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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현

하계훈

『영은아티스트프로젝트 - 아티스트 릴레이展』영은미술관에서는 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 지원프로그램인‘2008-2010 영은 아티스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영은아티스트 릴레이展』은 8명의 입주작가가 1년 동안 매달 릴레이 형식으로 진행되는 장기 프로젝트 전시이다. 두번째 릴레이展을 여는 임지현 작가는 “Tralala”라는 주제로 흑백모노톤 중심의 회화/드로잉 작업들로 구성되어 이미지의 힘 그 자체를 관객들에게 느끼게 하는데에 목적이 있다. 이미지는 작가의 감성적 상상력에서 나오며 관객은 이를 각자 자신의 삶의 경험에 비추어 받아들이게 된다.

임지현은 캔버스나 종이 위에 유화물감과 연필로 반복적인 붓놀림을 가함으로써 세밀하게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작업을 한다. 모노톤의 점과 선으로 화면 전체에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작업은 지극히 노동집약적이고 오랜 시간동안의 인내력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그렇지만 백지상태에서 출발하여 작품 속의 이미지를 형성해가는 과정에서 작가 스스로가 촉발시키는 사고와 상상력이 섬세한 조형으로 시각적 잉태가 이루어지고, 그것이 다시 다음 단계의 작업으로 이어지는 자체 순환의 과정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창작의 프로세스를 형성하는 것은 작품 창작의 바람직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임지현이 화면에 도입할 이미지를 포착하는 방법은 특정화되어 있지 않다. 일상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차창 밖 거리로부터 우연히 발견한 사소한 사물이 작품의 이미지로 태어날 수도 있고, 독서나 사색의 과정에서 우연한 기회에 작가의 상상력을 자극함으로써 창조해낸 어떤 것이 작품의 주요 모티브가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작가가 포착하는 이미지는 처음부터 확정적이지 않다. 그리고 이렇게 포착된 이미지들은 화면에 도입되면서 마치 세포의 자기증식 활동처럼 작가의 작업 진행 과정에 따라 스스로의 모습을 증식시키고 진화시킨다.

작가가 화면에 제시하는 이미지는 관람객이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이미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하게 추상화된 이미지도 아닌, 그 둘 사이의 중간쯤에 위치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임지현의 화면에서는 흰 바탕에 검은 선과 점들이 조밀하게 화면 전체를 채우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이와 정반대로 검은 바탕에 흰색으로 암시되는 선이 넘실대며 모종의 유기체나 불꽃의 피어오르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작품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작가는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 섬세하고 예민한 작가의 감성을 드러내고 그것이 관람객에게 전달되기를 희망한다.

작가가 물감이나 연필을 가지고 모노톤의 작업을 고집하는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우리의 삶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의 예측 불가능한 미래나 모호성이 함축적으로 드러나는 방법을 선택함에 있어서 대상을 좀 더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색을 사용하는 것보다 흑백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것이 어쩌면 역설적이게도 더욱 호소력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가능할 것이다.

임지현은 관람자와의 소통에 있어서도 이미지라는 시각적 언어를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직설적인 소통보다는 이미지로부터 연상되고 암시되는 파토스와 은유적 상징성에 의존하는 형식의 소통을 지향하고 있다. 임지현이 제시하는 이미지는 작가의 주관적인 경험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명상과 감성적 상상력에서 나오는 것인 만큼 관객은 이를 하나의 정형화된 주제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각자 자신의 삶의 경험에 비추어 해석하고 경험하게 될 것이다.

임지현은 작가 노트에서 작품의 제작 과정을 인생을 항로와 비유하여 언급한 적이 있다. 작가가 가지고 있는 작업과 작품에 대한 태도는 우리의 삶처럼 운명적으로 주어진, 그러나 삶의 주체로서의 자아가 예측하거나 계획하는 대로 전개된다고 확신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이다. 따라서 삶의 여정에서 느끼는 막연한 불안이나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수시로 찾아올 수 있는 관심사이며 작가로서의 창작생활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주제의 상황을 대처하는 방법에 있어서 임지현은 우리의 삶을 우연과 선택의 연속이고 앞으로 무엇이 다가올지 또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미지의 상황으로 해석하고 그로부터 촉발되는 심리적 두려움들을 명상과 사색을 촉발시키는 반추상적인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임지현은 작품의 창작과정과 삶의 전개 과정을 동일한 과정으로 바라본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과 우리의 삶을 동일 선상에서 해석한다고 볼 수 있는 단서 가운데 하나는 작품 제작과정에서 작가가 부분적인 수정을 위해 지우개와 같은 재료를 사용하거나 유화의 붓자국을 수정하는 작업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치 인생의 지나간 시간을 되돌이킬 수 없는 것처럼 작가는 이미 실행된 창작의 한 순간의 행위에 대한 결과를 수정 없이 있는 그대로 수용하면서 그 다음 단계의 작업으로 이행해 나아가는 것이다.

2008년에 가진 임지현의 개인전에서 작가는 작업의 과정을 그리스 신화에서 계속해서 실을 짜는 아라크네(Arachne)의 손작업에 비유한 적이 있다. 우리 삶의 모습을 손끝으로 느껴가며 사물의 현상을 작품으로 엮어내는 행위를 통해 작가는 인생의 불투명한 미래와 그로부터 촉발되는 두려움을 진정시키며 그렇게 탄생시킨 이미지를 매개로 동시대의 사람들과 솔직하게 소통하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간의 프랑스 유학생활을 마친 뒤 귀국한 임지현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전개시키는 작가로서의 활동의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는 시점에서 발표되는 이번 전시에서 작가의 사색과 정서가 시각적으로 구현된 작품들을 통해 관람객들과 성공적으로 소통하기를 바라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앞으로 임지현의 창작에 필요한 여러 가지 환경이 순조롭게 조성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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