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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주/소재와 형식으로부터 자유롭게 이야기를 하다

하계훈

소재와 형식으로부터 자유롭게 이야기를 하다

하계훈(미술평론가)

우리들은 이야기하며 살아간다. 오래 전부터 이야기는 우리 생활의 일부분으로 존재해왔다. 선사시대에는 그 이야기가 그림으로 전해지거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문자가 발명되면서부터는 글로 기록된 이야기가 당대는 물론 이어지는 다음 세대로 전해지며 보존되고 각색되어 유통되었다. 이러한 이야기는 근대에 이르기 전까지는 주로 종교적이고 교훈적 내용이 지배적이었고, 좀 거슬러 올라가보면 중세까지는 종교적 주제가 거의 유일한 이야기로서 우리 삶의 정신세계를 지배하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권선징악 주제에 기승전결이 틀에 짜인 이야기들이 각 나라마다 비슷하게 전해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대표적인 저서인 <시학>에서 비극의 요체는 장면의 묘사가 아니라 전체를 구성하는 이야기의 뼈대에 해당하는 플롯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 뼈대가 중세를 지나 셰익스피어의 시대 정도에 이르면 한꺼번에 두 가지 이야기가 전개되는 더블 플롯이라는 형식으로 좀 더 복잡화된다. 그리고 마침내 20세기에 들어서면 프로이트와 제임스 조이스와 같은 이들에 의해 우리의 의식 저 아래쪽에 있는 무의식과 잠재의식까지 동원되는 복잡한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유포되게 된다.

장현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자신의 이야기를 단도직입적으로 솔직하게 까놓고 싶지는 않은가보다. 그래서 작가는 은유적이거나 암시적인 화법을 구사한다. 하긴 누군들 자신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다 털어놓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을까. 그것도 잘 모르는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다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장현주가 선택하는 화법은 적절하다고 할 수도 있다. 다만 소통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언어, 장현주의 경우에는 주로 시각적 언어가 적절하게 매개 역할을 잘 해주어야 한다. 

장현주가 택하고 있는 이야기의 매개 수단은 다양하다. 기본적으로 회화적 이미지를 선택하고 있지만 문자와 기호, 추상적인 색채와 드로잉, 그리고 때로는 콜라주와 설치 작품 등 그 표현의 제한을 두기 어려울 정도로 폭넓고 자유롭다. 한 화면 안에 뿌려지듯 펼쳐진 이미지들과 숫자, 기호 등은 작품을 보는 사람들에게 보물찾기처럼 작가의 이야기를 찾아내도록 부추긴다. 그런가 하면 단색조의 톤으로 한 호흡에 그려나간 듯한 작품에서는 마치 동양적 회화의 일필휘지(一筆揮之)의 표현처럼 작가가 우리를 마주 대하고 분명한 목소리로 또렷하게 이야기해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작가의 작품 몇 개를 살펴보자. 아니, 작가의 이야기 몇 개를 들어보자. <Afternoon>과 <문득>은 관람자가 많은 걸 읽/듣게 해준다. <Afternoon>의 화면 안에는 비례나 원근법이 설명되지 않는 사람들과 기물들이 배치되어 있고 작가의 개인적 생활과 연관된 날짜와 장소 등을 짐작할 수 있는 숫자와 단어들이 기록되어 있다. 4시간 동안의 독서가 있었다. 그 중에는 화면 오른편 위에 보이는 시구(詩句)가 담긴 시집도 있었을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오래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주인공이 춤추며 노래하는 모습이 흑백사진처럼 묘사되어 있기도 하고 화면 아래쪽에는 중국 회화에서 볼 수 있는 듯한 동자들이 서로 장난치는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기도 하다. 아마 이 그림을 그리는 시기를 전후해서 작가는 여행과 독서, 그리고 5월의 바쁜 시간을 보내며 지내는 동안 이런 것들을 떠올렸던 모양이다. 작가에게 그런 어느 오후의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문득>은 <Afternoon>에 비하면 화면이 덜 복잡하다. 그러나 메시지의 폭발력은 더 강하게 보인다. 회색조의 엷은 레이어가 겹쳐진 이미지들을 살펴보면 시간을 읽을 수 있는 숫자와 요일과 달이 적힌 패널같은 오브제들이 화면 아래 반투명하게 모여 있고, 그 앞에 말 가면을 쓴 인물이 청색과 노랑, 붉은 색으로 그려진 테이블 앞에 서있다. 만화에서 흔히 쓰이는 말풍선 같은 도형 속에 암호 같은 기호들이 담겨있고 폭발적인 감정과 내용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 톱니 같은 테두리를 가진 말풍선이 눈길을 끈다. 화면 속에서 해독할 수 있는 문자는 테이블과 새, 그리고 ‘현명한 생각’이다. 화면의 중앙부가 폭발이라면 오른쪽은 현명한 침잠이다. 오른쪽 위 말풍선의 가파른 바위에 날개를 접은 인물이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겨있고 화면 오른쪽 중앙에는 그랜드 피아노가 단정하게 놓여있다. 문득 떠오른 강렬한 감정들과 이내 그것들이 침착하게 가라앉는 우리의 일상에서 결국 현명한 생각이 답인 것이다.

장현주의 작품을 읽/듣는 것은 이처럼 화면에서 보물찾기를 하듯 이미지와 기호, 문자를 상호 연관 지으면서 생각의 퍼즐 맞추기를 해나가는 재미가 있다. 작가는 이러한 작품을 구성하는 창작의 모티브가 촉발되는 순간들이 “일상생활에서, 심지어는 꿈에서 조차 고스란히 행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제시한 작품들에 대하여 작가가 본능적으로 품고 있는 마음, 가면에 감춰진 본모습이 무엇인지 알고자 아예 제목을 작업 행위 그 자체로 설정하고 거꾸로 그것들을 드러내 놓으며 마음껏 자유롭게 만들며 진행하였다고 말한다. 

이번 전시에서 또 하나 관람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말 가면을 쓴 인물이 여러 가지 기물들이 어지럽게 차려진 테이블 앞에 바로 앉아있고 그 뒷벽에 이 인물이 말하는 것같은 말풍선이 그려진 작품이다. 가면은 그 착용자의 마음을 감추기 위하여, 혹은 그 인물이 자신의 내면에 억눌러 온 그 무언가를 좀 더 쉽게 외면화시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착용하기도 한다. 가면에 의해 부여되는 익명성은 그 착용자를 용기 있게 만들고 일탈에 대한 유혹을 가중시키도록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현주의 가면 인물은 명확하게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구사하지 않고 있다. 말풍선 안에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메시지는 당신과 나, 그리고 모종의 의미를 담은 숫자와 영어 알파벳뿐이다. 

당신과 나, 둘 사이의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싶은 메시지는 말 가면을 쓴 인물이 등장하는 또 하나의 캔버스 작품을 통해 간접적으로 읽을 수 있을 것같다. <말 갖다 붙이기>라는 제목의 그림에서 말머리 가면을 쓴 채 가운을 입고 서있는 인물은 왼손으로 장난감 비눗방울 발생 기구같은 도구를 들고 알록달록한 조각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자세히 보면 그 조각들 가운데에는 밝게 웃는 스마일 이미지가 여러 개 있고 배경에는 행복(Happy)이라는 영어 단어가 쉽게 읽을 수 있게 쓰여 있다. 화면 네 귀퉁이에 알록달록한 색띠로 쓴 숫자들은 작가의 도움 없이는 해독이 불가하다. 다만 화면 오른쪽 절반에 파스텔 톤의 색띠가 상징하는 것처럼 행복하기를 희망하는 무언가와 연결 지어 해석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정직한  뇌>와 <정직한 심장>은 청색과 핑크색 계열의 아크릴 물감으로 빠르게 그려 나아간 붓의 흔적을 읽을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정직한 작용>은 그래픽 디자인을 연상시키는 꼼꼼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차갑게 생각하고 따뜻하게 공감하는 우리 삶은 결과적으로 우리 몸속의 소우주에서 이렇게 잘 정돈되게 작용하는 것이리라. 

마지막으로 장현주의 드로잉들은 다른 작품들보다 좀 더 형이상학적이고 초현실주의적인 특성을 보여준다. 연필이나 색연필을 이용하여 단색 톤으로 선묘를 해나간 작품에서 식물의 뿌리같은 갈래들이 사람의 손으로 이어지거나, 다트판이나 룰렛같은 원형의 판 중심으로 마치 연기가 내뿜어지거나 그곳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표현된 작품들은 좀 더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을 바탕으로 제작된 만큼 해석을 위한 작가의 서술이 요구된다. Mind Control. Come on, 그리고 Fly라는 단어가 삽입된 화면을 통해 작가의 심정의 일부를 엿볼 수 있을 것같기는 하지만 모호함을 완전히 해소해주지는 않는다.

이처럼 장현주의 작품들은 회화적 이미지와 기호, 색채, 그리고 문자 등을 화면에 도입하여 작가의 일상에서 떠오르는 생각과 느껴지는 감성을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하고, 그것을 관람자와 공감하고 교류한다. 장현주는 자유로운 그리기를 통해 관람자들이 자신들의 다양한 내면 심리 상태를 작가의 작품에 투사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관람자들과 소통하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꾼인 작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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