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주태석 / 사물의 본질을 추구하는 극사실적 표현의 정신성

하계훈

사물의 본질을 추구하는 극사실적 표현의 정신성


주태석의 ‘자연-이미지(Nature-Image)’ 연작은 많은 평자들에 의해 극사실적 회화로 분류되어 왔다. 이 분류는 옳기도 하고 약간의 보충적 논의가 필요하기도 하다. 주태석은 작업노트에서 '회화는 평범한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포착하여 우리의 눈을 뜨게 해 주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작가는 이 말이 잘 어울리게 오래 전부터 자신의 주변에서 발견하는 평범한 대상과 자연으로부터 작품의 모티브를 선택하여 극사실적 표현을 바탕으로 화폭에 그 이미지들을 담아왔다.

미술사적으로 볼 때 현대미술에서 작가들에게 새로운 시각의 선택을 부추긴 중요한 동인 가운데 하나는 사진의 발명이었다고 말 할 수 있다. 극사실주의(Hyperrealism)는 보다 더 정밀성을 지향하는 사진사실주의(Photorealism)로부터 발전적으로 전개된 새로운 경향이다. 실제로 극사실주의는 사진사실주의로부터 발전된 표현형식으로서 사진사실주의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루이스 마이젤(Louis K. Meisel)의 주장에 따르면 사진사실주의로 불리기 위해서는 사진을 주로 사용하여 작업하고 그 결과가 사진처럼 보여야 하며 적어도 5년 이상 그러한 작업에 종사하여야 한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5년이라는 기간을 규정하고 있지만 이것은 곧 상당기간 동안 이러한 양식의 작업에 종사한 경력이 있어야 사진사실주의의 정수를 파악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970년대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양미술에서 꾸준히 표현 방식의 한 흐름을 차지하면서 그 형식을 지속시켜 왔던 극사실주의는 경험주의에 입각한 리얼리즘 회화의 기계적 재현이라는 중성적이고 건조한 표현성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카메라와 사진이라는 발명품의 도움을 얻어서 보다 정확한 시각적 정보를 화면에 담고 있으며 추상표현주의나 미니멀리즘의 미술에서 도외시되었던 형상성과 현대적 감각의 재현적 회화를 회복시킴으로써 대중적으로 보다 친근하게 다가가는데 어느 정도 성공하였다고 볼 수 있다.

사진(寫眞)이라는 이름에는 동양의 전통회화가 지향하는 관념적, 사의적(寫意的) 표현과 대비되는 듯한 형식적 특징이 담겨있다. 그러나 사진사실주의가 사실주의의 객관적인 사실의 재현을 넘어서는 극사실주의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사실적 표현에는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여 탄력적으로 적용되는 시각이 작가에게 필요한 것도 있었을 듯하다. 주태석이 자연에 눈을 돌린 시점은 세계적으로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모더니즘 미술과 민중미술 사이의 대립적 긴장이 완화되는 시기로서 새로운 창작의 모티브에 대한 탐구가 자연스럽게 요구되는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주태석의 ‘자연-이미지’ 연작의 특징은 극사실주의적인 표현을 위주로 하면서도 좀 더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극사실주의의 일반적 표현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연-이미지’ 연작의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숲속의 나무와 그 주변의 생태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나무의 부분들과 나뭇잎, 풀,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그림자 등이 매우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작가는 이러한 묘사를 위하여 붓과 에어브러쉬를 이용하며 자연대상을 철저하게 관찰하고 정확하게 묘사하여 이를 재현한다. 주태석의 작품 대부분은 나무와 숲을 배경으로 전면에 한 두 그루의 나무가 사진처럼 뚜렷하게 햇빛을 받으며 서있는 작품들이 대부분인데 앞의 나무와 배경의 숲의 공간은 마치 초점심도를 최소로 낮춘 사진 작품처럼 선명성이 크게 대비된다. 이러한 표현으로 인해 주태석의 작품은 부분적으로 사진보다 더 사실적인 것처럼 보이게 되며 그 때문에 극사실주의라는 명칭을 부여받는다.
하지만 주태석의 작품이 사실성을 배반하는 요소들도 화면 속에 동시에 담기게 되는데 무엇보다도 배경과 전면의 이중적 표현, 그리고 한 작품 안에서 여러 개로 분할된 화면을 들 수 있다. 작가는 화면전체를 거의 평면적인 모노크롬으로 처리하고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숲속의 그림자 형식으로 표현한 다음 이를 배경삼아 전면에 배경의 나무들보다 크고 선명하며 표면의 질감까지 사실적으로 드러낸 나무의 몸통부분과 나뭇잎을 표현한다. 이러한 표현은 모더니즘 회화의 평면성과 사실주의적 재현에서의 일루전이 한 화면에 공존하는 셈이다. 배경의 나무들이 이른 아침의 안개 속에 자신들의 실루엣을 드러내는 듯한 모습인데 비하여 전면의 나무는 한낮의 햇빛을 받으며 스스로의 모습을 분명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는 이러한 표현은 사실적 느낌을 넘어서서 서정적 느낌을 주게 되며 현실을 초월한 이상화된 상상속의 세계를 경험하게 해준다.

주태석의 작품이 극사실주의로부터 이탈하고 있다는 주장은 작품 속에 나타나는 화면의 배경과 전면 사이에서 볼 수 있는 표현의 이중성과 서로 다른 시점과 시간성이 공존하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양면성을 평론가 이재언은 ‘일루전과 평면성이라는 이원적 요소’로 보았으며 김원방은 ‘분열된 재현’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하였다. 주태석의 초기작 <기차길>에서 보여준 극사실적 표현이 나무의 이미지에서 이처럼 사실성을 넘어서는 새로운 형식으로 변화한 것에 대해서는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내면적 정서의 변화,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 시대의 풍경을 향한 문명 비판적인 모티브라는 설명이 따르기도 한다.

주태석은 작가노트에서 자연의 모습을 포착해서 화면으로 옮기는 과정을 반복할수록 자연은 더 멀어지고,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아득해진다고 했다. 작가가 “자연의 한 단면의 묘사가 아닌 자연의 느낌을 포괄적인 이미지로 형상화시키려는 내 노력은 결국 아주 부자연스러운 요식행위”라고 말한 것처럼 주태석의 작품은 극사실적 재현으로부터 먼 길을 거쳐오면서 작가 내부에서 깨닫게 되는 회화의 진리와 자연의 본질을 보다 심층적으로 파고들어 마침내 자연주의적 사실 표현에서 정신성과 사물의 본질을 추구하는 이데아를 향한 작가의 내면 탐구로 선회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