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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원

하계훈

주소원은 금속공예뿐 아니라 회화, 설치, 영상 등 다양한 장르의 작업에 관심을 갖고 창작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작가는 은과 구리 등의 금속과 함께 목재, 우레탄, 아크릴 등 폭넓은 재료를 작품의 성격에 따라 적절하게 선택하여 창작에 응용하여 왔다. 오늘날 예술 장르 사이의 경계가 점차 허물어져 갈 뿐만 아니라 장르간의 융합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현상을 생각해보면 작가가 이렇게 여러 가지 재료와 표현에 관심을 갖는 것이 별로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그러나 이처럼 주소원이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녀의 주된 관심은 금속이라고 할 수 있으며 다른 재료들도 결국 그 자체로서의 표현 가치를 드러내는 것과 함께 금속 작품들을 보다 돋보이게 해주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주소원의 작품은 인간의 삶에 초점을 둔다. 탄생에서 사망까지 인간은 모두 성장과정의 일정한 패턴을 따른다. 탄생과 사망 사이에서 전개되는 삶의 양상은 개인의 환경과 경험의 차이에 의하여 다소간의 변화가 있을 수는 있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모두 거의 동일한 과정을 거쳐 나아간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태어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규범을 학습하며 혼인과 같은 각종의 통과의례를 지나면서 겪는 변화와 성장을 경험한다. 주소원은 다양한 재료를 통해 이러한 삶의 궤적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주소원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이러한 생의 주기에 순환적으로 다가오는 탄생과 성장, 그리고 소멸의 사회적 의미를 천착하고 급변하는 현대생활 속에 함몰된 우리들의 자존감과 숭고한 정신을 회복하며 내면의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싶어 한다. 이번에 출품된 작품 가운데 탄생을 상징하는 는 꽃의 수정과 개화, 만개와 낙화라는 생명주기 가운데 한 순간을 상징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꽃의 일생에 함축된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들어준다.

밤과 카오스를 연상시키는 어두운 톤의 캔버스를 배경으로 펼쳐진 경사면의 한 끝에서 불안정하게 피어나고 있는 식물처럼 보이는 은색의 오브제는 생명의 탄생을 둘러싼 환희와 경이로움 뿐 아니라 앞으로 전개되는 고난과 역경, 그리고 그를 극복하려는 의지와 기품 있는 태도 등 다층적인 삶의 정서가 잘 표현되어 있다. 특히 이 작품에서 긴장감을 일으키는 포인트를 이루고 있는 은으로 만든 오브제의 형태적 세련미와 표면의 광택, 그리고 그 표면에 반사되는 관람자의 모습을 통해서 오브제와 관람자가 동일시되는 효과는 관람자가 자기투사를 통해 작가가 제시하는 생명에 관한 주제의 선명성을 더욱 실감할 수 있게 해준다.

종교와 철학에서 생명의 탄생과 소멸은 다시 재탄생으로 이어지는 순환의 고리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생명의 순환은 에서 설치작품 으로 표현되었다. 애벌레가 고치(cocoon)로, 그리고 다시 나비로 환생하는 생명의 순환은 예술가들에게 불교적 윤회나 기독교의 부활 등을 연상시키는 모티브로서 종교적이면서 드라마틱한 내러티브를 제공해왔다. 주소원도 이 작품에서 애벌레의 순환적 생명현상을 표현하기 위하여 불을 연상시키는 적색 계통의 캔버스 배경화면과 바닥의 숯, 그리고 천정에 매달린 고치 등으로 구성된 상징적 공간을 전개시키고 있다.

생명의 탄생에 뒤 이은 삶의 여러 가지 모습은 주소원이 구리와 목재를 이용하여 만들어낸 몇 가지 공간으로 제시된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공간으로서 수면을 상징하는 침대와 창작 활동을 상징하는 작업실 공간, 그리고 자기정화와 카타르시스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는 욕실 공간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공간은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지만 주소원은 작품에 바퀴를 달아 이동성을 부여함으로써 사적인 공간이 공공의 공간으로 자유롭게 이동한다는 재미있는 발상을 전개하였다.

농경시대의 정착생활과 달리 정보화시대의 삶은 한 장소에 머무르기보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관계를 형성하고 정보를 채집한다. 주소원 자신도 국내 뿐 아니라 미국에서 공부를 하며 작품의 주제를 확대시키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환경으로부터 창작의 모티브와 영감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자신의 금속공예 작품에서 지배적으로 드러나는 여성성과 유미적인 주제를 넘어서 대형 설치 작품과 오브제에서는 주소원이 자연의 관찰자며 삶의 관조자로서의 작가상을 확립하였으며 작품을 통해 전개하는 논리에 있어서도 과장이나 복잡한 수사가 없이 인간의 보편적 사고에 침투할 수 있는 삶의 문제를 무난하게 다루고 있다.

이번에 출품된 작품 가운데 가장 눈에 띠는 것은 생명과 조화를 내포한 나뭇잎에서 모티브를 이끌어낸 로서 기능상으로는 연회용 은 촛대라고 볼 수 있지만 형식상으로 곡선미와 은이라는 금속의 재질의 특성이 잘 드러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생명의 순환 주기에서 삶의 절정에 다다른 기쁨과 환희가 잘 표현되어 있으며 배경을 이루는 어두운 숲 형태의 대형 캔버스와의 대비 또한 이 작품의 특성을 두드러지게 만들어 주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인간의 삶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주소원은 일관된 논리와 그러한 주제를 뒷받침해주는 적절한 표현형식과 재료의 선택, 그리고 작가의 성실한 노동을 통해 얻은 작품의 완성도 등을 바탕으로 관람객과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전시장의 배치에 있어서도 생명 순환의 시간적인 순서를 단선적으로 따르기보다는 작품의 특성을 살려 공간을 배치하고 마지막 부분에서 작가의 역량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금속공예 작품들을 통해 우리 삶의 절정기를 건강하고 아름답게 표현한 공간의 디자인 방식도 관람의 재미를 더해줄 것이다.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국내에서는 사실상 첫 개인전이라고 볼 수 있는 이번 전시를 통해 주소원이 우리 미술계와 관람객들에게 제시하는 생명의 순환과 그 과정에서 발견되는 미학적, 사회적, 철학적 문제들을 작품으로 풀어낸 결과가 관객들과 성공적으로 소통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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