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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세계의 미술관

하계훈


[강의]세계의 미술관

하계훈 미술평론가

근대 유럽은 한때 전세계의 총생산 가운데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부유하고 활발한 경제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그리고 파리, 런던, 비엔나 등은 유럽의 중심도시이면서 세계의 중심도시로서 외교, 문화, 학문과 같은 분야에서 시대를 선도하는 역할을 했었다. 이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의 진출을 가능하게 해주면서 생활반경이 넓어지고, 17세기 중반에 독일의 30년 전쟁을 마무리하고 베스트팔렌 조약이 이루어지면서 중세 종교의 짐을 벗고 근대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 것과, 이로부터 과학의 발달과 경제활동의 규모가 확대됨으로써 사회적 발전이 가속화된 것이 그 이유 가운데 일부가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유럽인들의 문화생활에도 영향을 미쳐서 일찍이 그들은 문학과 음악, 미술 등의 분야에서 타지역과 차별되는 업적을 남겼고, 그 가시적인 흔적 가운데 하나가 유럽의 대도시에 가면 어디서나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커다란 박물관과 미술관들이다. 이 가운데 세계 3대 혹은 4대 미술관으로 손꼽히는 기관들이 있는데 각국의 입장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프랑스의 루브르미술관과 영국의 대영박물관, 그리고 서유럽의 문화를 따라잡기 위해 노력한 러시아의 에르미타쥬미술관과 신대륙 아메리카가 독립과 안정을 찾으면서 야심차게 마련한 미국의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등이 규모나 소장품의 내용으로 볼 때 유럽을 포함한 세계의 대표적인 미술관과 박물관으로 손꼽힌다.

필자는 이번 강의를 통해 이러한 미술관과 박물관의 형성과정과 그 기관에 소장된 대표적인 작품들을 소개하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유럽으로부터 퍼져나갔다고 볼 수 있는 박물관과 미술관의 문화는 그 배경에 경제적 뒷받침과 정치 외교적 후원, 그리고 그 지역 사람들의 지적 호기심과 국가적 자부심 등이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들어 중동지역이나 중국, 그리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비서구권 여러 지역에서 박물관과 미술관을 앞다투어 세우고 있는 배경에도 약간의 시차를 두고는 있지만 이러한 배경들이 동일하게 발견될 수 있기 때문에 이들 미술관과 박물관들을 알아보는 것은 우리나라 미술관과 박물관의 정체성이나 미래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에도 적지 않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4개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간단히 소개해보자. 먼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루브르미술관의 경우에는 1789년 프랑스 혁명과 연관이 있다. 루이 16세 치하에서 국가재정이 나빠지고 연속된 흉작으로 서민들의 생활이 어려운데도 성직자와 왕족 등 상류층 사람들의 나몰라라식의 태도가 결국 프랑스 시민혁명을 초래했고, 승리한  시민혁명군이 이들로부터 몰수한 작품들과 귀중품들이 오늘날 루브르미술관 소장품의 바탕이 된 것이다. 물론 그 이후 긴 시간동안 발굴이나 기증, 구입 등으로 소장품이 늘어나긴 했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모나리자>와 같은 작품의 경우에도 프랑스와 1세가 좋아하던 이탈리아의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초청하여 함께 지내는 일을 계기로 왕실 소유의 작품이 되었다. 모나리자는 시민혁명과 나폴레옹의 통치시대를 거치면서 1911년에는 도난사건으로 인해 더욱 유명해졌다. 피카소오 아폴리네르도 용의 선상에 올랐으나 1913년 이탈리아에서 회수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날에는 2중 방탄유리 안에 모셔둔 채로 전세계에서 찾아오는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에게해의 섬에서 출토된 <밀로의 비너스>로 알려진 대리석 조각상은 원래 지금처럼 유명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비너스 상의 대표적인 작품은 나폴레옹이 피렌체의 우피치미술관에서 약탈해왔다가 돌려준 일명 메디치 비너스였다. 그러나 프랑스인들의 애국심에 의해 밀로의 비너스를 널리 알려서 오늘날에는 그 명성이 역전되게 된 것이다.

다음으로 영국 런던에 있는 대영박물관은 그 출발이 로또 복권과 관련된다. 의사이자 수집가였던 한스 슬론경이 자신의 소장품을 국가에 기증하자 영국정부는 기증품을 수장할 건물을 확보하기 위하여 복권을 발행한다. 이렇게 출발한 대영박물관에는 유명한 로제타 스톤과 엘긴마블 등의 소장품이 있다. 로제타스톤은 나폴레옹 군대가 이집트의 로제타라는 지역에서 발견한 석판이 영국군에게 압수되어 현재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석판에 새겨진 세 가지 글씨는 영국인이 아닌 프랑스인 샹폴리옹이 해독해서 양국간의 묘한 라이벌 의식을 읽을 수 있게 해준다. 한편 엘긴마블이라고 불리는 일군의 조각품들은 원래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에 장식되어 있었던 것인데 터키 주재 영국대사 엘긴경이 터키의 술탄에게 약간의 금액을 지불하고 영국으로 가져왔다. 그 당시 터키의 식민지였던 그리스는 나중에 이 작품들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는데 영국은 이런저런 핑계로 아직까지 작품을 돌려주지 않고 있다.

다음으로 러시아 생트페테르부르그에 있는 에르미타쥬미술관의 경우에는 원래 황실의 겨울별궁이었던 곳이 1764년 미술관으로 개관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서유럽에 비하여 사회발전이 뒤쳐졌다고 생각한 표트르대제는 몸소 서유럽을 순방하며 때로는 신분을 숨긴 채 배를 만드는 목수 일을 배우기도 하면서 러시아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서유럽에 가깝게 다가서고자 오늘날의 상트페테르부르그라는 도시를 세웠었다. 그의 후손 표트르 3세의 부인 예카테리나 2세는 남편을 내쫒고 스스로 여제의 자리에 오르는데 에르미타쥬미술관은 이 예카테리나에 의해 개관한 미술관이다.

에르미타쥬미술관은 이처럼 서유럽을 바라보는 러시아 황실에 의해 만들어진 만큼 그 소장품들 가운데 상당수가 서유럽의 미술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소장품 가운데에는 나폴레옹의 황후 조세핀의 소장품을 비롯한 서유럽 귀족들의 소장품들이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 가운데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환>, 반 고흐의 <에텐의 추억>, 마티스의 <춤> , 그리고 러시아 및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미술품 등을 포함하여 300만 점이 넘는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은 1870년 뉴욕에서 설립된 미술관인데 원래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이 독립전쟁과 남북전쟁을 치르면서 점차 사회가 안정되고 경제적으로 번영되기 시작하는 시기에 미국 동부지역에 세워진 몇 개의 박물관과 미술관 가운데 대표적인 미술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은 미술품뿐만 아니라 무기, 동전, 악기, 의상 등 여러 가지 소장품들을 한 장소에서 감상할 수 있는 종합박물관으로서, 원래 건축에 있어서도 루브르를 모델로 하였지만 소장품에 있어서도 루브르를 따라잡을 정도로 많은 걸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 소장품 가운데 <델라웨어 강을 건너는 워싱턴 장군>, <콜럼버스의 초상>등 미국의 특징을 보여주는 작품들과 람께 서양미술사에 등장하는 유럽의 명작들이 다수 소장되어 있다.

이번 강의에 포함되지 않은 비엔나의 미술사박물관이나 마드리드의 프라도미술관, 피렌체의 우피치미술관 등도 그 규모와 의미에 있어서 세계적 수준이지만 이번 기회에는 제한된 시간 때문에 다루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다음 기회를 기약해보아야 할 것같다.

1차 출처: 아람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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