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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립미술관

하계훈

우리말에 ‘어정쩡하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분명하지 아니하고 모호하거나 어중간하다’고 설명되어 있다. 즉 이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저것도 아닌 상태를 어정쩡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필자가 이 말이 생각난 것은 최근 우리나라의 기초적인 자치단체에서 문화공간을 하나 둘씩 개관하고 있는데 앞으로 그 운영이 분명한 색깔을 드러내지 못하고 어정쩡한 상태에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있는 공공 미술관은 중앙정부에서 운영하는 유일한 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에서부터 각 시도에서 운영하는 도립, 시립 미술관들, 그리고 그보다 더 작은 단위인 동, 군 등의 행정단위에서 설립, 운영하는 미술관들로 구성되어있다. 시도 단위 아래의 미술관 중 현재 이미 설립되어 운영되는 미술관으로는 강원도 양구군의 박수근미술관, 전라남도 보성군의 백민미술관, 충청북도 청원군의 대청호미술관, 서울시 송파구의 예송미술관, 그리고 지난해 말에 개관한 서울시 성북구의 성북구립미술관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성북구립미술관은 최근에 설립된 시설이면서 그 위치나 시설에 있어서 다른 기초단위 행정부서의 미술관과 다르게 서울 시내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으며 독립적인 건물로 운영되고 있어서 이 미술관의 개관을 계기로 우리나라에서 주민들의 생활 속으로 좀 더 밀착하여 운영될 수 있는 구립미술관 수준의 미술관 시대가 개막되는데 따른 우리들의 문화 환경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성북구립미술관은 성북구 도시관리공단에서 성북구의 위탁을 받아 관리하는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성북구립미술관은 관장을 별도로 두고 있지 않으며 조례의 해석상 구청장을 실질적인 관장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작은 규모의 미술관이지만 엄연한 독립기관으로서 나름대로의 규모와 격에 맞는 관장을 선임하는 것이 필요하겠으나 성북구립미술관의 운영조례에서는 관장을 비롯한 미술관의 운영 조직에 관한 언급이 없어서 기관이 독립적이지 않으며 성북구의 문화체육과 소관 사업부서의 하나로 간주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데, 새로운 형태의 소규모 미술관이 출발하는 시점에서부터 미술관 운영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앞으로의 성북구립미술관 운영이 전문성이나 자율성에 있어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염려스럽게 만들고 있다.

관장이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성북구립미술관의 중요한 업무에 관해서는 2년 임기의 위원들로 구성되는 성북구립미술관운영자문위원회를 설치하고 구청의 문화체육과장을 간사로 두어 이 위원회의 의견이 구청장의 결심을 돕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이 조례에는 언급되고 있지 않지만 개막전의 도록에서는 원로화가 서세옥이 명예관장이라는 타이틀로 성북구립미술관의 개관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실어놓았다. 명예관장이라는 형식은 박수근미술관이나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운영하는 Soma미술관 등에서도 채택하고 있는 방법인데 관장이 부재한 상태에서 명예관장이라는 직함은 미술관 업무의 효율적인 수행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으며 운영상의 책임과 권한 문제에 관해서도 명확성이 떨어지는 유명무실한 제도라고 생각된다. 미술관의 운영은 미술관 내부 전문인력의 손에서 이루어져야 활성화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

성북구립미술관의 조직과 운영방식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있지만 성북구에서 제정한 조례에서 긍정적으로 눈에 띄는 것도 있는데 그것은 제14조의 ‘작품 불용결정’에 관한 사항이다. 제 14조 1항에서는 ‘구청장은 본래의 목적에 사용할 수 없는 작품이 있을 때에는 위원회의 자문을 받아 그 작품에 대하여 불용결정을 할 수 있다’고 되어 있으며 다음 항에서는 ‘제1항에 따라 불용결정을 한 작품은 매각 또는 폐기할 수 있다’고 되어있다. 이제 막 출발한 미술관이고 아직은 작품을 수집하는 쪽으로 힘을 기울여야 하는 시기지만 미술관의 초기에 소장품 관리에 대한 방법과 절차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정리해놓은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동이나 군단위의 소규모 미술관들이 우리들의 생활공간 속에 보다 깊숙이 다가서고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러한 공간들은 보다 큰 규모의 미술관들에 비하여 지역 거점을 잘 활용하면 주민친화적이고 참여도 높은 공간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장점과 공간이나 예산, 인력 등의 규모에서 대형 미술관들보다 제한적이기 때문에 전시나 교육 활동에서 한계가 있다는 단점을 동시에 안고 있다.

앞으로 성북구립미술관이 모범적인 소규모 미술관의 운영사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기존의 유시기관이 채택한 설립방법과 절차 등에서 문제가 있는 부분을 과감하게 탈피하는 결단이 필요하며 다른 한 편으로는 이제까지 도입되지 않았지만 미술관 운영에서 없어서는 안된다고 판단되는 제도나 운영방법을 과감하게 도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무원들의 선례의존 방식이나 구의회의 감사에 대한 방어를 위한 운영방식 차원으로는 곤란하며, 이제 막 시작한 성북구립미술관이지만 이도 저도 아닌 상태에서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시간이 흘러버리면서 미술관의 정체성은 그야말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남게 될 지도 모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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