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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준 / 호랑이 그림을 통한 전통의 현대적 해석과 변용

하계훈

주성준은 호랑이를 그린다. 그런데 그가 그리는 호랑이는 우리가 다큐멘터리 필름에서 보았거나 밀림이나 동물원에서 보았던 호랑이와는 전혀 다르다. 대부분의 경우 주성준의 호랑이는 의인화 되어있고 고양이과(科) 동물의 공통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인 날카로운 발톱이 제거되거나 아주 조금만 암시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화면 속의 호랑이는 야생에서 발톱을 사용할 만한 행동을 별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의인화된 호랑이는 야생동물의 속성이 완전히 제거된 채 동화 삽화나 애니메이션 캐릭터로서도 손색없을 정도로 온순하게 길들여져 있다.

주성준의 그림 속 호랑이는 소파 위에서 토끼를 배 위에 올려놓고 장난을 치거나 책상 앞에 앉아 책을 보기도 하고 심지어 스키를 타기도 한다.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건 간에 커다란 얼굴에 작은 몸집을 가진 호랑이의 모습은 어린 아이의 체형과 흡사하며 그 행동에 있어서는 우리 이웃의 장난스런 아무개 혹은 우리들 자신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실제로 민화가 당대의 민중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상황을 반영한다면 주성준의 현대적 민화작품은 진정한 의미의 오늘날의 민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화를 전공하고 우리 전통 민화의 맥을 짚어온 작가가 먹과 종이를 떠나서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으로 장난기 넘치는 호랑이를 그리는 이유는 의미심장하다. 주성준은 우리 회화의 맥을 반구대 암각화로부터 고구려 벽화,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의 불화와 조선시대의 민화로 연결하며, 자신은 이러한 맥락의 끝부분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민화 작가로서 전통 민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변용하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성준은 대학과 대학원에서의 한국화에 관한 수련과 이론적인 탐구를 통하여 한국화의 정통성과 그 속에 함축된 민족의식을 바로 세우려는 노력을 해왔다. 작가는 아직도 중국, 일본화식 그림을 한국화의 정통으로 생각하고 있는 20세기 한국 미술계의 일부의 의견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시한다. 작가는 민화의 특징을 붓 가는 대로 그리는 창조적 드로잉의 경향으로 파악하고, 문자향(文字香)을 즐기며 화법을 중시하는 문인화적 성향과 대조를 이루는 우리 민화의 자유로움에 매력을 느낀다.

실제로 주성준의 작품에서는 화면의 구도나 사물의 비례, 색채와 원근법적 표현 등이 자유롭고 파격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작가가 진정한 한국 전통회화에는 사물의 원근법적 크기나 시점, 그 시대의 격 등을 무시하는 파격의 자유와 창조적 현대성, 해학이 있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주성준이 우리 회화의 전통을 완전히 백지화하는 것은 아니다. 화면에 등장하는 소나무, 호랑이가 안고 있는 모란 꽃 등은 전통 민화에서의 상징성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작가가 서구적인 재료인 캔버스와 아크릴 물감 등을 사용하는 것도 재료의 확장을 통하여 실질적으로 현대의 생활공간이 서구화됨으로써 그에 걸맞는 표현으로서의 전통회화 개념의 확장을 시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호랑이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잘 알려진 것처럼 2010년은 경인(庚寅)년, 즉 호랑이의 해이며 그 가운데에서도 하얀 호랑이, 백호(白虎)의 해다. 하얀 호랑이는 금(金)을 뜻하고 이는 돈을 상징한다고 한다. 또 꿈에서 하얀 호랑이를 보면 지위와 명예가 높아지거나 영화로움 및 부유함을 경험하게 된다고 꿈풀이를 한다. 하얀 호랑이는 아니더라도 전통적으로 우리의 민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까치호랑이는 기쁜 소식과 좋은 기운을 전한다고 알려져 왔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호랑이 그림은 매년 정초에 민가의 대문이나 방안에 붙여져 기복(祈福)과 벽사(辟邪)의 의미로 이용되어 왔다. 하지만 우리들의 생활이 점차 서구화되면서 서양적 사고방식과 건축, 의생활 등이 도입되어 민화의 고즈넉한 맛이 제대로 표현될 수 있는 공간을 점점 잃어가게 되면서 우리들과 민화와의 사이가 멀어져가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주성준이 그리는 호랑이는 기쁨을 주는 호랑이라는 의미에서 HAPPY HOYA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원래 기쁜 소식을 전하는 까치에 호랑이가 함께 표현되면서 민화에서는 두 동물들이 기쁜 소식을 불러오는 상징으로 표현되어 왔으며 이 경우에는 소나무를 배경에 넣고, 잡귀를 물리치는 벽사의 의미를 전할 때에는 호랑이의 배경에 대나무를 태울 때 터지는 소리에 잡귀가 도망간다고 하여서 대나무를 배경으로 그렸다고 한다. 두 경우 모두 호랑이가 궁극적으로 인간의 행복을 위해 그려지는 것이므로 작가는 자신의 호랑이 이름을 HAPPY HOYA로 이름 붙이고 있는 것이다.

2010년 호랑이의 해를 맞이하여 12번째 개인전을 갖는 주성준이 부와 명예, 행복과 벽사를 상징하는 호랑이를 우리 전통 회화의 의미를 되살리면서 현대적이고 해학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이 이번 전시를 통하여 어떻게 진화하는지 궁금해진다. 특히 백호의 해에 그려지는 흰색 호랑이의 다양한 표정과 행동이 이번 전시를 통해 어떻게 표현되는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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