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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환

하계훈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40년을 한 주제에 몰두한다면 어떨까? 지금으로부터 딱 40년 전인 1969년 7월 21일 전 세계에서 10억 명이 넘는 인구가 지켜보는 가운데 미국의 유인 우주선 아폴로 11호가 달 표면에 착륙했다. 그리고 그 해에 오경환은 서울의 프레스센터 화랑에서 우주와 미술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발표하는 첫 개인전을 열었다. 그로부터 40년 동안 작가는 ‘우주’를 주제로 자신만의 작업에 몰두하면서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하나의 길을 걷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오경환이 완전히 세상과 등을 지고 은둔의 상태에서 자기 세계에만 몰입한 것은 아니다. 그는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포병장교로 군복무를 마친 해인 1965년에 창작미술협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그와 동시에 고등학교에서 5년간 미술교사로 재직하였고, 1970년부터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2005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장으로 정년퇴임할 때까지 35년간 후학을 양성하는 작업과 창작활동을 병행해왔다.

오경환은 자기 의지가 뚜렷하고 타협에 서투르다. 그는 1973년부터 10년간 주류 화단에 반기를 든 대안그룹인 ‘제3그룹’을 만들어 미술계를 바로 가게 만들어보려는 현실참여 작가이기도 했다. 미니멀리즘 계열의 추상미술이 미술계를 주도하는 당시에 제 3그룹의 활동은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과 같은 양상을 보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10년 동안 뜻을 같이하는 후배들을 이끌며 한국 현대미술의 올바른 좌표를 설정하는 일에 몰두하였다.

이러한 활동의 과정에서도 오경환이 일관되게 관심을 가져 온 대상은 우주 공간이었다. 그는 우주에 대한 환상을 키우면서도 과학적 정확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은 환상적이면서도 과학적이다. 그리고 과학적이면서도 과학적 정확성에만 머무르지 않는 예술적 경지를 보여준다. 더 나아가 오경환에게 있어 우주는 신비로운 환상과 호기심을 키워가는 예술 작품 창작의 대상에 그치지 않고 무한과 인간실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사유하게 하는 철학의 장이다. 오경환은 대형 캔버스 속에서 일관되게 우주의 풍경을 탐구하면서도 언제나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과 실험에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장으로 정년퇴임하던 2005년에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대규모 개인전에서 전시 제목을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라고 붙였던 것은 오경환의 이러한 성격을 잘 보여준다. 일민미술관의 디렉터는 이 전시의 서문에서 “(대학 교수로서의) 정년이 지났으면서도 늘 도전하는 젊은 예술가로 살고 있는 작가의 작업세계를 돌아보는 일은 곧 한국 현대미술이 걸어온 길을 반추해 보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제목을 붙였다”고 말했다.

이 전시에서 작가는 초기작부터 최근작에 이르는 120여 점의 대형 캔버스 작품들을 선보였었다. 검고 짙푸른 우주공간 속에서 화려한 빛을 발산하는 행성들, 별과 운석을 모티브로 한 추상 작품들은 관람객들이 마치 우주공간을 바라보거나 우주선을 타고 광활한 우주공간을 날아가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만들어 주었다. 무한한 우주 공간을 표현한 오경환의 유화작품은 우주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게 함과 동시에 작가의 공간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 자세를 가늠하게 한다.

우주는 인간의 인식체계를 넘어서는 초월의 영역에 존재한다. 그것은 태고의 신비이면서 절대적 공간이고 초월적 존재의 영성과 기(氣)를 품은 물리적 공간이면서 인간의 상상력과 환상을 자극하는 심리적, 정신적 영역이기도 하다. 아폴로 11호가 우주를 날아 달에 도달하고 그곳에서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지구를 대상화하여 바라보는 상황을 맞아 오경환은 자아에 대한 객관적 관찰과 자아성찰의 철학을 키울 수 있었다. 우주 풍경화를 통해 오경환은 인간이란 우주의 한 부분을 이루는 작은 존재이며 무한한 우주 공간의 그 어느 곳에서 태어나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는 존재라는 도교적인 깨달음을 얻게 되고, 그 깨달음을 시각적으로 표현해오고 있다.

낙천주의적인 그에게도 시련의 시기가 있었다. 그는 1997년 대장암 2기 진단을 받고 오랜 투병 끝에 병을 이겨냈다. 그 후 그는 몽골, 러시아, 인도 등을 여행하기도 하고 한 때 거제에서 가족과 떨어져 홀로 작업에 몰두한 적도 있었다. 오경환은 이제 올해 처음 출발하는 인천아트플랫폼의 입주 작가로서 후학들과 함께 창작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오래 동안 몸에 밴 습관에 따라 새벽에 일어나 2시간 거리의 먼 길을 가면서 작업을 구상하고 그것을 작품에 옮겨 담는 규칙적인 일상을 지속하는 ‘젊은’ 원로 작가 오경환은 오늘도 우주의 저편을 꿈꾼다. 오경환은 말한다. “어쩌면 예술가란 평생 절망을 연습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런 절망이 있기에 그것을 이겨내야 그림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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