장은 다른 국가기관으로 전보 발령되었고 새로 미술관에 배정된 운영단장은 오자마자 관장 직무대행으로 업무를 시작하였다. 그뿐 아니라 이러한 어수선함 속에서 학예실장직을 수행하던 직원은 사표를 내고 지방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겨가버렸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맞고 있는 작금의 상황은 한마디로 총체적 난맥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술관장이 부재중인 가운데 기획운영단장과 학예실장이 다른 기관으로 가버리고, 새로 온 기획운영단장이 관장의 직무대행을 하고 있는 상황은 누가 보아도 염려스러울 수밖에 없다.


오늘의 국립현대미술관 사태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물론 직접적으로는 특정 개인의 불법적 행위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겠지만, 그보다 더 큰 틀에서 볼 때 국립현대미술관은 후기 산업사회를 넘어 신속한 정보사회로 전환된 우리사회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관료사회의 의식과 제도가 발목을 잡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의 문제점을 들여다보기 위하여 미술관 내부의 문제와 외부 환경의 문제로 나누어 생각해보자.


내부적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은 직원들의 전문성을 함양하는데 소홀히 해왔다. 전문연구자로서의 학예직원들의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는 평가제도도 없었기 때문에 일반 공무원으로서의 복무규정에 어긋나지 않는 학예직원이라면 계속 근무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들의 연구실적이나 전시기획 성과는 진지하게 평가된 적이 없다. 그러니 긴장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노력은 기대하기 어려웠고 질높은 성과도 도출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외부적 환경도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였다. 예술의 속성 가운데 중요한 것은 창의성과 가변성 혹은 자율성일 것이다. 따라서 국립현대미술관과 같은 예술기관의 운영은 이러한 속성을 가진 예술작품을 다루는 데에 걸맞는 전문성에 더하여 자율성과 창의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게다가 급속하게 변화하는 미술생태계는 최근까지 유효한 제도를 빠르게 비효율적이고 거추장스런 것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따라서 미술관의 운영은 가벼운 몸놀림과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한 제도의 유연성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하지만 우리 국립현대미술관을 움직이는 근거가 되는 법률과 규정은 전문성, 자율성이나 창의성을 보장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을 규제하는 법과 규정은 미술관이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게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서 미술관의 운영 과정에서 신속하게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전문성을 발휘해야 하는 사람과 실제로 의사결정권을 가진 사람의 불일치를 유발하는 법과 규정이 문제의 근원인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타지 못하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둔한 움직임을 보이는 데에는 미술관 내부 인력들의 자기책임도 있겠지만 실제적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을 통제하면서 미술관을 바라보는 행정 관료들의 비문화적인 의식과 태도,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의 행동 기준을 구하고 있는 법률과 규정의 시대착오적인 불일치와 비동시화(非同時化)에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요약하자면 오늘날 국립현대미술관이 처한 어지러운 상황의 원인은,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우리의 국립현대미술관을 규정하는 원칙과 그 원칙을 적용하는 인력들은 과거의 기준에 묶여서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데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국립현대미술관과 같은 문화예술기관의 운영은 경직된 사고로 이끌어 나아갈 수 없다. 게다가 우리나라만큼 관료사회의 경직성이 새로운 시대의 발목을 잡아왔다고 비난받아온 일본의 경우도 1980년대부터 ‘작은 정부’를 표방하며 정부기관을 축소하고 민영화하는 과정에서도 박물관과 미술관을 오히려 확대 강화시키고, 학예사들의 자질 향상을 위하여 교육과 연수를 충실히 하는 쪽으로 문화정책의 방향이 확대되어가고 있는 점은 우리 정부의 문화정책 운영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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