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송지연/도시를 바라보는 편안한고 자연스러운 시선

하계훈

도시를 바라보는 편안한고 자연스러운 시선

하계훈(미술평론가)

생활환경이 자연의 상태를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우리들은 도시를 세우고 확장해왔다. 근대 산업혁명 시기를 전후하여 오늘날의 도시의 모습이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그 속에서는 수많은 개인사와 집단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신은 지연을 만들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는 말처럼 도시는 인위적이다. 인위적이고 익명성에 가려진 도시는 기능적이고 속도를 쫓으며 능률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러한 도시는 정치와 경제, 신앙과 욕망을 잉태해왔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러한 도시의 곳곳에서 이름 모를 사람들의 수많은 희로애락이 일상에 담겨 그들의 생활터전 위를 떠돌고 있다.

송지연이 바라보는 도시는 이러한 이야기를 담은 살아있는 유기체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의 모습은 살아있는 듯 움직인다. 소리도 나고 냄새도 나고 따뜻한 햇살의 그림자와 빗물, 그리고 눈과 바람도 거기에 있다. 도시의 역동성은 인상파로부터 미래파 화가들에 이르기까지 주로 희망과 활기의 장소로서 긍정적인 시선을 받아왔다. 우리에게도 1960년대 이후의 도시는 가난탈출과 새로운 가능성의 희망이었기에 농촌 노동력의 도시로의 대거유입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송지연은 이러한 도시의 풍경 속에서 포착되는 장면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는 작업을 계속해왔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가 작년에 다녀온 유럽의 도시들이 화면에 주로 등장한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작가가 자신의 작품 모티브를 자신에게 익숙한 공간과 대상에서 얻는 것을 지극히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작가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장면을 스냅사진처럼 포착하고 그것을 기억하여 다시 작품 속에 불러올린다. 화면의 질감을 거칠게 만든 상태에서 아크릴 물감을 인상파나 신인상파 스타일로 적용하는 작품을 통해 작가는 추억과 사유를 진행하며 궁극적으로 그 공간의 일부로 담겨진 자아의 의미를 찾아가게 된다. 

송지연의 도시풍경은 “바라보다”나 “...에서(바라보다)”라는 제목이 다수를 차지한다. 이러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는 도시를 바라보기 위하여 높은 조망점을 찾거나 도시 내부를 순례하듯 걷는다. 송지연이 바라보는 도시는 자신이 스스로 경험한 공간과 인쇄나 영상 매체를 이용하여 발견한 공간이 함께 동원된다. 그런데 그 공간에는 랜드마크적인 모티브가 등장하기보다는 그저 평범한, 그리고 비교적 넓은 일상의 표정들이 담겨져 있다. 그리고 가끔 우리에게 익숙한 장소와 랜드마크가 등장하는 경우에도 그것들은 작가의 손을 거쳐 일상으로 편입된다. 아마도 작가는 자신의 작품 속에 신화나 역사의 주인공들이 들려주는 거대한 서사를 담기보다는 평범한 일상을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들의 정서에 다가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작품의 양식 면에서 볼 때 송지연의 작품은 도시의 모습을 표현하되 먼 거리에서 바라보는 시점을 유지함으로써 대상의 모습을 부분적으로 해체하고 흐리게 만들어 회화적인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채색을 하되 모노톤에 가까운 어두운 바탕에서 점차 밝은 톤으로 겹쳐 올려지는, 바람에 흩날리는 듯한 붓의 움직임은 빽빽하게 들어찬 도시의 건물들이 모나고 딱딱하지 않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친근한 존재의 모습을 드러내는데 도움을 준다. 화면의 구도를 포착하거나 프레임을 결정함에 있어서 작가는 기본적인 창문 형식의 프레임뿐만 아니라 파노라마 형식의 프레임이나 이를 상하로 길게 배치한 프레임을 사용함으로써 공간을 확장시킴으로써 작품의 분위기를 더욱 효과적으로 살려낸다. 

이러한 화면에서 색채는 기본적으로 사실적인 색채를 의도적으로 약간 비껴감으로써 분위기와 색상의 미묘함을 이끌어내고, 이로 인해서 관람객들이 화면으로부터 재현적 풍경을 넘어서는 깊은 미감과 회고적 사유를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사실 자연 풍경에 비하여 도시 풍경은 목가적 서정성이나 낭만적 정취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도시 환경에 익숙한 세대들에게 도시란 또 다른 의미에서의 자연일 수 있을 것이다. 송지연은 이러한 의미의 공간으로서의 도시를 바라보고 사유하여 작품으로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도시 풍경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는 작가는 자신이 표현하는 풍경으로부터 추억과 기억을 되불러오고 그 과정을 통해 지나간 시간의 의미를 반추한다. 햇빛에 표백된 듯한 인상을 주는 도시의 표정은 마치 낡은 흑백사진에 담긴 시간의 두께처럼 공간을 반추하게 하면서 관람객의 회고적 감정을 자극한다. 송지연의 최근작 가운데 일부 작품들은 점차 형태를 해체시키면서 추상화하는 경향을 드러내기도 한다. 작품 제목에 있어서도 여전히 장소성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일부 작품에서 ‘흔들리다,’ ‘흩어지다’와 같은 서정적인 제목으로의 전환이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송지연의 작품이 주목을 받는 것은 도시라는 공간과 그 속의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편안한 시선과 그로부터 정서의 꾸밈없는 표현 때문일 것이다. 과밀 도시의 꽉 들어찬 집들로 구성된 화면은 자칫하면 예술작품에서 시각적 위안을 구하는 관람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상에 대한 송지연의 중립적이며 객관적인 시선과 작가로서의 기법적 숙련성을 통해 도시공간의 표정과 이야기를 과장 없이 잘 표현해줌으로써 관람자들은 작가의 작품에 매력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