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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숙 / 외연(外延)에서 본질로의 의식의 내향(內向)을 이끄는 유리작업

하계훈



외연(外延)에서 본질로의 의식의 내향(內向)을 이끄는 유리작업

하계훈 | 미술평론가



미술 재료들 가운데 유리는 그 어떤 것보다도 매혹적이면서 동시에 그만큼 위험하고 치명적일 수도 있다. 투명하고 영롱한 유리는 시각예술의 재료 가운데 높은 표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물성을 가졌으며, 과거부터 이러한 물성과 희소성 때문에 매우 귀하게 사용되어져 왔다. 역사를 살펴보면 예술 작품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주거의 격을 높이고 여러 집기를 화려하게 만들 수 있게 된 것도 유리라는 재료 덕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유리는 그 어떤 시각예술 재료보다 빛과의 상호작용이 중요한 물질이다. 유리 작품은 빛이 내부뿐 아니라 외부에서도 작용함으로써 작품의 예술성을 고양시킨다. 판유리의 경우는 건축과 결합하여 공간의 내부와 외부가 만나는 접점에 자리잡고서 벽으로 분할된 양쪽 공간에 전개되는 빛을 다루어 왔다. 유리창은 빛의 작용에 의해 투과와 반사, 그리고 굴절을 일으킴으로써 우리의 시각적 체험을 회화나 조각보다 풍부하고 환상적인 것으로 만들어 주었으며, 예술적 상상력을 증폭시키는 데에도 크게 기여해왔다. 이러한 작용은 소형 유리 오브제 작품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최혜숙은 유리를 주 재료로 다루는 작가로서 이러한 유리의 속성을 이용하여 작업의 초기에는 투명하고 영롱한 유리 오브제에 원색의 채색을 가미하여 여성의 활동 도구라 할 수 있는 가방이나 구두 등을 보여주었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유리와 빛의 상호 작용이 주는 시각적 효과를 놓치지 않았으며 일부 작품은 작품과 생활기의 경계를 넘나들 수도 있는 위치에 좌표를 정해주기도 했었다. 본래 가죽이나 헝겊으로 만들어지는 이러한 생활 기물들은 유리를 통해 일상의 쓸모를 초월하여 한결 더 화려하고 매혹적으로 변신하였다. 실생활을 넘어선 오브제로서의 유리 가방과 유리 구두는 바라보는 여성들의 상상력과 환상을 충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는 작품으로 탄생되었다. 

작가는 이러한 가방과 구두 등의 오브제에 수입 고가품의 형태와 로고 등을 도입함으로써 좀 더 직설적이고 도발적이기까지 한 메시지를 담아왔다. 최혜숙이 이렇게 유리로 재현해내는 ‘명품’이라고 불리는 수입 고가품 물건들은 밤새 매장 앞에서 줄을 서서라도 구입하려는 성취와 욕망의 대상이며, 마치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현대사회의 신분증명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얼마 전에 미국의 한 대학에서는 우리가 입고, 메고, 신는 물건이 심리적 태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도 했다. 연구의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희귀하고 고가품일수록 자신감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에게 쏟아지는 공격적 분위기에 대항하는 방패와 같은 대항력을 주기도 하고 사람에 따라서는 그 물건들이 분위기와 에너지를 충전해준다고 믿었다고 한다.

최혜숙 작가는 유리가 가진 고급스러운 속성과 거기에 가미되는 유명 상표를 통해 이처럼 생성되는 자신감을 신뢰하던 초기의 의식이 미국 유학 생활을 계기로 새로운 방향으로 선회하는 모멘텀을 맞이했다고 한다. 아름다움은 불변하는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유전한다'고 했다. 즉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것. 그리고 그 변화는 생성과 성장을 거쳐 소멸에 이르는 순환으로 하나의 사이클을 마치고 다시 이 사이클을 확대 또는 축소하여 변형, 반복하기도 한다.

작가는 유리의 기본 속성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작업을 진행한다. 화려하고 영롱한 유리 오브제가 시간이 흐르면 그 속성을 내려놓으면서, 흙 속의 물건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투명성과 선명도를 망각이나 시간의 축적과 맞바꾸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한 물리적 현상에 그치지 않고 오브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의식에도 변화와 전환을 일으켜준다. 투명하지도 않고 영롱하지도 않은 유리에 담기는 시공간적 축적과 숙성이 뿜어내는 사유는 시각예술의 즉물적 해석을 좀 더 초월적(meta) 해석으로 전환하게 만들어준다.


최혜숙이 이러한 유리 작업을 통해 일으키는 초월적 의식과 태도는 역사 의식과 결합하여 ‘미(美)’의 항상성과 역사를 사유하게 만들었다. 이제 유리는 본래의 속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오히려 그 본래의 속성을 지움으로써 역사의 메타포를 담는 도구이자 장(場)이 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자신의 사유의 화두와 주제를 두 방향으로 유리 작품에 담아낸다. 먼저 작가가 처음부터 제시해왔던 오브제로서의 유리작품에 시간의 진행에 따라 그 형태의 자연스런 부식과 소멸이 담겨짐으로써 예술적 사유의 깊이를 심화시키는 작품들이 한 방향을 이룬다. 그리고 다른 한 방향은 이렇게 형상변형이 이루어지는 오브제들로부터 불러일으켜지는 사유와 명상을 시각적으로 투사하는 회화적 이미지로서의 유리판 회화 형식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화려했던 가방과 구두의 형태와 외피가 소멸해가는 모습은 자연스럽게 사물의 외연(外延)에서 본질로의 의식의 내향(內向)을 이끌게 되며, 미래의 아름다움에 대한 상상은 과거의 아름다움이 오늘날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살펴보는 시간적 복합대위(複合代位)를 유도하게 된다. 최혜숙은 우리 미술사에서 조선시대의 미(美)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신윤복의 미인도 속의 여인에게 가방과 구두를 제공하여 시간을 초월하는 미의 현존이 가능한 것인가를 실험한다. 또한 마치 낡은 사진처럼 풍화된 유리판 위에 곳곳이 헤어져 낡아보이는 고급 명품 가방과 그것을 쥔 인물의 손 부위를 확대 표현하여 그 오브제들의 기능이 지속가능한 것인가를 질문하는 듯하다.

최혜숙 작가의 최근 작품들이 주는 반전은 자신이 다루는 매체의 기본적인 속성을 최대한으로 배제하는 역설적인 표현력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유리가 영롱하거나 투명하지 않다면 그 기능이 소멸하는 것일까. 혹은 유리의 기본적 속성이 오히려 그 곁에 있는 회화나 사진 이미지와 결합하여 시각적 감흥을 넘어서서 정신으로의 확장된 미감을 불러일으켜주는 것인가.

르네상스 시대에 미켈란젤로와 시를 지어 교환하며 플라토닉한 사랑을 나누었던 비토리아 콜로나는, 예술가의 작품에 즉물적으로 감탄하는 자는 그 작가를 그저 조금 이해하는 것뿐이며, 작가의 정신을 이해하는 사람은 그를 더 깊이 알게 되고 존경하게 된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최혜숙의 작품의 변화과정을 추적해보면 우리의 관심이 작품에서 작가로의 자연스럽게 이행되면서 사유의 깊이를 더해주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작가가 선택한 주제가 선명한 것과 대비하여 최혜숙이 다루는 유리라는 재료의 속성이 주는 아이러니가 작품에 대한 흥미를 더해주면서 작가를 더 깊이 알고 싶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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