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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가림 / 균형추의 역할로서 입체작업

하계훈

전통적 장르 구분법을 적용하면 윤가림의 작품은 조각에 해당된다. 재료를 깎고 접합하고 채색하기도 하는 방식으로 오브제를 탄생시키는 조각은 건축적 맥락으로부터 벗어나 그 자체로서의 미학적 가치를 평가받기 시작하면서 작품이 위치하게 되는 공간과의 관계가 점차 멀어지고 결국은 중성적인 공간에서 그 가치와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윤가림은 이러한 전통적인 방식의 조각과는 일정한 거리를 둔 작품을 제작해오고 있다. 그녀의 작품에 대한 영감은 대부분의 경우 일상의 공간을 바라보는 작가의 신선한 시각이나 낯선 곳을 돌아다니던 자신의 개인적이고 직접적인 경험으로부터 떠오른다. 그리고 어디엔가 처음 도착하여 느끼는 그 장소와 그곳의 사람들에 대한 낯설음을 관찰하면서 작가는 공간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리며 작품을 구상한다. 작가의 작품은 이러한 새로운 공간에 대한 해석으로서 자신이 느끼는 낯설음을 해소해 줄 수 있는 도구와 장치로서 기존의 물체들을 교묘하게 변형시키는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과 같은 작품의 경우에는 카페나 레스토랑과 같은 공공 공간에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낯선 사람과 합석하게 되는 상황에서 타인과의 어색한 조우를 피하기 위한 격리의 공간을 연출할 목적으로 고안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강요된 친밀감을 연출하기 위한 작품도 있다. 라는 작품의 경우에는 작가가 유학중에 발견한 빅토리아 시대의 연인들의 의자에서 영감을 얻은 것인데 S자 모양의 의자 양편에 앉은 인물들은 각자가 차지한 반원형의 공간 안에서 공간적으로 격리되면서도 상반신을 조금만 움직이면 옆사람과 입맞춤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있는 흥미로운 구조 속에 놓이게 되는데 작가는 이러한 빅토리아식 의자에서 서로 반대편을 바라보고 앉도록 고안된 그네의 앉음판을 만들어냈다.

이처럼 윤가림의 작품에서는 작가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이 창작의 바탕이 되고 있으며 그녀의 작품이란 곧 작가의 생각과 느낌, 다양한 장소에서의 인상적인 경험 속에 발견되는 서로 상이한 사람들과 사건들에 대한 기록을 입체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윤가림의 경우 이러한 작품에 약간의 변형을 가미함으로써 관람객으로 하여금 주어진 공간에서의 일상적인 경험과 인식을 벗어난 신선한 감동을 느끼게 해주는 위트와 묘한 매력이 담겨 있는 것이 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작가들에게 있어서 드러나는 노마드(nomad)적인 행동양식과 그로부터 얻어지는 창작의 아이디어를 통해 그들의 작품이 시작된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윤가림의 작품들도 특별한 주목을 받을 만한 것이 있다고 말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작가가 아니더라도 낮선 곳에서의 불안과 어색함이나 이질감, 약간의 일탈에 대한 충동 등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인간의 기본적인 속성이라고 볼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감정을 작품으로 표현하면서 윤가림이 주제를 반영하기 위한 작품의 재료를 다루는 태도에서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집중과 몰입, 그리고 물성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수반된다는 점이다.

이처럼 윤가림의 작품의 특징은 우리들 경험의 보편적인 정서를 공유하면서도 의도적으로 약간의 변주를 가하는 작가의 트릭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미묘한 공간의 모호성을 연출하는 능력, 그리고 이러한 상황 전체를 이끌어내는 동력으로서 작가가 진지하게 탐닉하고 있는 물성에 대한 촉각적 몰입상태에서의 완성도 높은 작품제작 방식에서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윤가림의 작품을 대하면서 그 형식과 주제에 대한 논의를 떠나서, 최근 우리미술계에서 회화 위주의 작품활동으로 편중되는 경향에 대한 균형추의 역할로서 진지하고 공들이면서 입체작업을 해오고 있다는 점에서도 작가의 작품에 대한 기대를 지속적으로 가져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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