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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삼남 / 일상을 바라보는 소박하지만 예민한 촉수

하계훈

일상을 바라보는 소박하지만 예민한 촉수



르네상스 시대 이후로 화가의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는 대상을 실물처럼 재현해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서 원근법이 사용되었다. 원근법은 2차원적 회화의 공간에서 3차원적 착시현상을 구현할 수 있게 해주었으며 작가들은 이렇게 함으로써 보다 현실에 가까운 묘사가 가능하게 되었다고 믿어왔다. 원근법적 방법은 특히 역사화나 신화화의 표현에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었으며 주제를 더욱 감동적으로 부각시키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근대사회에 들어서면서 사진 기술의 발명과 사회 변화에 따른 회화 주제의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추상 회화가 등장하고 구상의 경우에도 적지 않게 화면 안에서 원근법의 역할은 점점 줄어들게 되었으며 작가들도 이전의 웅장한 주제들을 버리고 점차 자신의 주변 이야기를 중심으로 화면을 구성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제는 더 이상 회화 표현 형식에 일관된 기준을 적용하기 어렵게 되었으며 작가들의 화면은 더욱 다양해지고 그 속에서 점차 개인적 감상과 경험을 반영하는 조형적 상징화의 과정을 거쳐 가게 되었다. 추상이나 반추상 그리고 과학적 원근법에 맞지 않는 이미지의 표현 등은 이러한 미술사의 전개 과정에서 등장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조삼남의 그림들은 이러한 맥락에서 바라보면 근대 이후의 사실주의적 재현성을 탈피한 자유로운 표현을 지향하는 작품의 부류에 속한다. 조삼남의 작품들은 역사적 맥락이나 사회적 문제의식을 부각시키기 보다는 작가 개인의 소박한 일상을 색채와 형태 등의 기본적 회화적 요소로 담아내는 앙티미스트적인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작품을 제작함에 있어서 조삼남은 개인적으로 다년간의 기초 조형훈련을 거쳤으며 미술대학에서 수련하지 않았던 작가이면서도 화면에 대한 구성과 색채 감각 등은 다른 작가들과 비교해도 그리 차이를 보이지 않는데, 이것은 어쩌면 작가 자신의 내면에 잠재한 조형적 본능이 뒤늦게, 그러나 좀 더 강렬하게 분출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요즈음 조삼남의 작품은 미술사에서 등장하는 국내외의 여러 작가들을 떠올리게 해준다. 듣기에 따라서 이 말은 그리 좋게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조삼남의 작품들이 굳이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결과적으로 미술사 속의 주요 작품들과 적어도 형식면에 있어서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접점을 확보하였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도 있다. 조삼남의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면 작가는 유화와 아크릴을 위주로 구상과 추상의 중간 지점에서 단순한 형태와 색채의 조합과 중첩을 통해 앙티미스트의 화면을 연상시키는 작품을 위주로 작업해왔다.

조삼남의 화면에는 집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화분이나 전등, 그리고 창 너머로 바라 볼 수 있는 나무와 새, 하늘의 달 등이 반복적인 형태로 얌전하게 등장한다. 그리고 아파트의 층간을 연결하는 계단이나 사다리 같은 이미지들 역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화면 안에서 구성과 균형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모종의 상승에 대한 욕구나 희망 을 암시하는 상징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작품에 작가는 ‘마음의 집’이라는 명제를 부여하였다.

조삼남의 최근작들의 형식적 특징 가운데 하나는 화면에 타일처럼 부착된 석고재료에 의해 파충류의 등가죽을 연상시키는 표면 질감을 확보한 상태에서 이러한 화면에 자신의 주변에서 채집되는 이미지를 도입하거나 그 느낌을 색채로 표현하여 그곳에 작가의 감성과 메시지를 투영하는 형식으로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작가가 단순한 평면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선택한 형식상의 변화로 볼 수 있는데 작가의 말처럼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표현의 욕구를 시각적 언어로 엮어 이야기를 전달하는 행위로서 작가는 이같은 그림 그리기를 선택하고 있다.

조삼남의 작품이 대상의 사실적 재현을 넘어서 단순하게 요약된 현실 속의 형태를 통해 일상을 초월하는 어떤 것에 작가의 시선과 감정의 촉수가 지향점을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조삼남의 작품은 부분적으로 추상이나 상징주의의 정신을 공유하는 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조삼남이 주목하는 것은 물성 그 자체이거나 현실에 대한 극복의 의지를 적극적으로 표명하는 형식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그 궤적을 달리한다는 주장도 성립한다.
조삼남은 2005년 인사갤러리에서 열린 <침실>을 주제로 한 개인전에서 자신의 작품에 대하여 “작은 모듈(module) 하나하나는 각각 독립적인 생활의 공간일 수도 있고 그 연속은 하루하루 일상의 반복일 수 있다”고 하였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 속에서 볼 수 있는 모듈 형태 역시 동일한 맥락에서 작가의 일상과 상념을 반영하는 의미소로서의 하나하나가 될 수 있으며 그것들이 모여 화면 전체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다. 동시에 이러한 모듈의 집합된 형태는 조형적으로는 격정적이지 않지만 일상에 대한 예민한 촉수를 민감하게 작동시키고 있는 작가의 감수성을 가시화하는 수단으로서 다년간 작가의 화면을 지켜왔다고 할 수 있다.

조삼남의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면 네모난 모듈의 도드라진 형태가 작가의 작품을 구축하고 있는 가운데 부드러운 색채의 조화와 아동화같은 형태의 순박함에 의해 구성된 안정적인 화면이 관람자의 시각을 보다 더 친근하고 가깝게 작가의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조삼남의 작품이 친근하게 다가오는 이유가운데 하나는 작가의 뛰어난 색채감각이 화면의 안정적인 구성과 결합하여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작가가 여러 해 동안 유지해 온 모듈 형식의 반복성에서 오는 지루함이나 단조로움을 극복해야 하는 부담감 역시 함께 존재하고 있음을 지적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은 작가 자신도 잘 알고 있으며 일부 작품에서 화면을 과감하게 양분한다든지, 모듈의 형식에 의존하기 보다는 과감한 보색의 대비에 의해 화면을 구성한다든지 하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무튼 이번 전시회를 통해 조삼남이 이제까지 자신의 작업을 중간결산하고 새로운 작업방향을 성공적으로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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