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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 빛으로 빚어내는 시적 서정

하계훈

빛으로 빚어내는 시적 서정


화가에게 빛은 생명과도 같다. 빛에 의해 만물의 색채와 형태가 드러나고 그렇게 드러난 사물의 모습을 실물과 닮게 그리는 일이 근대까지의 미술사를 관통하고 있는 화가들의 과제였던 것이다. 그런데 인공조명이 개발되기 전까지 화면 속의 빛은 대부분 상징적이거나 관념적인 것에 그치고 있었다. 빛에 대한 관심과 감각적 예민성이 증대되게 된 것은 인상파 화가들의 시대인 근대에 이르러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김성호의 작품에서는 주로 한낮의 자연광이 사라지고 난 후의 밤과 새벽의 도시 풍경 혹은 불빛이 물에 반사되면서 퍼져나가는 항구의 모습 등을 보여준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일광(日光)이 사라진 환경에서 어둠을 배경으로 드러나는 인공조명이 대상을 비추어 그것이 대낮과는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현상에 집중되어 있다. 따라서 인공조명이 부재한 대자연의 밤풍경이나 도시의 한낮의 풍경보다는 인공조명이 우리의 시각을 지배하는 밤과 새벽의 도시 풍경에 김성호가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빛은 두 가지 소스에서 우리에게 전달된다. 첫째는 태양처럼 스스로 발광하는 물체로부터 전달되는 빛이며 두 번째는 별이나 달처럼 이러한 빛을 반사하여 그 반사된 빛을 전달하는 것이다. 김성호의 작품에 등장하는 빛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빛으로서 그것은 마치 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내뿜으며 그 빛이 닿는 주변의 사물들이 다시 그 빛을 반사시키게 만들어준다. 외부로부터 전달된 빛을 비추는 반사체가 아니라 자체 발광하는, 스스로를 드러내는 빛들이 어두운 도시의 건물과 도로를 밝힘으로써 김성호의 화면 속의 도시는 다시 한낮과 같은 속도와 부산함을 되돌리려고 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낮과는 다른 사물의 표정을 감각적으로 드러내주기도 한다.

김성호는 세 가지 정도의 모티브를 반복적으로 도입하면서 화면을 구성해오고 있다. 우선 작가는 먼 곳에서 부감법적 시선으로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는 작품들을 즐겨 그린다. 이러한 작품에서 하늘과 땅은 크게 상하로 양분되는데 대부분의 경우 화면의 상부를 차지하는 하늘에는 짙은 코발트색이나 회색이 색면 추상 작품에서처럼 반복적으로 적용되면서 균질한 색면을 형성하여 캔버스의 바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그 반면에 화면의 아래 부분을 차지하는 지상의 부분에는 인공조명의 불빛에 해당하는 밝은 색면들이 바탕에 칠해진 위로 검은 색에 가까운 어두운 채색을 가하는 다양한 붓놀림에 의하여 건물의 그림자와 도로의 불빛이 조성되고 어두운 건물의 실루엣 틈새를 비집고 나오는 듯한 밝은 빛들이 도시 야경의 실내등과 네온이나 가로등 불빛을 형성한다. 이러한 야경 작품은 마치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처럼 한눈에 볼 때 도시의 순간적인 모습을 실물처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그 세부를 들여다보면 역설적으로 매우 추상적이어서 그 실체를 알아보기 어렵게 된다. 말하자면 이러한 김성호의 작품은 작가의 대담한 필치와 타고난 조형 감각이 밤이라는 환경을 이용하여 구상과 추상이 공존하는 독특한 형식을 합성해내고 있는 것이다.

김성호가 두 번째로 즐겨 채택하는 모티브는 이러한 도시의 세부를 포착하는 시선이다. 한밤중의 거리를 달리는 버스와 승용차, 그리고 그것들이 흘리듯이 뿌리며 지나간 불빛의 자국들, 길가의 가로등과 상점의 불빛 등으로 구성된 화면은 작가의 능숙한 붓놀림으로 인해서 생생하게 현장감을 전달하면서도 작품 속에서 밤이 주는 감상에 빠지는 낭만주의적 페이소스를 자아낸다. 2008년에 제작된 <새벽-한국은행>은 파노라마적 화면 전개와 녹회색 단색조에 가까운 밤의 도로에서 느끼는 속도를 표현하는 호방한 붓놀림 등을 통해 작가가 도시 풍경화 속에 담아놓은 자신의 감각과 기량에 대한 자신감과 신뢰를 읽을 수 있게 해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러한 도시 풍경과 함께 김성호가 자주 표현하는 또 하나의 작품 형식은 항구나 강변의 야경이다. 작가는 여행을 즐겨 다니면서 낚시를 하기도 한다. 김성호는 낚시 그 자체보다는 오히려 그 장소에서 목격하는 바다의 야경과 물에 비치는 불빛 등에 관심을 가진 듯하다. 바닷가나 강가의 불빛들이 물위에 흔들리며 부서져서 만들어내는 화면은 마치 모네의 지베르니 시절 작품처럼 점점 형태들이 풀어 흩어져 색채와 선이라는 조형요소로 환원되는 또 하나의 추상화 과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지난 10년간 도시의 야경을 중심으로 빛의 작용과 그로부터 형성되는 분위기를 작가 특유의 세련되고 능숙한 필치로 화면에 담아온 김성호의 이번 전시를 통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어둠과 빛이라는 상반되는 요소의 결합에 의해 생명과 활력을 탄생시키고 한낮과는 사뭇 다른 사물의 느낌과 표정을 담아놓은 작품들을 만나게 된다. 시인이 글로써 시상을 전달한다면 김성호는 우리에게 빛으로써 도시의 밤에 대한 심상을 전달하는 시각적 서술의 매력을 가진 작가로서 시적 서정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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