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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작가

하계훈

국립현대미술관이 1995년에 제정한 ‘올해의 작가’ 제도는 2011년까지 미술관의 학예연구직 전원의 추천과 토론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작가를 선정하는 방식에 의해 전수천, 윤정섭, 서세옥, 정연두 등 우리 미술계의 중추를 형성해 온 20여명의 우수한 작가들을 폭넓은 장르에서 배출하였다. ‘올해의 작가’ 제도는 2011년까지 수상 작가를 단독으로 선정하여 발표하였으나 2012년부터는 선발 방식을 수정하여 영국의 터너프라이즈처럼 수상 후보자들의 작품들을 일정기간 전시하면서 대중들에게 노출시킨 상태에서 SBS 방송과의 협업으로 예술계의 전문가들과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어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2012년부터 올해의 작가 제도는 발표 시점을 기준으로 한국미술계에서 가장 작품 활동이 두드러진 작가들을 2-4 배수로 선정해서 전시회를 개최하면서 전시회의 종료 무렵에 최종적으로 한 작가를 선정하여 시상한다. 후보에 오른 작가들은 SBS문화재단에서 지원하는 후원금 4000만원을 받게 되며 이들 가운데 최종적으로 선정된 작가는 이듬해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고, SBS에서 영상 다큐멘터리를 제작, 방영하는 등의 혜택을 받게 된다. 이밖에도 최종 선정된 작가는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가 1년간 밀착 담당하는 ‘전담 큐레이터 제도’에 의해 선정 이후의 프로모션의 혜택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후보 작가들을 선정하는 방식은 10인의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올해의 작가 발굴 및 추천단’의 추천에 의해 선정된 10명 정도의 작가들 가운데 국내 2인, 국외 2인,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의 관장으로 구성되는 심사위원회에서 최종 후보자를 결정하여 전시회를 열게 된다. 올해로 17회를 맞는 이번 전시는 이러한 기획 과정의 연장선에서 ‘올해의 작가상 2013’ 전에 참여할 작가로 공성훈(48)·신미경(46)·조해준(41)·함양아(45)를 선정하였으며 이들 작가들에게는 7월19일부터 10월20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본관에서 열리는 전시에 출품할 기회가 주어진다.


올해의 작가 제도는 상당 부분에 있어서 1980년대 중반부터 영국에서 실시되어 온 터너프라이즈를 모델로 삼고 있지만 터너프라이즈가 50세의 연령 제한을 두고 있고 후보자의 선정 기준을 지난 한 해의 작품 활동의 성과를 위주로 잡고 있는 것에 비하여 올해의 작가 제도는 작가들의 연령 및 장르를 제한하지 않으며 작가의 활동성과를 지난 한 해로 한정하지 않고 보다 폭넓게 잡고 있어서 이론적으로 볼 때 터너프라이즈보다 후보 작가군을 풍부하게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면서 단순하게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우열을 가려 등위를 부여하고 시상하는 제도는 유럽의 살롱제도나 이 제도가 모델이 된 동양권 국가들의 관전 성격의 공모전, 그리고 현대에 들어와서 다양한 문화예술 재단이나 기업 등에 의해 실시되는 공모전 제도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어떤 활동에 대하여 등위를 매기는 제도는 스포츠 활동 등에서 두드러진다.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 등으로 구분되기도 하는 스포츠 경기의 경우에는 시간의 빠르기나 점수 차이 등에 의해서 수치로 환산할 수 있는 변별력이 비교적 분명하기 때문에 결과에 대한 수긍이 잘 이루어지는 편이다.

그러나 예술 작품에 대한 변별력은 스포츠만큼 명확하다고 보기 어렵다. 예술작품의 가치는 지극히 주관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계수화된 평가 기준을 도입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이러한 어려움은 곧 선정 결과에 대한 공감대를 넓히는데 있어서 걸림돌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술 작품에 대한 선정과 시상 제도에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결과에 공감할 수 있게 공정하면서도 권위 있는 전문가들의 참여를 최대화하는 것이 제도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 있어서 국립현대미술관은 이제까지 미술관 내부의 학예직원들이 담당해 온 작가 추천과 선발의 업무를 국내외의 외부 전문가들에게 의존하는 방식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선정 결과에 대하여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편파성이나 객관성의 결여와 같은 잡음으로부터 미술관 내부의 인력들의 부담이 덜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함께 올해의 작가 선정 과정에서 내부 학예인력의 참여가 줄어들게 됨으로써 간접적으로 해당 인력들의 전문성에 대한 신뢰의 감소가 따르는 것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공정성과 전문성을 맞바꾸기 위하여 ‘올해의 작가 발굴 및 추천단’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의 학예인력들이 완전히 배제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 좀 더 진행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내부의 학예인력을 작가 추천과 선발 과정에서 배제시킨 이유 가운데 하나가 공공성과 공정성이라면 2012년부터 SBS와의 공동주최로 행사를 진행하여 작가를 홍보하고 후원금을 지급하는 방식은 이러한 공정성에 입각하여 행사의 내용을 보다 적극적으로 일반 관람객들에게 알려서 전시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장점과 함께 지난 17년간 국립현대미술관의 대표적인 업적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올해의 작가’ 제도의 성과를 외부의 단체 혹은 업체와 어쩔 수 없이 나누고 상업성과의 타협이 이루어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우려가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다. 


이 경우 공동주최자인 외부 단체의 성격이나 이미지, 활동의 내용 등에 의해서 이제까지 단독으로 진행해 온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 전시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협력 기관이 국립현대미술관보다 공적 이미지나 능력과 업적 등에서 월등한 역량을 가지고 있어서 두 기관의 협업으로 인하여 국립현대미술관이 예술계의 전문가들이나 대중들로부터 보다 나은 호응을 받을 수 있을 경우에는 양 기관간의 협업이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와 반대되는 경우에는 이제까지의 쌓아온 국립현대미술관의 업적과 신뢰, 그리고 기획 의도의 순수성이 변질되거나 행사의 효과가 감소되는 부작용이 일어날 수도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전 행사 개요에서 눈에 띠는 점은 최종 선정된 작가에 대한 전담 큐레이터 제도다. 그러나 최종 선정 작가의 결정과정에서 적극적인 역할이 배제되었던 큐레이터가 선정 작가를 전담하여 향후의 활동에 동반자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앞뒤가 잘 맞지 않는다는 인상을 준다. 좀 더 심하게 표현하면 전담 큐레이터는 작가 선정의 결과에 대해 뒤처리를 담당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어느 작가의 전담 큐레이터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그 작가의 작품 활동과 작품 세계에 대한 오랜 기간의 추적과 동행, 그리고 해당 작가의 작품과 관련된 담당 큐레이터의 심도 있는 연구의 성과물 등이 가시적으로 생산되어야 이 제도의 성공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작업이 선행되지 않으면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작가의 국내외 활동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2012년에 처음으로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문경원과 전준호 팀은 선정 이후 카셀 도큐멘타에 참가하는 업적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올 해 6월에 열린 베니스비엔날레에서는 한국관에 출품한 김수자 이외에 한국 작가가 한사람도 참가하지 못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물론 베니스비엔날레의 참가 여부가 절대적인 판단의 기준이 될 수는 없겠지만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한국 작가들의 부재 소식을 들었을 때 과연 현재의 방식으로 운영되는  ‘올해의 작가’라는 제도에 의해 선정되고 전담 큐레이터에 의해 도움을 받는 작가가 어느 정도 국제적 활동을 펼칠 수 있게 될 지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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