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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선택-인사동을 스치는 시선

하계훈

시선의 선택-인사동을 스치는 시선


우리는 외부에 펼쳐지는 장면에 효과적으로 반응하기 위하여 시선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즉, 우리 눈을 통해 들어오는 시각적 정보는 우리가 그것들을 한꺼번에 받아들이기에 힘이 부칠 만큼 과다하다는 것이다. 시각적 정보의 과잉은 도시와 전원지역을 비교해볼 때 도시에서 더 복잡 다양하며 수용자의 눈에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도심의 한가운데에는 넘쳐나는 인파, 그들의 의상과 장신구의 다양함, 각종 간판과 교통표지판의 혼돈스러움, 심지어 개발과 재개발의 현장에서 드러나는 조형의 규칙성과 난맥상마저 여기에 가세하여 우리의 시선을 교란하며 시각을 통한 인식을 압도한다.

1999년 4월 방한한 영국 여왕이 바쁜 일정 중에 그곳을 찾으면서 인사동은 아시아를 넘어서서 전세계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서양 사람들에게 Marys Alley라고 알려진 인사동은 한집 건너마다 구경할 수 있는 다양한 공예품이나 골동품과 함께 큰길을 한발자국만 벗어나면 바로 들어설 수 있는 골목길의 흥미롭고 이국적 풍경으로 외국인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물론 얼마 전부터 이곳에 중국과 베트남 등으로부터 출처가 의심스런 값싼 골동품과 공예품들이 쏟아져 들어옴으로써 이제까지 지켜온 인사동의 이미지가 왜곡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인사동도 파리의 에펠탑 앞의 샤이오 궁전 광장이나 런던의 대영박물관 앞에서 잡상인들이 조잡한 싸구려 기념품들을 파는 것과 유사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으니 가히 국제적 관관명소로 변해가고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앞에서 언급한 파리나 런던의 관광지에는 잡상인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역사와 전통의 고급문화 컨텐츠가 함께 있음으로써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잡상인들의 싸구려 기념품들을 너그러이 바라봐 줄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전통문화자산으로서의 인사동을 국제적 관광명소로 만들기 위해서는 싸구려 물건들을 몰아내려고 하기보다는 여유 있게 그들과 함께 공존하는 품위 있는 문화 컨텐츠를 풍부하고 다양하게 유지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번에 새롭게 이전 개관하는 공아트센터는 30년 넘게 인사동을 지켜온 고미술 중심의 전문화랑인 공화랑이 확대 개관하는 것이다. 공아트센터에는 고미술전문공간과 경매 공간, 그리고 현대미술을 중심으로 운영될 예정인 브리지 갤러리가 자리 잡게 된다. 그 가운데 브리지 갤러리에서는 이전개관 기념전으로 <인사동을 스치는 시선>전을 기획하였다.

이번 전시는 조선시대부터 우리 문화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왔던 인사동과 그 주변의 다양한 표정을 담아보고자 기획되었는데, 8명의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평소 자신들이 즐겨 다루어왔던 매체를 이용하여 역사의 현장이자 어제와 오늘의 우리들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인사동 주변을 대상으로 해서 일부는 사실적으로, 그리고 또 일부는 상징적으로 자신의 작품을 펼쳐보도록 하였다.

이상원은 작품의 소재를 찾기 위해 우리의 일상에서 사람들이 군집된 장소를 관찰한다. 특히 노동의 공간보다는 휴식과 여가의 공간에 군집된 인물상들의 묘사를 통해 현대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관찰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따라서 인사동을 오가는 인파 속에서 다양한 모습을 찾아 회화와 영상 작업으로 연결한 이상원의 작품은 오늘날의 인사동의 제모습을 전달하기에 가장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작품에서도 우리는 군중 속의 개인 하나하나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과 그것을 담아내는 손길을 잘 느낄 수 있다.

송지연은 도시의 풍경 속에서 자아를 발견하는 작업을 계속해왔다.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장면을 스냅사진처럼 포착하여 화면의 질감을 거칠게 만든 상태에서 아크릴 물감을 인상파나 신인상파 스타일로 적용하는 작품을 통해 작가는 대상을 부분적으로 해체하고 흐리게 만들어 회화적인 효과를 유도하고 있다. 이번 출품작에도 인사동 주변의 거리를 따라 걷는 군중들과 차량의 모습 등 도시 안에서 드러나는 일상에 대한 작가의 중립적이며 객관적인 시선이 잘 나타나 있다.

이예린은 사진 작업을 통해서 국내외의 잘 알려진 장소를 화면에 담아왔다. 이제까지 작가는 주로 외국의 도시 풍경이 거리에 고인 물에 비친 장면을 촬영하여 화면을 아래위로 뒤집어 놓는 작업을 해왔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인사동 인근의 창덕궁을 대상으로 비슷한 형식의 작품을 제작하였다. 물이 비친 이미지는 실제를 반영하는 허상이지만 작가는 촉촉한 느낌으로 바람에 흔들거리는 이러한 이미지를 선택하고 실제의 이미지를 흑백으로 처리하여 박제화함으로써 일상을 초월하는 새로운 시각을 선택하고 있다.

김진은 공간과 그 공간 안에 존재하는 인간에 집중한다. 이제까지 외국 유학을 통해 접해왔던 이국적인 실내 공간의 풍경 속에 작가는 자신으로 보이는 인물을 배치하여 이국적 실내 풍경 속에서 공간과 동화되지 못하는 자아의 심리를 표현해왔다. 강렬한 색을 중첩된 선에 실어 표현한 화면에서 창문은 작가의 소외와 단절감을 극복하는 창구로서 외부와의 소통을 가능하게 해준다고 볼 수 있다. 이번에 작가는 귀국 후 처음으로 인사동이라는 익숙한 장소를 실내에서 창을 통해 내다보는 형식으로 대형 화면에 담음으로써 먼 곳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감회같은 정서를 표현한다.

홍성철은 인체의 부분에 집중한다. 사진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포착하고 그 이미지를 연속적으로 배열된 고무줄 위에 프린트하여 평면적 이미지를 입체화시킨다. 이번에 출품된 작품들은 우리가 거리나 생활 속의 공간에서 포착하는 사람들의 모습 가운데 특징적인 인상을 주는 손의 모습과 상체가 주로 묘사되어 있다.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시각적 표현이 얼굴이라고 생각되지만 홍성철은 얼굴을 제외한 부분적 인체의 표현을 통해 모자람 없이 생각과 감정을 전달해주고 있다.

윤병운은 자신의 작업에 등장하는 이미지의 단선적인 해석을 의도적으로 외면하여왔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대상들을 해석함에 있어서 모호함 속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출품된 작품들도 장소 특정적이기보다는 거기서 연상되는 이미지를 가공하여 사실적인 기법으로 표현하되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함으로써 초현실주의적 인식의 혼란과 충격을 경험하게 해주는데, 그 결과는 묘하게도 의식과 경험의 청량감으로 돌아온다.

박준범은 영상작업을 위주로 이번 전시에 참여하였다. 이번에 출품된 작품은 작가가 지인들로부터 얻게 되거나 그 밖의 경로로 현재 작가의 수중에 있는 물건들을 목록화하는 작업의 한 부분을 보여준다. 짐작컨대 작가는 인사동이라는 장소를 거닐면서 추억이 담긴 오래된 것, 조상의 숨결이 느껴지는 손때 묻은 것, 외국에서 들여온 신기한 것, 별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하는 시시한 것 등과 만났을 것이고 이로부터 자신의 주변에 있는 물건을 의미 있게 정리하는 작업으로 연결하게 되었던 것같다.

남현주는 채색화를 통해 우리 전통공예품과 병풍, 그리고 서양의 골동품 등의 기물을 화면에 도입함으로써 환상정인 이야기를 전개하는 작품을 보여주어 왔다. 그녀의 작품에서는 동양적 회화원리에 근본을 두면서 서양적 미감을 동시에 흡수하고자 하는 창작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남현주의 작품은 이번에 출품된 작품들 가운데 인사동이라는 장소가 갖고 있는 역사성의 가장 먼 곳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면서도 현대의 미감으로부터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고 오히려 역사성과 현대성을 동시에 접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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