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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민우 / 중첩된 공간에서의 개체간의 소통을 모색하는 시선

하계훈

회화란 평면위에 선과 색을 사용하여 다양한 표현을 하는 행위나 그 결과물을 지칭한다. 서양미술의 경우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회화의 평면이 동굴 벽이나 성당의 천정, 또는 두꺼운 나무판자 등과 같은 곳이 되기도 하지만 중세 말 이후로 회화의 표현은 주로 캔버스나 종이 등에서 이루어져왔다. 서양에서 널리 사용해 온 유화나 아크릴이 화면 위에 물감층을 쌓아가면서 표현을 완성시키는 것에 비하여 수채화나 동양에서 주로 사용해 온 종이와 먹은 안료가 회화 표면을 투과하거나 화면에 스며들고 번지면서 형성되는 조형미를 표현의 중심에 놓고 발전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한국화를 전공한 현민우는 이렇게 형성되는 화면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공간의 이편과 저편의 상호 교류와 중첩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화면은 불투명하고 구체적인 물질로서의 공간을 차단하는 차단막이 아니라 물감과 붓의 적용에 의해 그 막을 통과하면서 화면 뒤쪽의 공간으로 작가의 관심과 상상력을 확장할 수 있고, 다시 그 공간으로부터 작가가 작업하는 이편의 공간으로 건너오는 시선과 교류할 수 있는 개념적이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복합적인 공간으로 해석된다.

현민우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표현해 온 소재는 인물의 다양한 모습이며 자기 정체성과 실존의 문제, 자아와 타자 사이의 관계와 조화 등 비교적 내면적 사유와 관찰이 필요한 것들이다. 이러한 표현을 위해서 작가는 주변의 사람들과 상황들을 언제나 민감하게 관찰해오고 있다. 주제를 가시화하는 조형 훈련에 있어서도 작가는 중국 유학을 거치면서 재료와 매체의 속성을 깊숙하게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현민우의 초기 작품은 주로 먹을 사용하여 인물을 묘사하는 형식의 작품이었다. 전통적인 재료인 한지가 아니라 초벌 제작된 거친 표면을 가진 벽지 위에 평평한 붓을 이용해 갈필의 느낌이 전해지는 배경에 표현된 인물들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으며 독창적이었다. 특히 피아노 건반처럼 아래위로 길게 펼쳐진 화면 속에 서로 조응하며 교환되는 여러 가지 자세로 표현된 남녀의 모습에서는 작가가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오스트리아 출신의 화가 에곤 쉴레(Egon Schiele)의 인물들을 연상시켜주는 요소도 발견된다.

이번에 출품하는 작품들은 이러한 작업의 연장선에서 작가가 한국화의 표현 기법 가운데 하나인 배채법을 구사하여 화면 뒤에서 색이 스며 올라오는 방법을 이용하여 인물들을 표현하고 그러한 화면에 색채를 가미한 작품들이다.

화면을 지배하는 주요 모티브는 여전히 인물의 표현이지만 이전의 작품과 달리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영화 속의 주인공 배우들이 관람자이자 우리 자신들일 수 있는 평범한 인물들과 중첩되게 화면에 등장하며 인물들은 구체적인 모습으로 표현되기 보다는 실루엣 형태로 제시되는 작품들이 많아졌다. 구체적인 인물의 묘사가 배제된 실루엣 이미지와 유명 배우의 이미지의 중첩은 서로 다른 존재간의 조우와 소통을 암시할 수도 잇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표현된 화면 위에는 다시 화가의 시선이 아닌 화면 반대편의 존재가 가질 수 있는 시선에 의해 포착되는 이미지가 중첩되면서 화면에 깊이감과 입체감을 부여한다. 우리가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감상할 때 우리 눈에 들어오는 이미지를 화면 뒤에서 바라본다면 이미지의 좌우가 뒤바뀌는 전치와 그 이미지 너머로 포착되는 관람자로서의 우리들의 모습이 이미지 너머로 중첩되어 나타날 것이다. 현민우가 구성하는 화면은 바로 이러한 시선의 중첩이 이루어지는 화면인 것이다. 이러한 화면을 통해 작가는 공간의 복합성과 공간 사이의 관계성, 그리고 그 속에서 탐구해갈 수 있는 실존적 자아의 모습이나 자기 정체성을 모색해오고 있다.

따라서 현민우의 작품에서는 개체간의 소통을 지향하는 작품의 주제와 이를 표현하는 기법으로서의 공간의 중첩이 이루어지는 화면, 그리고 이러한 화면을 구성하는 매체의 특징이 혼합되어 독특한 화면을 이룬다. 그리고 이러한 표현의 과정은 결국 작가가 작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다시 그 작품을 통해서 작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타자를 재차 관찰하여 화면에 도입하는 복합적인 시선과 사고가 작용하는 장을 이루게 된다.

이러한 작품의 주제나 공간의 해석을 넘어 우리가 현민우의 작품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몇 해 전부터 미술시장의 반응을 중심으로 작품이 발표되는 우리 미술계의 현상 속에서 한국적인 표현 매체를 이용하여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사유와 조형 실험을 하고 있는 작가의 노력이 읽히기 때문이다. 경기도 안성의 작업장에서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현민우와의 대화에서 작가의 진지한 태도를 읽을 수 있었던 필자는 계속 현민우의 작업 행로를 관심 깊게 주시해보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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