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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걸 / 성실한 순례

하계훈

성실한 순례


하계훈(미술평론가)


지난 10여 년 동안 최영걸은 한국화의 전반적인 소강상태에서도 꾸준히 작업을 해오면서 국내외적으로 이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왔다. 초기작에서 작가는 농촌 들판의 풍경이나 산중 계곡의 사계절의 모습 등과 같이 주로 우리나라의 자연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태도로 작업해왔다. 작가는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을 전통회화의 기법으로 착실하게 재현하면서도 동시에 현대적 구도와 기법 등을 연구해왔다. 그렇게 표현된 장면에서 최영걸은 화면의 곳곳마다에서 읽을 수 있는 정신성과 종교적 감흥을 담아내려고 노력하였으며, 그러한 창작의 태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작품의 모티브가 조금씩 변해가는 과정에서도 일관되게 그의 화면 속에 유지되어 왔다.


2011년 작품을 발표한 이후 개인적 일들과 교직에 진입하는 등 작품에만 집중하기 어려운 요소들이 발생한 까닭에 이번 개인전까지 다소 공백이 있었다는 느낌을 받기는 하지만, 이 기간 동안에도 작가는 국내 뿐 아니라 대만과 홍콩 등에서 크고 작은 전시와 경매에 꾸준히 참여해왔으며 그러는 동안에 자연스럽게 작품의 형식적 변화도 서서히 이루어졌다. 이 기간 동안 최영걸의 작품 화면에서는 작가의 시선이 대상에 좀 더 다가서는 변화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렇게 다가간 작가의 시선은 이전보다 대상을 선택적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그 대상들을 좀 더 깊이 있게 바라보게 되고, 그 결과 작품에 표현되는 대상들은 이전보다 더욱 생생하고 밀도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작업 과정에서 작가는 항상 창작행위에 담겨진 종교적 사유와 작가로서의 헌신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작가가 긴 시간동안 창작에 몰입해오면서 때때로 겪게 되는 시련과 부진의 기간을 잘 극복할 수 있게 해주기도 하였다. 최영걸의 작품 창작 여정에서 그의 작품들은 작가 자신이 선택한 모티브마다 작가와 대상 사이의 성실한 대화와 관찰이 이루어졌으며 그러한 관계가 지속되고 깊어질수록 그 결과는 점증하는 화면의 밀도와 완성도로 나타났다. 이제 우리 산하의 풍경을 탐구하던 작가의 시선은 국내 뿐 아니라 외국의 생활공간에서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는 삶의 모습으로 확장되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이러한 자신의 작품의 변화 과정의 최근의 모습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 


최영걸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하나의 변화는 화면 속의 공간에 인물이나 동물들을 이전보다 더욱 두드러지게 등장시킴으로써 예전의 풍경 위주의 공간이 가져다주었던 낭만주의적 초월성을 현실적인 공간의 친숙함 쪽으로 중심이동을 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농촌 들판에 배회하는 어린 강아지에서부터 외국의 고대 유적지의 한 귀퉁이에서 잠들거나 문설주에 앉아 있는 개와 고양이, 그리고 외국의 주요 관광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비둘기 같은 동물까지 여러 종류의 동물들의 자연스런 모습을 생활의 공간에서 감성적인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뿐 아니라 그는 외국 여행에서 포착한 다양한 사람들의 표정과 의미 있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포착해내고 있으며 그러한 순간의 표현에 있어서 먹과 종이의 확장된 표현력을 시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 전통 회화의 정신과 특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현대적 감각과 변용을 접합시키는 작업을 늘 고민해왔던 작가로서 종이와 안료를 먹과 화선지에서 수채화 물감과 그에 걸맞는 용지로 확대시켜보거나 캔버스 형식의 화면을 채택하는 시도가 이번 전시의 기법적인 변화라면, 화면 속의 이미지와 주제의 변화 측면에서는 좀 더 우리 생활에 밀착되면서 그러한 공간 안에서 작가가 늘 추구해왔던 창작의 영감이자 작가로서의 헌신이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에너지의 제공자에 대해 한 발짝 다가서보려는 작가의 시도가 읽혀지는 듯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지난번 마지막 개인전 이후의 작품 변화를 보여주려는 시도에서 비교적 폭넓은 내용과 형식의 작품들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한 출품작들 가운데 최근 몇 년 동안 작가가 외국여행을 통해서 경험한 순간의 표정들이 작가의 세련된 필치를 반영해주는 먹이나 수채 물감으로 독특하게 표현된 작품들이 눈에 띤다. 터키와 러시아 그리고 스페인 등의 이국적인 공간에서 작가의 시선을 사로잡은 표정들이 정성스럽게 화면에 내려앉은 작품들은 최영걸의 창작 과정에서 늘 그래왔듯이 작가의 예민한 시선을 따라주는 성실한 손노동과 대상에 대한 적극적인 교감, 그리고 이러한 어려운 작업을 외면하거나 기피하지 않고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로서의 소명으로 받아들이는 최영걸의 성실한 창작태도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작품들은 우리시대 우리들의 모습의 표현이자 동시에 그 안에 담겨있는 초월적 존재의 현현(顯現)을 기다리는 작가의 성실한 시각적 순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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