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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심(從心)을 넘어선 4인의 원로작가들이 던지는 우리 삶의 화두

하계훈

종심(從心)을 넘어선 4인의 원로작가들이 던지는 우리 삶의 화두

하계훈(미술평론가)

4명의 원로 작가들이 내일갤러리에서 새해의 첫 전시를 연다. 김홍주, 신문용, 한기주, 그리고 한만영은 우리나라의 해방기를 전후하여 태어났고 1960년대 중반에 미술대학을 다닌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작가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전국의 미술대학에서 후학들을 양성하는 데 힘을 쓰다가 정년을 맞이한 뒤 자신들의 예술세계에 대한 심화와 숙성을 지속해 나아가고 있다. 
이 작가들이 미술대학을 다니던 1960년대 중후반은 우리 미술계에서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인 작업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이 작가들의 재학 시절을 전후로 한 시기는 앵포르멜 운동이 정점에 이르고 오리진, 무동인, 신전동인 등 기존의 미술계의 질서를 개선하고 새로운 우리미술의 정체성을 모색하려던 집단적 시도가 일어나는 시기였다. 1967년 이러한 움직임들은 제 1회 청년작가연립전으로 종합되어 우리 현대미술사에서 커다란 이정표가 될 만한 일들이 벌어졌으며, 한국미술이 국제미술과의 좀 더 가까운 접촉과 교감을 시작하던 시기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이들 4명의 작가들은 우리 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순간을 현장에서 직접 체험한 세대이며 그들의 경험을 발전시켜 자신이 고유한 미학을 확립하고 그것을 학교교육을 통해 후세대에게 전해주었던 다리 역할을 한 세대의 대표들로 자리매김해 줄 수 있는 작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 출품하는 작가들의 이력이 이와 같지만, 공간의 제약과 준비 기간의 현실적인 문제로 작가들의 화력(畵歷) 전모를 소개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의 근작을 중심으로 한 소수의 작품만이 출품되었다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그러나 공자가 논어의 <위정편(爲政篇)〉에서 “나이 일흔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여도 법도를 넘어서거나 어긋나지 않았다”고 말한 데서 이름지은 ‘종심(從心)’이라 일컫는 나이인 70세를 넘어선 원로 작가들이 출품한 작품에서는 무게감 있는 미학 정신과 숙성된 사고의 표현을 읽을 수 있다.
김홍주는 우리 미술계의 시대적 흐름과 무관하게 자신의 조형세계를 일관성으로 지켜온 작가들 가운데 하나다. 작가의 작품 화면에는 주로 세부묘사의 이미지들이 조밀하게 회면을 채우고 있으며 그러한 이미지들은 다시 거시적인 관점에서 글자의 형태가 되기도 하고 부감법적으로 그려낸 입체지도처럼 나타나기도 한다. 작가의 세밀한 묘사작업은 자기 안으로의 몰두이며 미세혈관처럼 화면을 구축하는 힘이 된다. 작가는 이러한 화면을 구사하기 위하여 몰입해온 창작과정의 결과물에 지속적으로 <무제>라는 제목을 붙여놓음으로써 제목을 통해 의도를 전달하기보다는 관람자의 입장에서 작품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한 교감과 소통을 도모하고 작가의 개입을 최소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신문용은 주로 모노크롬 형식의 수평적 파도가 펼쳐지는 바다풍경 작품을 지속해왔는데 최근에는 그러한 연속적 화면의 전개과정이 “각(覺)”이라는 화두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작업으로서 먹을 이용해 화면 위에 무작위적 방법으로 점을 찍어가는 작품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때 작가의 손은 붓끝의 감각을 느끼며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화면에 점을 찍어가고 그 작업과정에서 결과적으로 발견되는 형상은 다시 새로운 조형 이념을 떠올리게 해준다. 
한기주는 한국의 종이조형(Paper Molding)운동의 중추적인 인물이다. 그는 1970년대 말부터 나무판을 끌이나 도끼로 찍어내면서 드러나는 자연스런 형태의 표면을 한지 캐스팅 기법으로 떠내서 그 이미지들을 자신의 작품 속 조형요소로 도입하고 있다. 발견되는 이미지라는 점에서 작가의 인위적 개입을 최소화하지만 최종적으로 작가가 발견한 이미지들로 형식을 구축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은 다분히 동양적이다. 한지의 물성과 표현된 이미지를 통해 작가는 동양적 자연관에 바탕을 두는 종이조형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오고 있다.
한만영은 우리 생활 속에 대비되는 현상과 인식의 불이성(不二性)을 작품의 주요 테마로 작업해오고 있다. 작가에게 아름다움과 추함, 생성과 소멸, 채움과 비움, 그리고 생과 사와 같은 개념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동일한 요소의 순환 현상이다. 따라서 양자간의 경계를 허물고 통합하는 일련의 작업이 곧 작가의 작품인 것이다. 작가의 작품 속에서는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 원본과 복제 등의 대립되는 이미지들이 작가의 손에 의해 공존하며 새로운 의미를 생성시킨다.
이상에서 간략하게 살펴본 것처럼 종심(從心)의 나이를 넘어선 원로 작가 4인이 만들어내는 이번 전시는 소박한 차림이지만 소홀하지 않고, 그를 통해 미술뿐 아니라 우리 삶의 본질을 꿰뚫고 사유의 깊이를 심화시키는 화두를 던져주는 소중한 기회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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