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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호 / 사실적 재현을 넘어서는 시선의 감촉

하계훈

미술의 역사를 살펴보면 평평한 화면 위에 다양한 안료로 실물처럼 입체감 있게 대상을 표현하려는 노력이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왔음을 알 수 있다. 고대 그리스 화가 제욱시스의 포도와 폼페이 유적지의 주택 벽면에서 발견된 그림 속의 유리잔, 르네상스 시대의 작가들이 도입한 원근법, 그리고 17세기 궁전과 성당의 천정화 등은 모두가 평평한 화면 위에다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들을 실물처럼 보이도록 그리려는 눈속임의 의도를 드러낸다.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화가들은 실물과 똑같은 세밀한 묘사를 위하여 캔버스 표면에 천의 올이 드러나지 않게 흰색 물감을 칠하고 다시 그 표면을 연마한 뒤 물감을 바르는 과정을 힘들게 반복하여 세밀한 붓 터치 하나하나가 매끄러운 그림 표면에 정확하게 드러나도록 노력하였다. 우리는 이렇게 실물처럼 보이도록 대상을 표현하는 태도를 리얼리즘, 하이퍼 리얼리즘, 극사실주의 등으로 명명한다.

이광호는 이러한 리얼리즘 기법으로 작품을 제작한다. 몇 해 전에 ‘inter-view’ 시리즈를 통해 극사실적인 인물화를 보여주었던 작가가 이번에는 거대하게 확대된 선인장 그림과 풍경화를 선보였다. 몇 해 사이에 일어난 이러한 소재의 전환은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급격한 변화로 보일지 모르지만 작가는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대상이 인물이건, 정물이나 풍경이건 관계없이 대상만 바뀌었을 뿐 자신에게 있어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대상에 대한 시각적 ‘애무의 흔적’인 이상 근본적으로 변한 게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번 전시의 주제도 다. 작가는 이제 무엇을 그리느냐와 관계없이 소재가 한정하는 대상성을 넘어서고 싶다고 한다.

이광호는 붓과 나이프를 가지고 모든 회화의 기법을 이용해서 대상의 전반적인 사실적 모습과 그 세부를 화면에 담아내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마치 접사 촬영된 사진처럼 실물 크기 이상으로 대상의 모습이 확대됨으로써 극히 사실적인 묘사이면서도 동시에 관람자의 평범한 시선이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포착함으로써 추상성을 함께 드러내기도 한다.

작가는 인물 시리즈를 제작하던 시기에 묘사 대상을 응시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바라보는 타자의 시선을 함께 의식하고 그로부터 자신 내부의 욕망을 직시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감정을 언어적으로 전달할 수 없는 콤플렉스에 대한 방어로서 세부묘사에 더욱 집중하였다고 한다. 모델의 내부의 감정의 변화 등을 기록해나가는 동안 작품이 변해갔던 인물화 시리즈와는 달리 선인장 시리즈에서는 작가가 고정된 대상을 바라보며 자신의 내면에 잠재한 감성과 욕망을 그 대상에 투영하는 형식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하고 많은 대상 가운데 왜 선인장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작가는 몇 해 전에 우연히 발견한 선인장에서 강한 생명력과 함께 기술적인 도전의식 같은 것을 느낀 듯하다. 붓질과 색의 배합에 따라 화면의 질감이 미묘하게 변하고 가볍고 얇은 터치로 그려진 선인장의 세부 모습에서 드러나는 역동성과 실제같이 느껴지는 촉감을 통해 이광호의 작품에서는 관람자들이 보통의 극사실회화가 보여준 재현과는 다른 감각의 영역을 경험하게 된다.

갤러리 2층에 전시된 풍경화는 선인장 연작 이후에 제작한 것이다. 선인장 연작과는 달리 수풀과 그 사이로 보이는 하늘과 바람의 움직임 등을 흐릿하게 표현한 풍경화 연작은 특정한 의미를 담고 있는 장소를 그린 재현적 풍경이기보다는 추상적으로 서술된 풍경으로서 부분적으로 선인장 그림과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인물화 연작으로부터 시작하여 기법상의 완성을 넘어 평범한 일상의 사물에서 그리기의 의미를 천착하는 작가 이광호의 붓 터치를 앞으로 주목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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