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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박물관(British Museum) 학예전문인력의 고용 상태 및 전문성 보장

하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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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박물관이 탄생한 지도 벌써 100년이 넘어섰다. 박물관은 서양에서 먼저 본격적으로 그 꽃을 피운 사회적 기관 가운데 하나이며 점차 유럽과 미국 이외의 지역으로 그 영향력이 파급되어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의 지역에서 시차를 두고 박물관 문화가 피어나고 있다. 그러나 외부로부터 이식된 기관이 착근하는 과정에서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전통과 관습, 정치와 경제의 상황 등에 의해 박물관의 문화는 지역적 특성을 띄면서 원본과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식민통치를 받는 특수한 상황에서 박물관이 개관하여 그로부터 오늘날의 운영방식으로 되어 오는 과정에서 박물관의 의미와 정체성에 대한 깊은 고찰이 미흡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러한 근본적인 성찰에 대한 미흡함의 경과로 오늘날의 박물관 운영이 지나치게 관료화되고 행정효율을 중심으로 박물관의 운영을 평가하려는 시각이 지배적으로 드러나는 등의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유럽에서 박물관 문화가 꽃피던 19세기와 오늘날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상황이나 사회의 동작원리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오늘날의 박물관 운영은 그 방법이 서양의 19세기나 20세기의 그것과 달라야 할 지 모르지만 박물관이라는 기관의 정체성과 주요 기능 가운데에는 시대를 초월하여 변하지 않는 중요한 핵심 기능과 정체성이 있다. 그 가운데 박물관을 운영하는 중요한 인력으로서 큐레이터의 역할은 시대가 변하여도 그 기본적인 역할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큐레이터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연구로서, 세계적으로 가장 먼저 박물관을 개관하여 운영해 본 영국의 경우, 특히 영국의 박물관을 대표하는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의 경우를 살펴보고 그로부터 우리 박물관 운영에 참고가 될 만한 아이디어를 몇 가지 도출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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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성공적으로 물리치고 나서 17세기부터 대서양을 비롯한 주요 바닷길의 해상권을 장악함으로써 세계 각처에 성공적으로 식민지를 개척할 수 있었다. 이러한 식민지의 개척은 영국 사회의 상류층에게 사업상으로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식민지 사회나 그곳으로 가는 여정에 있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그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여 신기하고 귀중한 물건들을 수집하고 그것들을 연구하는 다양한 협회(society)를 구성함으로써 다양한 분야에서의 학문적 발전을 자극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이렇게 수집된 소장품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소장자의 사망 시점을 전후로 하나둘씩 사회로 환원되어 박물관을 탄생시키게 된다. 이렇게 박물관이 탄생되면서 그 안에서 소장품을 연구하고 더 많은 소장품을 발굴하며 전시를 통해 관람객에게 봉사해야 하는 임무를 맡은 큐레이터의 역할이 일찍부터 중요시되어 왔다.

영국에는 현재 약 1800개의 크고 작은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어 있으며 이 가운데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이나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빅토리아 앤 앨버트 미술관(Victoria & Albert Museum) 등과 같은 국제적 규모의 박물관에서부터 성인이 양팔을 벌리면 박물관의 면적을 거의 다 차지할 수 있을 만큼 작은 웨일즈의 콘위(Conwy)에 있는 초미니 박물관까지 그 크기와 성격도 다양하고 설립의 역사도 많은 이야기 거리를 담고 있다.

영국에서 처음으로 개관된 근대적인 박물관은 1683년 옥스퍼드에서 문을 애쉬몰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수집가 엘리어스 애쉬몰의 소장품이 옥스퍼드 대학 본부에 기증됨으로써 설립 논의가 시작되어 개관하게 되었는데 1973년부터 관장체제로 운영되기까지는 큐레이터(영국에서는 Keeper) 중심으로 기관이 운영되었다. 영국은 이웃나라 프랑스와 달리 왕실이나 귀족들의 수집품이 전쟁이나 폭동 등의 사회적 혼돈을 겪은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소장품의 망실이 상대적으로 적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소장품의 수복을 위해 초창기에 화가들이 미술관의 큐레이터 역할을 맡았던 이웃 나라들과는 다르게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초창기부터 학문적 연구 성과가 뛰어난 학자 타입의 인물이 박물관 큐레이터 직을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683년 애쉬몰 박물관이 옥스퍼드의 브로드가(Broad Street)에 개관했을 때 첫 큐레이터로 로버트 플롯(Robert Plot, 1640-1696)이 임명되었는데 플롯은 박물관 지하에 설치되었던 화학 실험실의 교수직도 겸직하였다. 플롯이 애쉬몰 박물관의 큐레이터로 임명된 사실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은 그가 교수직을 겸직하였다는 것이며 향후 그의 활동이 전시장을 유지 관리하는 것과 함께 자료 발굴과 저술 등에 집중되었다는 사실이다. 플롯은 큐레이터로 임명된 이후에 소장품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를 수행하였으며 1686년에는 The Natural History of Staffordshire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연구 결과를 출간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영국에서 큐레이터라는 직업은 학문연구와 전시장 현장 관리라는 두 가지 임무를 동시에 수행하면서 플롯의 경우처럼 대학에서 강의도 할 수 있는 정도의 전문성을 갖추어야 하는 직업이었다.

1691년 플롯이 애쉬몰 박물관의 큐레이터 자리를 떠나자 그 자리는 플롯의 보조 큐레이터(assistant curator) 역할을 해왔던 에드워드 뤼드(Edward Lhuyd 1660-1709)가 물려받았다. 뤼드는 큐레이터로 임명된 이후에도 자신의 전공분야를 심화시켜 웨일즈와 스코틀랜드 등의 지역을 여행하면서 그 지역의 식물 생태와 화석 등에 대하여 연구할 수 있었으며 그러한 자신의 연구 결과를 가지고 Lithophylacii Britannici Ichnographia라는 연구업적을 출간하기도 했는데 이 때 그의 친구인 아이작 뉴튼(Isaac Newton 1642-1727)이 재정적인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뤼드는 큐레이터로 재직하면서 여러 가지 연구 업적을 책으로 펴냈는데 그 가운데 웨일즈의 콘월지방의 언어에 대한 연구는 이 분야에서 아주 중요한 자료로서 꾸준히 인용되고 있으며 지금도 그의 출판물 원본이 애쉬몰 박물관에 보관되어있다.

뤼드는 1709년 늑막염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20년 가까이 애쉬몰 박물관의 큐레이터 직을 유지하면서 이러한 연구 업적을 남길 수 있었는데 이처럼 박물관의 연구직으로서의 큐레이터가 한 분야에서 장기적으로 근무하면서 전공분야에서 연구를 심화하고 궁극적으로 그 분야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기게 되는 좋은 사례를 뤼드의 경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개관 이후 1973년까지 애쉬몰 박물관에서는 14명의 큐레이터가 근무하였는데 이들의 재직기간을 평균 수치로 계산해보면 1인당 21년 가까이 근무한 셈이 된다. 또 큐레이터에서 관장직으로 운영방식이 변경된 후에도 1998년부터 12년 동안 관장직을 맡고 있는 브라운 박사(Dr Christopher Brown)까지 4명의 관장이 교체되어 그들의 평균 재임기간도 12년 가까이 된다. 이렇게 짧게는 10여 년에서 길게는 본인의 사망시까지 무제한으로 근무기간을 보장함으로써 당사자가 안정적으로 연구와 전시, 저술과 교육 등에 몰두할 수 있게 운영되어 온 애쉬몰 박물관의 경우는 우리 박물관들이 유의미하게 참고해야 할 사례라고 볼 수 있응 것이다.

1759년에 개관한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의 경우에도 애쉬몰 박물관과 비슷한 개관 과정을 거친다. 다만 이 경우에는 그 규모에 있어서 애쉬몰 박물관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며 주요 기증자인 한스 슬론 경(Sir Hans Sloane) 이외에도 의회와 국왕이 개입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초창기의 영국박물관은 슬론 경의 기증품과 함께 왕실의 도서관을 포함한 중요 도서컬렉션 2개가 합류하였는데 그 때문인지 기관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오늘날의 관장에 해당하는 직함이 총사서(Principal Librarian)였다. 이후 기증과 구입, 발굴 등에 의해 박물관의 소장품이 증가하면서 총사서는 1989년 관장 겸 총사서(Director and Principal Librarian)로 변경되고 1973년 박물관과 도서관이 분리되면서 오늘날과 같은 관장(Director)이라는 직함이 생겼다.

영국에서 박물관과 관련된 정부부서는 문화, 미디어 체육부(DCMS, Department of Culture, Media, and Sports)와 그 산하의 비영리법인인 박물관, 도서관, 아카이브 협의회(MLA, Museums, Libraries and Archives Council)인데 그 가운데 박물관 관련 MLA의 전신은 1929년에 보고된 최종보고서(Final Report of the Royal Commission on National Museums and Galleries)의 권고에 따라 1931년에 설립된 상설기구인 박물관/미술관에 관한 상임위원회(Standing Commission on Museums and Galleries)다. 이 기구는 1981년 박물관/미술관위원회(Museums and Galleries Commission(MGC))로 명칭을 변경하고 1987년에는 왕의 칙허에 의해 법인 조직의 성격을 갖게 된다. 그리고 다시 2000년에는 MGC가 도서관 및 아카이브 조직등과 그 기능을 합병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MLA가 탄생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박물관협회와 유사한 영국의 조직으로는 일찍이 1889년에 조직된 Museums Association(MA)을 들 수 있다. 이 협회에서는 매년 영국의 박물관에 관한 연보(Museums and Galleries Yearbook)와 월간 잡지 Museums Journal을 펴내고 있으며 영국의 박물관 운영에 중요한 사항에 대하여 심포지엄을 연다거나 조사 보고서를 발간하는 형식으로 영국 박물관 정책의 오피니언 리더로서의 역할을 해나가고 있다. 1986년 MGC에서는 스코틀란드 지역의 박물관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이 보고서에서 MGC는 영국의 국립박물관에서의 지적인 활동이 다른 목표에 비추어서 중심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that the intellectual activities of national museums are central to their other purposes) 결론을 내려 박물관에서의 학예연구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한 바가 있다.

영국에서의 큐레이터쉽은 지난 200년 넘게 이처럼 학문연구와 교육을 통해 사회일반과 학자들의 연구에 기여하는 것을 중요한 목적으로 설정하여 왔으며 이러한 목표에 입각하여 국립 박물관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자세가 가다듬어져 왔다. 1988년 MGC에서 발행한 또 다른 보고서인 The National Museums and Galleries of the United Kingdom에서는 국립박물관의 큐레이터를 소장품과 관련된 분야의 역사학자(historian)로 규정하고 있으며 그들의 연구가 해당 분야의 대학이나 이와 유사한 곳에서도 존경받을 만한 결과를 도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988년 MGC 보고서에서는 큐레이터가 해당분야의 학문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연구의 시간이 필요하며 다른 기관의 소장품을 둘러볼 기회를 가져야 하고 관련 학술행사에도 참여하여야 함을 명시하고 있으며, 그러한 일들이 훌륭한 박물관의 역할과 목적을 수행할 수 있는 기본적인(fundamental) 사항임을 명시하고 있다.

실제로 영국의 중요 박물관 큐레이터들은 관련 전공분야의 유력한 학술지에 상당한 분량의 연구논문을 투고하고 있는데, 한 예로 영국박물관에 근무하는 큐레이터들이 단행본을 제외하고 한 해에 출간하는 전문 분야의 저널에 수록하는 논문은 400편이 넘는다. 이렇게 영국의 박물관 큐레이터를 대학에서의 연구자와 동등하게 바라보는 시선은 영국의 대표적인 박물관 가운데 일부에서 큐레이터들에게 대학교수와 마찬가지로 안식년과 같은 연구를 위한 재충전의 시간을 부여하는 것으로도 잘 알 수 있다.

영국에서 박물관/미술관의 큐레이터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해당기관의 소장품과 관련된 분야에서의 전문적인 학문연구 성과와 경험이 요구된다. 영국의 주요 국립박물관에서 큐레이터로서 실무를 시작하려면 대부분의 경우 관련분야의 학문연구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정도의 수련기간을 거쳐야 한다. 물론 이 기간 동안 관련 박물관에서의 현장경험과 유물 연구가 제도적으로 의무화되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영국박물관에서의 큐레이터 채용은 우리나라와 달리 해당 직책이 공석일 때 개별적인 모집 공고와 면접을 통해 이루어진다. 규모가 큰 박물관의 경우에는 전문 영역이 세분화되어 있어서 보다 구체적으로 경력사항을 요구하며, 해당 소장품의 중요도나 업무량의 비중에 따라 파트타임으로 큐레이터를 선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에도 우리나라처럼 고용이 불안한 상태는 아니다.

기본적으로 큐레이터의 임용은 직급이 아니라 전공 분야에 대한 선발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한 번 임명된 큐레이터는 부서를 변경하는 일이 별로 없으며 자신의 전공과 관련된 부서에서 오래 동안 연구와 교육, 전시 등에 몰두하면서 자신의 전공 분야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심화시켜 나아가게 된다. 영국박물관과 같은 국립박물관에서 큐레이터가 이직하는 경우는 대부분의 경우 다른 박물관의 관장으로 옮겨 가거나 대학의 교수직을 맡는 경우에 국한된다고 볼 수 있다. 영국박물관의 관장을 역임한 데이빗 월슨(David M Wilson)에 의하면 영국박물관의 경험이 많은 큐레이터(Keeper)는 급여 면에서나 학문적 성취도 면에서나 대학의 해당 분야 학과장과 동등한 정도의 대우를 받으며 부큐레이터(Deputy Keeper)는 대학의 전임강사 정도의 대우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윌슨에 의하면 영국의 국립박물관 가운데 하나인 영국박물관의 큐레이터들은 1963년 박물관 노동조합과 재무성 사이에 협정(Couzens-Hatward agreement)을 맺음으로써 큐레이터를 포함한 박물관의 직원들이 공무원 신분은 아니지만 급여나 복지 등의 혜택에 있어서 공무원에 준하는 혜택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되어있는데, 이에 앞서 이미 19세기 중반부터 한때는 그들도 공무원의 신분을 획득한 바가 있다. 1963년의 협정으로 영국박물관의 큐레이터를 포함한 직원들은 신분상의 안정을 확보할 수 있었으며 1980년대에 들어서는 공무원들과 같은 직급체계도 갖게 되었다.

영국박물관에는 10개의 연구부서가 있는데 학문적 연구를 기본으로 하는 선임 큐레이터와 그 밑의 큐레이터들은 보조인력(Museum Assistant)과 행정직원(Administration Staff)의 보조를 받는 형식으로 부서가 운영된다. 보조 인력은 본인 역시 경험이 짧은 큐레이터의 신분을 갖으며 전시에 주로 투입되기도 하고, 실습 학생들을 관리하기도 하여 큐레이터가 본연의 연구 이외의 일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도록 도와준다. 영국박물관의 경우 부서에 따라서는 50명이 넘는 큐레이터가 근무하는 곳이 있을 정도로 전문 인력의 풀이 크게 확보되어 있어서 그로부터 국제적인 명성을 얻을 수 있는 훌륭한 전시와 연구 업적이 도출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각 부서의 운영은 이처럼 연구 인력을 중심으로 가동되며 전체 조직 내에서 부서별로 반(半)자율적(Semi-autonomous)으로 운영된다. 즉 대부분의 업무는 관장으로부터 부서를 대표하는 선임 큐레이터에게 위임되며 예산에 대한 권한도 직원의 급여와 건물 유지관리비, 그리고 중요한 소장품 구입에 관한 예산 이외에는 모두 각 부서의 대표자가 결정권을 가지고 운영하는데 중요 소장품 구입에 관한 예산도 점차 각 부서의 전문가들에게 위임하는 추세를 보인다.

영국박물관에서 큐레이터를 중심으로 하는 연구 인력이 좋은 환경에서 연구에 몰두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반면에는 그들이 자기 분야에서의 노력을 게을리 하지 못하게 하는 장치도 병행하여 실시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큐레이터들의 노력을 평가하는 기준은 그들이 얼마나 전분 분야의 수준 높은 논문과 서적을 출판해내는가인데, 이를 위해서 박물관 측에서는 각 큐레이터마다의 출판 실적을 질과 양 두 측면에서 정밀하게 모니터하는 위원회(Scholarship Committee)를 두고 있다.

영국의 박물관 인력 구성을 살펴보면 큐레이터에 대한 박물관의 시각을 잘 알 수 있다. 1988년 MGC에서 발행한 보고서에는 19개의 국립박물관/미술관의 인력에 대한 현황이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그들이 박물관 인력을 구분하는 기준을 보면 큐레이터(Curatorial), 전시장 안전요원(Warders), 그리고 기타인력(Others) 이렇게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는데 행정 직원은 세 번째 기타인력에 해당된다. 안전요원을 제외한 인력 구성에서 상당수의 박물관/미술관등이 큐레이터 대비 기타 인력의 비율이 거의 반반 가까이 되게 구성되어 있으며 National Museum of Scotland(113:55)나 Wallace Collection(13:7)의 경우에는 행정인력보다 학예연구 인력이 더 많은 인력구성을 보이기도 한다.

이것은 우리나라처럼 중요한 직책을 짧은 기간 동안 순환 보직으로 교체되는 행정 공무원들이 차지하는 비효율적이고 비정상적인 조직 구조와는 다르며 비록 하부 인력의 변동은 빈번할지 모르지만 큐레이터를 중심으로 하는 중요 인력들의 변동이 거의 없이 장기적으로 연구에 종사할 수 있고 중요한 결정을 상당부분 위임받아 업무처리상 불필요한 행정적인 간섭으로 인한 지연이 일어나지 않으므로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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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서 간단하게 살펴본 것처럼 영국의 박물관의 경우에는 긴 역사를 통해 시행착오를 겪고 그것을 수정하는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시스템을 구축하였을 것으로 짐작하는데, 그들의 박물관 운영에서 눈에 띄는 것은 무엇보다도 박물관의 운영이 학예연구 인력을 중심으로 돌아가도록 처음부터 제도를 정착시켜 놓았으며 큐레이터쉽을 존중하는 이러한 운영에 대한 사회적인 공감대가 널리 퍼져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박물관의 전문성이 국내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인정을 받게 되며 이러한 결과는 다시 박물관과 그 안에서 근무하는 큐레이터들에 대한 높은 신뢰로 환류되어 보다 훌륭한 연구와 전시, 교육 등으로 재순환 되는 체계를 갖추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상대적으로 박물관에 대한 운영의 역사와 경험이 짧기 때문에 몇몇 문제점이 드러나고, 그 가운데 어떤 것은 반복적으로 개선이 요구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도 영국을 비롯한 박물관 운영의 선진국의 사례를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여 보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박물관의 운영 방향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공감하여야 하는 것은 박물관의 운영 주체가 행정직 공무원이나 그 밖의 누구도 아닌 큐레이터들이라는 것이며 그들에 대한 존중과 격려, 그리고 다른 한 편에서는 그들의 전문성이 지속적으로 함양될 수 있도록 긴장감을 놓지 않는 모니터링 제도 등이 잘 마련되고 큐레이터들의 활동에 대한 애정어린 관심이 주어질 때 우리나라의 박물관도 국내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자랑할 만한 업적을 이룩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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