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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숙성된 관계의 사유

하계훈

작가 정해윤이 우리 곁에 다가와서 관심과 사랑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8년 무렵에 서랍과 그 위에 앉아 재잘거리는 듯한 참새의 모습을 화려하고 세밀하게 묘사한 작품에서부터일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정해윤은 국내 뿐 아니라 프랑스와 영국, 미국, 이탈리아 등에서 중요한 수상과 레지던시 활동을 하면서 작가적 역량을 숙성시켜왔다. 어느 덧 십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고 작가에게도 작품에 있어서의 변화와 숙성이 이루어졌을 뿐 아니라 생활인으로서의 삶의 경험과 깊이도 안정되고 성숙하는 시점에서 이번에 개최되는 전시는 정해윤의 작가로서의 그간의 변화 뿐 아니라 생활인으로서의 무르익은 생각과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기회인 것같다.

정해윤은 우리 생활의 평범한 여러 현상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작업을 해왔다. 그리고 그 관심은 개별적인 현상에서 개체간의 관계로 확산되고, 때로는 좀 더 커다란 공간, 즉 우주로까지 확산되기도 하였다. 그 속에서의 개체들 사이의 상호관계망과 소통의 현상은 작품 속에 표현된 참새가 입에 물고 있는 실을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되어 왔다. 그리고 그 참새들이 앉아있는 서랍은 하나하나가 우리들의 기억과 내밀한 이야기가 담긴 공간인 셈이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정해윤이 이러한 작품의 연장선상에서 참새와 실을 묘사한 작품, 세월의 무게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다양한 돌들의 모습, 그리고 구불구불한 파이프들의 얽힘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얽히고설켜 살아가는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크게 세 가지 작품들을 정밀하고 사실적인 묘사와 생생한 색채로 표현한 화면을 보여준다. 정해윤의 작품은 형식면에서의 완성도와 표현력의 원숙미뿐만 아니라 작품의 주제에 대한 면밀한 해석도 필요하다. 우선 참새와 실이 등장하는 작품에서는 이전의 서랍 화면 구성과 다르게 원통형 봉에 촘촘하게 감은 실들 중 몇 가닥이 이웃한 봉으로 연결되고 그 실선 위에 앉은 참새들의 다양한 자세를 통해 일상의 사람들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을 볼 수 있다. 참새들은 홀로 서있거나 또는 두셋 정도가 무리를 이루며 무언가 이야기를 주고받는 듯한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이전의 작품에서 입에 물었던 실을 발로 밟고 앉아있는 참새들은 여전히 다부지고 화려한데 비해서 그들이 밟고 있는 선들은 참새들의 무게를 버티기에는 너무 얇고 가늘어 보인다. 하지만 그 실들은 중앙부의 늘어진 실들과는 대조적으로 팽팽한 탄력을 유지하고 있고 그에 비하여 팽팽한 선들의 그림자들이 배경의 원통의 곡면을 따라 늘어진 선과 같은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도상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팽팽한 선의 그림자가 늘어진 곡선의 모습인 것은 선으로 암시되는 개체 사이의 관계의 양면적인 모습을 의미할 지도 모른다든지, 다양하게 표현된 참새는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이면서도 어쩌면 작가 스스로의 모습을 다양한 상황과 심리상태 속에 배치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초기의 작품에서 참새가 물고 있는 실의 복잡한 얽힘으로 표현되던 개체간의 관계는 입체적인 관계 맺기의 단계를 넘어서서 이제는 그 본질에 있어서 이처럼 상대적으로 단순하게 정리될 수 있다는 작가의 깨달음이 시각화된 것이 이번 작품이라고 해석된다.

우리 삶에 대한 관조와 성찰의 결과를 담은 것 같은 정해윤의 생각은 두 번째 작품인 돌들의 모습에서도 나타난다. 오랜 세월 모난 돌이 다듬어져 이와 같은 둥그런 돌의 모습이 된 것처럼,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 우리들의 사고와 감정도 모난 구석을 다듬어가게 되는 것이다. 무거운 돌이지만 무중력 상태의 공간에 떠있는 듯하게 표현된 크고 작은 돌들은 우리가 무겁게 생각했던 고민의 무게가 어쩌면 이처럼 가벼울 수도 있는 것이다. 크고 작은 다양한 규격으로 구성된 돌들의 관계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간관계의 다양한 모습, 그 거리와 크기는 이처럼 부유하는 돌과 같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돌 위에 앉은 참새와 시계바늘은 인간관계의 복잡함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음에 다가오는 느낌이 다른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하였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표현한 작품은 파이프가 복잡하게 얽힌 화면일 것이다. 살아있는 파충류의 몸이 구불거리며 얽히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는 화면을 자세히 뜯어보면 두 종류의 서로 다른 파이프가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서로 다른 속성을 가진 두 물질(파이프)의 얽힘은 친구관계, 혼인관계, 계약관계 등 사회생활에서 다양하게 얽히는 우리의 삶의 모습이다. 또 다른 작품에서 작가는 금속성이 강한 수도꼭지에서 수은과 같은 액체가 흘러나오다가 한 순간에 굳은 듯한 모습을 표현하였다. 그런데 그 모습이 물음표를 거꾸로 표현한 모습이다. 작가로서 그리고 생활인으로서 지난 세월 동안 활동해 온 작가가 인간과 인간, 그리고 그들 사이에 얽히고설키는 관계를 관조하고 해석한 결론은 이번 전시를 계기로 일차적인 중간결론이 나온 듯하지만, 작가가 이러한 물음표를 제시하는 것을 보면 아직도 우리 삶에 대한 통찰의 최종결론은 물음표처럼 알듯 모를 듯한 것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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