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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석 / 환상적이면서도 사변적이고 자아규범적인

하계훈




환상적이면서도 사변적이고 자아규범적인

하계훈 | 미술평론가



심은석의 입체 작품들은 조형적 세련미와 완성도에 의해 관람자의 일차적 접근을 어렵지 않게 해준다. 작가는 현실에서 우리들이 이미 경험한 감각과 정서를 바탕으로 선택된 주제를 사실주의적 표현으로부터 더 연장하여 환상적으로 표현한다. 치약이나 물감 튜브를 짜본 사람들은 그 속에서 무엇이 나올 것인가를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심은석의 튜브에서 나오는 외눈박이 괴물체와 꽃술에 외눈이 박힌 검은 식물들은 뜻밖으로 받아들여지면서도 곧바로 우리들이 한번쯤은 상상해보았던 장면이므로 어렵지 않게 수긍이 되며 작가와 관람자 사이의 은밀한 공감으로 시각적 유대감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어 준다.

심은석 작가는 신체를 중심으로 인물의 표현을 하는데 있어서 실제를 넘어서는 기형과 혼종의 표현을 통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형상(작가의 표현을 빌면, 기이하지만 친숙한 형상들)을 제작한다. 이러한 표현의 욕구는 조형작업을 하는 대부분의 작가들이 한번쯤 가져보는 창작욕구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적 표현의 완성도를 건너뛴 작품들은 심은석의 작품들에서 보여주는 것같은 작가와 관람객 사이의 교감을 이루어내기가 쉽지 않다.

작가는 특히 눈에 집중한다. 인간의 오감 가운데 가장 전달력이 높은 감각이 시각이고, 시각적 체험은 당연히 눈으로 전해진다. 어린 시절 작가의 경험과 그로부터 자라나온 상상과 환상으로까지 확대된 이미지가 조형적 소통의 대표 신체기관으로서의 눈으로 표현된 작품들은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대형 캔버스에 묘사된, 정면을 응시하는 커다란 안구의 극사실주의적인 표현이나 실제 사람의 눈에서 적출한 것같이 실감나게 표현된 오브제로서의 안구들은 기이하면서도 이상스럽게 친숙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감정은 프로이트의 언캐니(uncanny) 개념으로 해석하면 거세의 공포도 함께 함축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으나, 이에 앞서서 심은석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여러 형태의 안구들은 작가의 개인적인 환상적 경험이 습득되고 다시 작품을 통해 우리들에게 전달되는 주된 매개체이자 통로로서의 기능을 하는 기표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초현실적 혹은 환상적 표현에는 그로테스크하거나 심리적으로 거리감을 갖게하는 시각적 요소들이 포함되기도 한다. 심은석의 작품들도 부분적으로 이러한 인상을 불러일으키는 조형적 표현이 도입된다. 인체의 표현에 있어서 자웅동체의 토루소를 표현한다거나 샴쌍둥이의 붙은 머리처럼 남녀의 두상이 하나의 볼륨으로 어우러지는 흉상 형식의 작품들은 현실적으로 일반화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각적 교란이나 심리적 충격을 크게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 작가가 비례와 균형, 해부학적 정확성 등의 고전적인 기법을 충분히 마스터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관람자로서의 우리들의 의식 속에서 한번쯤 그려보았던 형상과 형질에 대해 작가는 이런 것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내면세계로 보고 있으며 현실과 환상(혹은 상상)의 융합을 통해 예술은 더욱 그 본질을 드러낸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통제 불가능한 신경증적인 어지러움으로 귀결시키지않고 오히려 그 어떤 재현적 작품들이 귀결되는 추상적 표현보다도 세련되고, 부분적으로 신조형주의적인 정신성을 드러내는 입체적 추상으로 전환하는데 성공한다.

최근 작가가 제작한 원뿔과 피라미드 형태의 볼륨이 뾰족한 끝부분을 통해 극적으로 접점을 향해 수렴해가는 오브제들은 표면을 캔버스 천으로 메고, 양쪽을 동류색이나 보색 계열의 물감으로 그라데이션 처리를 하여 시각적 장식성과 서정적 재현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심은석은 이전의 입체 조각 작품에서도 형태와 볼륨 뿐 아니라 작품 표면의 질감과 채색에도 집중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표현의 연장선에서 제작된 추상적 입체로 구성된 작품들은 앞서 작가가 언캐니 혹은 환상적 모티브를 주축으로 두 개의 대비되는 개념과 상황을 표현해 온 인체형상을 단순화 또는 추상화 한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작가의 창작 단계의 새로운 전환이 우리의 경험과 정서의 긴장감을 내려놓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방식으로 작가와 교감하는 은유적 조형의 장을 열어주는 셈이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심은석의 작품은 환상적이면서도 사변적이고 자아규범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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