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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 / 보이는 것을 넘어서 보게 되는 것에 대한 공감

하계훈



보이는 것을 넘어서 보게 되는 것에 대한 공감

하계훈 | 미술평론가



작가로서의 출발 무렵 최연은 자신의 주변 인물이나 풍경 가운데 시각적 영감을 자극하는 모티브들을, 주로 파스텔을 재료로 하여 사실적으로 표현해 왔다. 그림을 그리는 동시에 시를 쓰기도 했던 작가는 화가들 가운데에서도 보통 이상의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러한 감수성은 인물 및 풍경과 교감하는 심상을 담은 작가의 손길과 붓자국을 통해서 작품 안에서 드러나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연의 경우 작가가 그린 상당수의 초기작에서부터 작가와 모델 사이의 상호 교감과 소통이 느껴지는 작품들이 적지 않았다.

작가는 데생의 과감함과 색채 사용의 민감함을 특징으로 하는 작품들을 주로 제작해왔는데, 초기 파스텔 작품에서 이후의 유화 작품으로 이행해오는 동안 꾸준하게 관람자들에게 관심을 받아왔으며 판매가 이루어지거나 공모전에서 수상을 하는 성과로 이어져 왔다. 재료와 관계없이 최연 작가의 화면에 담기는 인물들의 모습은 순간적으로 포착된 장면이 회화적으로 재현되어 놀라움을 일으키고 관람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마치 프랑스 화가 드가(Degas)가 무대 위 무희들의 동작이나 작가 자신의 주변 인물의 평범한 동작을 순간적으로 포착하여 스냅사진처럼 화면에 표현한 것같이 최연의 작품에서도 이런 종류의 재빠른 눈길(snappiness)로 의미 있는 순간을 포착해내는 촉수가 작동하는 것이 느껴진다.

이러한 제작 태도는 현재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지만 모티브의 선택이나 그것에 대한 해석, 그리고 자신의 감성과 사유를 모티브에 투사하는 방식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경험을 넘어 좀 더 사변적으로 진화해 나아가고 있다. 작품 표현 양식이나 재료에 있어서도 최연은 점차 유화나 목판에 새긴 채색화 등으로 표현 형식의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으며, 가끔은 흙을 빚어 인물상을 표현한다거나 화면에 단순한 물감이 아닌 종이와 흙 등 다양한 재료를 적용하는 콜라쥬 형식의 작품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주제 면에 있어서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주목하는 것은 인류 보편의 주제일 수 있는 모성(母性)에 대한 사유다. 작가가 화면에 담아내는 모성이라는 주제는 이미 대형 작품으로 표현했었던 피에타상에서 볼 수 있는 종교적 상징성을 가진 모성에서부터 작가의 어머니의 초상이나, 누군가의 어머니일 수 있는 나이든 여인들의 표정을 순간적으로 포착한, 평범하면서도 정감을 자아내는 초상 등을 통해서 여러 차례 표현되기도 하였다. 그밖에도 자신의 딸과 며느리가 손주들의 엄마로서 행동하는 생활 속에서 포착되는 모성, 그리고 그러한 모성에서 촉발되는 사랑의 감정을 시각화하는 표현 의지들이 화면에 담기기도 한다. 작가는 이러한 표현을 화폭에 담아내는데 있어서 작가 특유의 관찰력과 공감능력을 적절하게 발휘하면서 조형적 표현의 재능을 발전시켜왔다. 그리고 이번에 작가가 작업의 화두로 붙잡은 모성에는 좀 더 개인적인 작가의 서사가 화면에 추가되어 있다. 

너무 어린 나이에 떠나가신 어머니는 작가의 관념 속에 존재하지만 쉽게 느껴지지 않고 마음 속에 명확하게 그려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와 관계없이 작가로부터 분리된 모성은 늘 작가의 마음 한 구석에서 마치 그림자처럼 성장과정을 동반하여왔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이제 작가는 작품 속에서 그렇게 동반해 온 모성을 호출하고 마주하여 색채로, 빛으로, 그리고 촉각적으로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작가의 말처럼 “나를 있게 한 고통과 사랑의 연대”를 느끼기 위해 작가는 붓을 들고 흙을 빚었다.

모성에 대한 최연 작가의 사유가 확대됨으로써 그것은 생명의 연속이라는 주제로 확대되어 흙으로부터 생성하는 자연의 식물들에서도 생명과 모성을 읽어내기도 하고 바닷가의 모래사장에서도 문득 모성의 격려를 느끼게 한다. 많은 문학작품에서 대지는 곧 모성의 상징으로 비유되기도 하는 것처럼 황토흙으로 일구어 놓은 텃밭에서 자라나는 녹색 식물들은 모체로부터 생명을 얻고 성장의 자양분을 받아 자기를 완성해가는 하나의 주체로서의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 이 밖에도 작가의 눈에 포착되는 들판과 논에 고인 물, 그리고 그곳에 비춰져서 작가의 망막으로 전해지는 풍경들 모두가 작가의 작품 속에서는 모성과 사랑의 단초를 붙잡을 수 있는 그 무엇이 되기도 한다.

최연 작가의 작품들을 오래 동안 보아왔다면 이번 개인전은 그런 관람객들에게 작품을 감상하는 관점의 수정을 요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가의 시선은 이제 보이는 것 너머의 그 무언가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으로 스스로를 조여 놓기도 하고 형언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느껴지는 모성을 새롭게 감지하도록 자신을 독려하기도 한다. 이러한 감성의 흐름이 작품으로 어떻게 풀어내어지는가가 궁금하기는 하지만 정작 조형적으로 그것이 그리 크게 드러나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작가의 화면에 담긴 이미지와 색채들에 접근하는 관람객들은 이전보다 더욱 민감하고 사색적이어야 작품 속으로 더욱 깊이 들어갈 수 있으며 그곳에서 작가와의 공감대를 넓힐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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