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21세기 공공미술관의 소장품 운영 특성화 및 새로운 패러다임

하계훈

21세기 공공미술관의 소장품 운영 특성화 및 새로운 패러다임


미술관의 기원은 근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1683년에 영국의 옥스퍼드에서 문을 연 애쉬몰뮤지엄(Ashmolean Museum)이나 1759년 런던에서 문을 연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을 그 시작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좀 더 거슬러 올라가서 고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입구 프로필리아(Propylaea) 좌측에 그림들을 모아두었던 피나코테카(Pinacotheca)나 중세의 제단화와 종교적 주제를 담은 그림이나 조각을 배치한 성당과 수도원 등에서 미술관의 기원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미술관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근대적 미술관이 탄생하기 위한 준비기간 동안의 서구 사회는 절대군주나 귀족들의 지적 호기심이나 수집욕과 과시욕, 그리고 이러한 개인적 욕구를 사회적 기여로 환원시킨 그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쥬 정신이나 시민사회의 등장 등이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따라서 서양의 대부분의 미술관들은 그 출발에서부터 상당한 소장품을 확보한 생태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첫 미술관은 1909년 이왕가의 미술품과 귀중품들을 바탕으로 설립되었으며 1966년 설립된 간송미술관이나 1981년 설립된 호암미술관과 같은 대표적인 사립미술관들도 소장품이 어느 정도 확보된 상태에서 출발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미술관의 정체성과 기능이나 그것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재한 상태에서 출발한 미술관은 주로 영세한 사립미술관들과 국립이나 공립의 성격을 띤 공공 미술관들이었다. 사립미술관들을 논외로 하고 살펴볼 때 1969년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은 미술관이라기보다는 당시의 대한민국 미술대전의 수상작들을 소개하는 전시장에 가까웠고 그 이후에 설립된 지방자치단체의 미술관들도 대부분 제대로 된 미술관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엄밀한 의미에서 국공립미술관에 속하지는 않지만 사실상 그 성격이 국공립미술관들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는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이나 문화예술위원회 소관의 아르코미술관과 같은 기관들도 그 출발이나 진행과정의 난맥상은 대부분의 국공립미술관들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국공립미술관들이 파행을 거듭해 온 주요 원인은 미술관을 전문 기관으로 바라보지 않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행정부서의 한 부분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그 곳에서 전문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인력들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고 행정적 업무 중심으로 미술관의 모든 일을 처리해 온 시각에서부터 비롯된다. 따라서 이러한 미술관들이 의사결정 과정의 효율성이나 인적 구조의 합리성은 물론이고 미술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소장품 컬렉션에 대한 정책이 제대로 이루어졌을 리가 만무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공공미술관에서 소장품 컬렉션과 관련된 업무가 초기부터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곳은 한 군데도 없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의 유일한 국립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형성과 관리 과정도 국제적 기준을 따라야 하는 국가 대표 미술관으로서는 허술하기 그지없었으며 서울시립미술관을 비롯한 공공미술관들의 거의 전부가 소장품에 대한 전문적인 관리능력이나 그러한 소장품을 바탕으로 한 학문적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출발하여 지금까지도 그 상태가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비영리 공공 미술공간을 포함한 모든 미술관들이 추구해야 하는 컬렉션의 틀은 그 공간의 성격과 지향하는 목표 등과 일치하여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공공미술관이 설립 목표를 구체적으로 설정하지 못하고 인프라스트럭처의 지역적 균형이나 증명되지 않은 지역민들의 문화욕구 등을 근거로 하여 공간 건립사업 중심으로 설립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설립 이후의 운영에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또한 일부 기관에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기관의 운영 목표를 당초의 목표에서 획기적으로 전환하면서 이제까지 시행해왔던 해당 미술관 운영 방식을 크게 수정하야 하는 어려움에 봉착하기도 한다.

이렇게 획기적인 전환을 모색하는 기관의 경우에는 여러 가지 변화가 요구되겠지만 무엇보다도 이제까지 수집, 보존해 온 소장품에 대한 관리와 처분이 새로운 방향을 찾아야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주로 19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설립되어 온 미술관들은 20세기의 운영을 거쳐 오면서 해당 미술관이 속한 사회의 교육과 문화, 역사와 철학 등의 분야에서 적지 않은 기여를 해왔으며 그렇게 해 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 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컬렉션의 힘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였다. 따라서 컬렉션의 변화는 곧 그 기관의 역량이나 성격의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중요한 사항인 것이다.

최근 들어 일부 미술관들이 막대한 인력과 재정을 수반하는 소장품 컬렉션 정책을 수정하여 소장품이 없거나 최소한도의 소장품을 유지한 상태에서 미술관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특히 21세기 들어서 정보의 생산과 유통 속도가 이전보다 급속하게 빨라지면서 미술관에서 소장품을 오랜 기간 동안 보존하면서 학예 직원들에 의해 해당 소장품에 대한 학술적, 미학적 가치를 충분하게 연구하고 그 결과를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의 느린 속도의 미술관 운영 방식이 지양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미술관의 소장품을 유지하지 않는 상태에서 전시를 운영할 경우 미술관 측에서는 순발력 있게 전시를 기획하고 해석할 수 있는 전문 인력과의 연대가 필요하며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마다 필요로 하는 작품들의 확보를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채널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게 된다. 전시를 기획함에 있어서 자기 미술관에 소장된 충분한 소장품을 바탕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과 소장품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타 기관이 보유한 미술품을 대상으로 전시를 기획하는 것은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어느 공공미술관이 소장품 컬렉션 정책을 수정하여 최소한의 소장품을 보유하거나 소장품을 전혀 보유하지 않고 미술관 공간을 운영할 계획이라면 향후 해당 미술관에서 기획되는 전시나 교육 프로그램에 필요한 작품들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대한 면밀한 계획이 수립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 들어 미술시장이 확대, 과열 되면서 세상을 떠난 작가들 뿐 아니라 생존 작가들의 작품 가격도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상승하고 있는 추세이므로 앞으로 공공미술관에서 소장품을 확보하는 것은 그만큼 더 부담스러울 수 있다. 따라서 공공미술관이 소장품 확보를 위하여 부담스런 재정 지출을 감당하여야 할 것이라는 것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국가적으로 혹은 미술사학적으로 의미 있는 미술품이 미술 시장을 통해 특정 개인이나 소수의 사람들의 수중에 넘어갈 경우 그러한 작품이 대중들에게 감상의 기회를 제공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러한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공공미술관에서 미술시장의 경쟁자들과 경쟁하여 의미 있는 작품이 공공의 소유로 머물 수 있게 노력할 필요가 있으며 이런 의미에서도 공공미술관의 소장품 컬렉션은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공공미술관의 소장품 정책은 미술시장에서 비정상적으로 미술품에 대한 평가와 해석이 이루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도 고려하여야 한다. 물론 이러한 역할이 공공미술관 혼자만의 역할도 아니고 혼자만이 수행할 수 있는 일도 아니겠지만 공공미술관이 재정적인 이유로 소장품 컬렉션 정책에서 한 발 물러설 경우 그 사회에서 미술에 대한 해석과 평가의 왜곡이 일어나는 것은 불가피할 것으로 생각된다.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공공미술관의 소장품 컬렉션 정책은 앞에서 언급한 내용들을 올바르게 지켜낼 수 있도록 충분한 재정과 인력을 확보하여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실시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러한 조건이 갖춰지기 힘들 경우 해당 미술관 측에서는 소장품 확보와 관리에 따르는 부담을 덜고 싶을 것이지만 이 경우에도 미술관 운영에서 소장품이 차지하는 중요성과 그 의미를 고려하여 적절한 대안으로서의 유사기관과의 네트워크나 전문 인력의 활용 등에 대하여 사전에 완벽한 준비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