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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장르 확산을 통한 조형실험

하계훈


장르 확산을 통한 조형실험

하계훈(미술평론가)

철학적 거대담론으로부터 시작하자면, 인간은 이 세상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곳에서 지속 가능하고 의미 있게 존재하기 위해서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살아가는 행위의 대표적인 방식 가운데 하나가 재현(representation)과 소통이라고 한다. 그래서 신칸트주의 철학자 카시러(Ernst Cassirer)는 인간을 ‘상징창조의 동물(Animal symbolicum)’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즉 인간은 그 무언가처럼 되기(보이기) 위해서 노력하며 서로 어울려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처한 상황에서 경험한 세상을 시각적, 청각적, 언어적 표현 등으로 재현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시각적 경험으로 논의를 좁히면, 인간은 삶 속에서 시각적 재현을 하며 수만 년을 살아왔다. 따라서 그 기간 동안 시각적 재현이 이루어진 긴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는 인간의 존재와 그가 살아온 세계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선사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화가와 조각가,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 영상이나 사진 이미지를 창조해내는 작가들의 활동은 자기존재와 상황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믿음과 희망을 표현하기 위한 노력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시각을 통해 자신을 찾는 방법의 대표적인 수단이 재현이라면, 재현의 본래 목표는 닮음(resemblance)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재현의 문제는 이미 오래 전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도 중요한 사유의 화두였었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가 재현 행위를 인간 특유의 자연스러운 속성으로 보고 이것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을 보낸 것에 비하여 플라톤은 재현의 문제를 진정한 절대 존재(Idea)와 연결시켜 예술적 창조 행위에 한계와 각성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이상은 사진을 통해 자신이 머무는 공간의 상황을 체험하고 재현하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취미처럼 시작한 사진 작업이 점차 깊이를 더해가면서 작가는 자신이 만나는 세상과 ‘행운의 순간(Moment of Serendipity)'을 공유하는 경험을 하게 됨으로써 사진의 매력에 빠져들었다고 말한다. 사진은 그야말로 재현 행위의 대표적인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빛이 만들어내는 명암의 작용을 화학적 변화에 의해 이미지로 창조해내는 사진이라는 미디어가 초기에는 흑백 이미지를 통해 주로 보도성을 강조하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형태의 변용과 색채의 도입에 의해 회화성과 예술성으로 그 역할을 확장시켜오고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회화가 사진의 영향을 받기도 하면서 사진과 회화는 시각예술에 있어서 상호 상승과 촉진작용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19세기 전반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화가 폴 들라로쉬가 재현성이 뛰어난 사진의 등장을 두려워했다거나, 일찍이 인상파 화가들 가운데 드가나 마네가 당시로서는 첨단적인 미디어였던 사진의 특성을 자신들의 회화 작품에 응용한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이상의 작품은 작가의 여행과 일상에서 민감하게 촉수를 가동하여 포착한 이미지를 다시 후작업을 통해 색채와 톤을 조절함으로써 최종 작품에서는 원본인 사진 이미지에 풍부하게 회화성을 더하게 된다. 작가가 모티브를 선택하는 방식이나 프레임을 설정하는 방식도 상당히 회화적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작가의 작품 일부에서 미술사에 등장하는 작품을 떠올리게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2015년 모스크바 붉은 광장의 한 장면을 담은 <Father and Son>은 프랑스 인상파 작가들 가운데 구스타프 카이유보트의 <Paris Street: Rainy Day>을 떠올리게 하며, 2016년 호주 태즈매니아에서 포착한 <Milky Way Between Night and Dawn>은 미국의 화가 휘슬러의 <Nocturne in Black and Gold-Falling Rocket>을 연상하게 해준다.  

작가 활동의 초기부터 이상은 자신의 작품들에 회화적 문법을 적용하면서도 종종 그로부터의 일탈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그의 작품에는 르네상스적 비례와 균형, 그리고 바로크적 불균형의 원근법 등이 동시에 드러난다. 2013년 아프리카 보츠와나에서 촬영한 퓨마는 작가와 대상의 만남 사이에 개입한 사진이라는 미디어가 가장 적절하였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어서 2014년의 런던, 2015년의 모스크바, 2016년의 호주, 2017년의 쿠바에서 포착하는 이미지들은 이상이라는 작가의 조형 감각과 그 감각의 창조적 확산을 모색하는 시각예술에 있어서의 일련의 모색과 순례라고 생각된다.

이상은 색에 관해서도 실험한다. 최근에 작가가 관심을 갖는 물결의 흔들림과 여기에 비춰지는 이미지들을 추상에 가깝게 풀어놓은 작품들은 회화와 사진의 경계를 해체하며 표현 매체를 더욱 특정하기 어렵게 해준다. 이렇게 형태를 풀어놓음으로써 새로운 이미지와 색채의 충돌 및 대비를 이루는 이상의 작품들은 더욱 더 고전주의적 회화의 문법을 벗어나 화면에 자율성을 부여하게 된다. 이제 화면은 점점 상하좌우의 구분을 하는 것이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되며 원근법적 공간감이나 구도, 그리고 주제를 특정할 수 있는 테마와 화면을 지배하는 주요 이미지를 발견하기 어렵게 된다. 

이러한 이상의 작품에서 화면을 구성하는 중요 요소는 색상과 그 색상의 대비작용, 그리고 그러한 대비를 다시 하나의 전체로 묶어주는 물결이 흔들리는 모양이나 수면 위의 동심원의 확장과 커다란 출렁임이 된다. 여기에 더하여 작가는 원색에 가까운 색면의 대립과 충돌이 뿜어내는 에너지를 진정시키고 관람자의 시선을 쉬게 해주는 흰색이나 밝은 색의 개입이 군데군데 쉼표처럼 이루어지는 화면을 구사하는 색채학적 감각을 구사하고 있다. 

이렇게 형성되는 화면에 대해 작가는 보드리야의 Simulacrum 개념을 인용하여 자신이 실재의 사본(외형)을 표현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독창적인 작품이 되는 이미지의 출현을 의도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연히 발견되는 이미지가 아닌 작가의 내면에서 발현되는 조형에 대한 인식과 사유가 어떠한 계기에 유효하게 촉발되고 확장되는 작품을 통해 작가 이상은 매체의 한계를 넘어서 장르를 확산시켜가면서 시각예술의 고전적 규범을 뛰어넘는 새로운 작품의 세계를 확장하고 그곳에서 자신의 조형감각을 실험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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