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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 소통의 동력

하계훈

중력, 소통의 동력

하계훈(미술평론가)

이종철은 판화와 드로잉, 그리고 공공미술을 통해 대형 설치작업을 구사하기도 하고 엄격한 색채 추상의 작품을 제작하기도 하면서 창작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번에 이종철이 보여주는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중력을 이용하여 물감을 캔버스 한쪽 면에서 아래로 흘려 내림으로써 형성되는 궤적을 주된 이미지로 담아내는 추상 작업들이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서양미술사에 등장한 추상미술 작업은 기법과 형식이나 주제 등 여러 면에서 다양하게 전개되어 왔지만, 공통적으로 화면 안에서의 환영(illusion)을 거부하고 고전적인 작품에서 강조하는 서사성(narrativity)을 배제한다는 특징을 공유한다. 결국 이렇게 되면 작품에서 남게 되는 것은 화면(picture plane)이라는 평면과 그 위에 전개되는 색과 선과 질감, 그리고 때로는 시각 이외의 감각을 자극하는 또 다른 표현에 의해 관람객들과 소통하는 현상이다. 예술의 목적이 소통이라면 추상미술 역시 이러한 대전제를 따를 수밖에 없다. 다만 설명적이고 환영주의적인(illusionistic) 방식이 아닌, 상징적이거나 은유적인 형식에 의해 가시적 실체가 배제된 개념과 주제를 전달하는 메타커뮤니케이션(metacommunication) 방식을 사용하다는 점에서 차별된다.
중력이라는 힘은 공기처럼 우리 주위에 비가시적으로 존재하지만 우리가 이것을 의식적으로 감지하지 못할 뿐인 성격의 현상이다. 뉴턴은 그의 유명한 저서 <프린키피아(Principia)>에서 질량을 가진 두 물체 사이에서는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이 작용하고 그 힘의 크기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고 했다. 여기서 물리학적으로 더 나아가면 머리가 복잡해지고 일반 독자와의 소통에 실패할 가능성이 크므로, 이쯤에서 뉴턴의 이야기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두 물체는 서로 끌어당기는 성질이 있고 그 세기는 가까울수록 더 강하다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이종철의 작품으로 돌아가보면, 그의 작품들은 캔버스를 지면에서 경사를 이루게 세운 생태에서 한쪽 면에서 물감을 흘리는 것이다. 이렇게 흘려진 물감들은 지구 중심에서 끌어당기는 인력에 의해 캔버스를 가로질러 한 쪽 방향으로 이동의 흔적을 남긴다. 뉴턴 식으로 말하자면 물감과 지구 중심의 핵 사이의 끌어당김을 캔버스 위에 기록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물감의 농도나 화면의 흡수력과 표면의 미세한 지형에 의해 물감의 흐름은 속도와 방향 등이 정해지고, 결국 그러한 현상의 총합이 완성된 작품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이종철이 물감을 흘리는 작업 방식은 기본적으로 모더니즘 미술에서 작가의 의지가 작품에 적극적으로 개입되면서 선형적이고 구축적으로 표현이 이루어지는 방식과는 사뭇 다르게 작가의 의도가 최소한으로 개입되면서 오히려 중력이라는 우연성을 갖는 시각요소에 의해 비정형적인 것, 즉 자연의 조건이 작업을 결정하는 리조믹한(Rhysomic) 회화를 창출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에 대하여 작가는 선택지를 갖는 최종 역할을 함으로써 창작의 전 과정을 통합(orchestration)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종철은 다소 회귀적인 입장을 부분적으로 재소환하려는 것 같다. 
이번 전시에서 이종철은 대형 화면에 흑색 바탕 위로 회색 물감이 흘러내리면서 운동의 궤적을 만들어내는 작품과 바탕에 채색이 된 화면 위로 흑백을 포함한 색의 물감이 흘러내리면서 바탕색과의 작용에 의해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작품, 그리고 여기서 약간의 변주를 통해 화면에 물감이 뿌려지거나 작가의 손이 움직이는 흔적을 따라갈 수 있는 드로잉이 가미된 작품들을 보여준다.
작가의 개입을 최소화한 탈근대적인 회화의 특성을 보여주는 작품들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화면을 구성하는 작가의 의도가 색상의 배치와 물감의 농도를 변화시킴으로써 드러나는 회화성 등의 방법에 의해 개입이 이루어진다거나 부분적으로는 약간의 드로잉이 첨가되는 형식의 작품으로 확대되는 작업은 작가가 작품을 통해 관람자들과의 소통을 이루어내는 데 있어서 감속의 우려를 드러내는 의식의 반영일 수 있다. 
추상 작품의 한정성은 작가의 내면이 은유적으로 드러난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소통의 수단이 한정됨으로써 보편성이 제한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작가는 작품의 형식보다는 재료의 확대나 화면 구성 요소의 다양한 결합과 상징으로 작품의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점이 추상미술의 한정성이라 한다면, 반대로 추상미술의 해석의 댜양성이나 연역적 소통의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모더니즘 회화를 넘어서는 장점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사물과 현상이 그렇듯이 이 양자의 중앙에 절충적인 지대가 있기 마련이다. 
이종철이 이번 작품을 통해서 시도하는 소통은 일부 작품에서 보이는 것처럼 캔버스 한쪽에서 시작된 물감의 움직임이 반대편 끝까지 다다르는 궤적과 중앙 어디쯤에 머무르는 궤적이 한 화면에 공존하는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관람객과의 소통의 최적화를 위한 복수의 방법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화가가 음성 언어를 최소화하면서 작품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노력은 관람자가 귀가 아니라 눈과 가슴으로 그 메시지를 받아들여 줄 때 그 둘 사이의 소통에서 단순한 아름다움 뿐 아니라 고양된 정신까지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뉴턴으로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오는 개체간의 끌어당김(중력)을 이종철의 작품에서 설명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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