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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석/도시공간을 구성하는 빛의 생태계

하계훈

도시공간을 구성하는 빛의 생태계

하계훈(미술평론가)

구본석은 주로 LED와 아크릴을 재료로 작업한다. 구본석의 작품은 조형성을 이야기하기 이전에 재료와 표현 기법 면에서 동시대성을 확보하여 창작자와 감상자 사이의 소통을 수월하게 해준다. 인간의 감정은 생소한 것에 대한 경계심과 친숙한 것에 대한 공감 능력을 본능적으로 발동시킨다. 그런데 구본석이 다루고 있는 LED 빛과 아크릴이라는 재료의 표현은 오늘날 우리들이 전시장 밖 일상의 공간에서도 흔히 접하게 되는, 우리시대의 도시의 특성을 대표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점차 확장되어가는 우리의 생활 터전인 도시라는 생태계를 특징짓는 요소 가운데 하나는 활동성의 확장이다. 과거 농경중심사회에서는 인간의 삶이 자연의 리듬에 순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몸을 눕혀 휴식에 들어갔다. 비가 오면 노동을 멈추고, 가뭄이 들면 기근과 죽음으로 이어졌고 날씨가 좋으면 수확이 풍부하였다. 일조량이 많은 여름철에는 노동량이 많았고 겨울에는 농한기라는 시기가 있어 과도한 노동으로부터의 해방과 다음 농번기를 위한 충전이 가능하였다. 

이러한 삶은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변화하였다. 1차산업 농수산 분야의 노동에서 2차산업 제품생산 노동으로 생활의 패턴이 변화하면서 점차 노동과 휴식의 구분도 명확해지고 여가의 개념도 생겨났다. 기술도 발전하여 밤을 낮처럼 연장하는 새로운 생활공간도 등장했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공간의 변신은 19세기 말 프랑스를 중심으로 화가들의 작품 속에 다양하게 기록되어 왔다.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에 담긴 파리라는 도시의 모습은 벨 에포크(Belle Epoch)라는 찬사로 포장되어 제 1차 세계대전이 오기 전까지 도시에 거주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행복의 중심에 놓여 있다는 자기최면에 빠지게 해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노동의 내용이 서비스 노동 중심으로 변화하면서 오늘날에는 밤이라는 시간성과 빛이라는 물리적 요소가 더욱 더 우리 생활에 깊숙하게 침투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1960년대 무렵부터 본격적인 도시화가 시작되었다. 농촌의 젊은 노동력이 도시로 이동하면서 농촌은 점차 고령화되고 도시는 젊은이들의 활동을 담아내기 위하여 과밀화와 위생, 범죄 문제 등 각종 이슈로 과부하가 결려갔다. 구본석은 이러한 도시에서 태어나 그 공기를 호흡하고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작가다. 따라서 그가 작가로서 작품을 구상함에 있어서 도시라는 대상을 선택한 것은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러울 수 있다. 오히려 작가가 자신의 생활환경을 벗어난 다른 공간에 눈을 돌린다면 그것이 더 부자연스러웠을 수 있을 것이다.

구본석은 도시를, 그것도 도시 가운데 야경을 작품에 담는다. 그래서 그의 작품 제목에는 대부분 도시(city)라는 단어가 붙는다. 그런데 구본석이 나고 자란 도시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도시의 공기는 민중을 자유롭게 한다”는 유럽 중세의 반봉건적 자유주의 사상과는 다른 반성적이고 자기성찰적인 시각이 드러난다. 작가 자신이 말한 것처럼 구본석도 처음에는 자기가 태어나 활동하고 있는 도시 공간에 대한 우호적 시각으로 출발하였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대상을 살피면서 작가는 화려한 도시의 불빛을 가져오기 위하여 희생되었어야 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정글같은 도시 안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의 투쟁적이고 배타적인 이기심을 읽었다. 

구본석의 초기작품에는 LED 대신 값싸고 화려한 비즈가 사용되었다. 겉으로만 화려하고 속빈 개체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는 비즈는 도시의 생리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기 좋은 재료였을 것이다. 빽빽하게 들어선 도시의 불빛에서 작가는 오히려 텅 빈 것을 보게 되고 눈부신 불빛은 역설적으로 그 배경에 위치한 어두움을 더욱 어둡게 보이게 해준다. 비즈에 이어 구본석이 채택한 LED 역시 도시의 야경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재료다. 게다가 이러한 재료는 시대를 선도하는 측면이 있으며 형식면에서 작품의 평면성을 극복할 수 있는 이점도 가지고 있다. 
구본석이 도시를 바라보는 시각은 조감(bird's-eye viewing)법적이다. 마치 하늘을 나는 새가 멀리 상층부에서 바라보는 것 같은 도시의 모습은 일차적으로 화려하고 웅장하다. 자연의 지형을 읽을 수 없도록 도시에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들의 창에서 발산되는 빛의 종합으로 드러나는 공간의 표정은 위압적이기까지 하다. 조형적으로 보면 이러한 구본석의 작품은 점묘법적이기도 하고 일종의 드로잉으로 읽힐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한눈에 들어오는 화면의 모습은 서술적이고 묘사적이다. 

하지만 작품의 부분을 확대하면 놀라운 반전을 일으킨다. 구본석의 작품 일부분을 확대해보면 우리는 도시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그 모습은 마치 반도체 회로판의 점으로 이어진 회로도처럼 보이기도 하고 마치 추상회화의 한 부분을 보는 것같기도 하다. 마치 사진의 세부 픽셀들이 모여 선명한 사물을 보여주는 것처럼 구본석의 작품 역시 조형의 기본 단위인 점으로부터 빛을 이용하여 대형 화면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조형적 분석은 작품의 내용에 있어서 의미 있는 해석과 상징을 도출할 수 있게 해준다. 거대도시라는 공간이 사실은 하나하나의 점으로 구성된 총체인 것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모습은 결국 개개인의 존재가 모여진 총체인 것이다. 따라서 그 안에는 개체간의 충돌과 융합, 질서와 무질서, 소멸과 환원 등의 모든 현상이 망라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에 이르면 구본석의 LED 야경은 단순히 바라보는 대상으로서의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거대한 유기체처럼 다가올 수 있다. 

구본석의 작품은 형식면에서 기본적으로 일정한 크기를 유지하고 있다. 이것은 도시의 야경이라는 모티브를 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리고 작가가 다루는 재료의 속성상 작가의 화면은 야경이라는 소재에 국한될 가능성도 높다. 물론 이러한 재료와 기법으로 정물이나 인물 혹은 다른 모티브를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이 경우 물감이나 연필 등 다른 재료의 묘사력과 세부에 대한 표현을 따라잡기 어려운 한계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구본석의 작품에서는 묘사력을 읽거나 회화성을 강조하기 보다는 재료의 물성을 강조하고 상징적 의미를 개발하는 쪽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구본석은 자신이 채택한 도시라는 공간이 만들어내는 상징성과 그 표정을 담아내는 재료의 특성을 강조하면서, 18세기 서양철학자 루소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이 행복의 길이라고 한 말의 행간의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구본석으로서는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밖에 없는 공간으로서의 도시에서 개체간의 갈등과 좌절을 넘어서서 미래와 희망으로 나아갈 수 있는 조형적 방법론을 개발하는 것이 작가로서의 사명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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