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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록의 회화세계 – 이데아(Idea)를 향한 작가의 숙명적 그리움

하계훈



김강록의 회화세계 – 이데아(Idea)를 향한 작가의 숙명적 그리움


하계훈 | 미술평론가
 
김강록은 20여년 넘게 ‘율려(律呂)’를 모티브로 일관되게 작업해 왔다. 율려는 국악에서 12율의 양률(陽律)과 음려(陰呂)를 통틀어 일컫는 말로 우리나라 전통 악률의 총칭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서양의 ‘도레미파솔라시’가 7음계이고 전통 음악인 ‘궁상각치우’가 5음계인 것에 비하여 율려는 12음계라 할 수 있는데 1개 음은 반음에 해당한다. 따라서 그만큼 촘촘하고 세밀하게 표현되는 음의 세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12음계로 구성된 율려가 시각적인 요소로서 색으로 치환된다면 그 색채의 전개는 무지개색을 넘어서는 다양한 색채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음(혹은 색채)들은 운동성을 띠는 양(陽)과 휴식과 수렴을 나타내는 음(陰)이 서로서로 교차하여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정신적 안정과 에너지의 순환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다소 추상적인 이론이지만 요약하자면 율려는 조화와 균형에 의한 완성의 세계를 지향하는 예술적 행위 가운데 음악적 요소를 중심으로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파악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고대의 세계에서부터 음악은 인간 문예활동의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아 왔으며 고귀하고 필수적인 활동영역인 만큼 뮤즈(Muse)신들의 수호와 격려가 늘 인간과 함께 해왔다. 김강록은 이러한 음악 세계의 현상 속에서 이끌어낸 사유에 동양사상의 요소를 시각예술의 영역에 도입함으로써 청각적 음의 조화와 균형을 시각적 색과 형태의 조화와 균형으로 치환하여 율려의 정신을 추구해왔다고 볼 수 있다.

회화에 있어서 도상학적 해석을 넘어 정신성을 본격적으로 사유한 대표적인 작가들 가운데에는 칸딘스키와 몬드리안이 있다. 칸딘스키는 몬드리안과 함께 20세기 초 미술의 역사에 있어서 추상회화의 선구자로 일컬어지고 있으며 근본적인 조형원리를 탐구해 나아감으로써 미술의 정신성 및 자율성을 주장하였다. 두 작가가 추상미술의 원조로서 평가받고 있지만 몬드리안이 신지학(神智學 theosophy)에 입각하여 물질보다는 정신을 강조하는 신비주의적 철학체계를 바탕으로 작품을 전개하여 신플라톤주의적이 정신성을 강조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면, 칸딘스키의 작업은 이성보다는 무의식적 직관과 우발적 감흥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미술사 연구에서는 흔히 두 작가로 대표되는 추상의 형태를 감성적 ‘뜨거움’의 추상과 이성적 ‘차가움’의 추상으로 대조시켜 논하기도 한다.

김강록의 작품은 이러한 추상의 생태계에서 두 가지 대립되면서 상호 보촉(補促)적인 요소를 적절하게 담아냄으로써 감성적인 것과 이성적인 것, 의식적인 것과 무의식적인 것들의 대비와 융합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다. 악기를 가지고 음계의 조합을 이루어 세상의 진리에 접근하려는 음악가들의 노력이 있어왔다면, 색채와 형상의 조화와 대비를 통해서 진리의 세계로 나아가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 화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예술의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근본적으로 찾아들어 가다보면 18세기 미학자 샤를 바토(Charles Batteux·1713~1780)의 논문에서 결론 내린 것처럼 모든 장르의 예술이 하나의 원리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지만, 음악과 미술 장르를 대비시킨다면 음악은 ‘음’ 미술은 ‘색과 형태’를 예술적 원리를 추구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요소들은 하나의 원리로 귀결되는 귀납적 필연성의 도구인 셈인 것이다. 특히 국악의 경우 ‘궁상각치우’의 5음계는 곧 우리 전통의 색채인 오방색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주장을 간접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셈이다.

영국의 인류학자 프랜시스 골턴 경(Sir Francis Galton)은 19세기 말에 특정한 음을 들을 때 그에 상응하는 색이 연상된다는 이론을 발표하여 음악과 미술의 밀접한 연계성을 강조하며 학계의 관심을 끈 적도 있다. 골턴 경의 주장을 뒤집어 보면 우리는 특정한 색에서 특정한 음을 연상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해석의 연장선상에서 김강록의 작품을 분석, 감상해보면 작가의 율려 정신에 보다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동양철학에 기인한 율려를 색과 형태로 시각화해오고 있다. 작가 작업노트를 통해 스스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우주의 생명과 정신성을 지향하는(그리워하는) 작업의 태도는 마치 플라톤의 이데아(Idea)를 향해 나아가는 작가의 숙명적 그리움일 수 있다.  
 
김강록의 작품에서 대부분의 화면은 밝고 경쾌한 색채가 대비와 조화를 이루며 적절하게 배치된다. 형태적으로 볼 때 수평과 수직의 구도가 안정적으로 구성된 가운데 화면의 중심부를 위주로 하여 대부분 서로 다른 크기의 원형의 형상이 중력을 거슬러 둥둥 떠다니거나 서로 클러스터를 형성하면서 색채로 표현되어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색채는 원색에서 크게 채도를 삭감하지 않은 밝은 색들이 대부분의 화면을 형성하며 그 사이사이를 추상표현주의적 물감 흘리기나 뿌리로 보강함으로써 대부분의 작품들이 마무리된다. 종종 일부 색면은 프레스코 벽면과 같은 질감을 드러내기 위하여 다른 재료가 도입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김강록의 작품은 색채와 그것을 담은 형상이 지배적이므로 질감의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화면 속의 색면과 그들이 만들어 내는 형태는 모종의 구조나 사물을 연상해내도록 유혹하는 측면이 없지 않지만 작가는 이를 냉정히 저지하기 위하여 작품의 제목을 일련의 숫자로 제시한다. 작품들은 화면 안에서 움직임을 감지하지 않도록 안정적인 구도로 배치된 것과 이와 대조적으로 모종의 흐름과 움직임의 방향성을 읽을 수 있는 두 가지 부류로 나눠진다.

기본적으로 김강록의 작품은 화면 위에서 색면과 색면이 관계를 맺으면서 조화와 통일을 이루는 형식으로 제작되는 작품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작품들이 내포하는 의미에 있어서 작가는 광음파(光音波) 즉, 시각적인 빛으로 보일 수도 있고, 음률로 들려질 수도 있는 물리학적 혹은 철학적 요소가 자신의 작품에서 발휘되면서 시각적인 차원에서의 율려의 세계가 표현된다고 말하고 있다. 작가는 화면 속의 색의 떨림은 곧 관람작의 영혼을 울리는 광음파적 침투로 작용하여 시각적 체험을 넘어서는 우리의 정신세계에서 은밀하게 관객의 내면 깊숙이 공명하게 된다고 보고 있다.

김강록의 ‘율려’ 연작을 추적해보면 2001년 청년작가초대전에서 선보인 이래 20여 년간 꾸준하고 일관되게 추진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작가는 창작하는 화가이면서 동시에 미술교육현장에서 학생들을 이끌어가는 지도자로서 예술가의 사회적 실천을 동시에 수행하면서 서양 철학의 큰 맥인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이나 동양 철학의 음양사상과 연결되어 색채로서 음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감각적 세계를 화면에 펼쳐놓음으로써 신화적 환기로부터 일상의 세계를 하나로 묶어내는데 작가의 생명을 걸고 있는 셈인 것이다. 작가의 말대로 닫힘도 열림도 아닌 상태로 ’율려‘의 세계로 들어가 우주의 진리와 생명의 근원, 인간이 오랜 역사 속에서 찾아내려고 했던 ’그것‘에 대한 탐구자로서의 김강록의 작업에 격려와 기대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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