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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소유 미술품의 가치와 상징성

하계훈

국가소유 미술품의 가치와 상징성


역사적으로 미술품은 한 사회나 조직이 지향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그 구성원 사이의 집단의식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수단으로서 이용되어 왔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한 집단이나 국가가 수집하여 소장하고 있는 미술품을 살펴보면 그것은 곧 그 사회 조직이 지향하는 목표나 그 구성원들의 의식을 드러내준다고 할 수 있다.1)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정부 차원에서의 미술품 수집 기능이 꾸준히 이루어져 왔다. 정부 수립 이후 우리 정부가 소장해 온 미술품들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매년 열리는 정부 차원의 공모전 형식의 행사를 통해 우수한 평가를 받은 작품들을 국가가 시상하고 그 작품들을 매입하는 형식으로 소장하는 것이며,2) 둘째는 2005년부터 실행되고 있는 미술은행 제도로서 정부가 일정 재원을 투입하여 예술가들의 작품을 구입해줌으로써 예술가들의 창작 의욕을 북돋아주고 부수적으로 미술시장의 활성화에도 기여한다는 목표 아래 실행되는 사업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정부의 개별 부서가 독립적인 예산을 들여서 부서의 자산으로 미술품들을 구입하여 활용하면서 소장, 관리해오고 있는 경우다.

첫 번째의 경우에 우리 정부에서 소장하게 된 미술품들은 1922년 일본 식민정부에서부터 시행되던 <조선미술전람회>3)로 시작하여 해방 후에 이를 계승하여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등으로 그 명칭이 바뀌면서 이어지는 일종의 공모전에서 수상한 작품들을 매입상 형식으로 확보하여 그 작품들이 정부 소장품으로 남아있는 경우다. 이 가운데 <대한민국 미술전람회>가 1982년에 <대한민국 미술대전>으로 바뀌기 전까지의 수상작들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1982년 이후의 수상작들은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위원회)에서, 그리고 다시 <대한민국 미술대전>의 운영권이 한국미술협회로 이관된 1989년 이후의 중요 수상 작품들은 한국미술협회에서 각각 보관하고 있다.

두 번째의 경우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재원으로 미술품을 구입하는 미술은행 제도다. 미술은행은 미술작품의 구입과 대여를 통해 작가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국민의 문화향수권 신장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2005년에 설립되었으며, 부수적으로 미술시장을 활성화시키고 해외전시를 통한 한국 현대미술의 홍보 및 위상 강화를 목표로 삼고 있다. 처음에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이 사업을 위탁관리 하면서 독립적인 운영 주체의 설립을 모색하였으나 현재는 미술은행 사업을 주관하는 독립 기관을 설립하지 않고 초창기에 사업을 위탁받았던 국립현대미술관이 사업을 주관하는 쪽으로 사업방향이 굳혀지고 있다.4)


주석
1)예를 들어 나치 정권 아래서의 조각가 브레커(Arno Breker)의 작품 활동은 히틀러의 정치적 이상과 어떻게 결합되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Jonathan Petropoulos, Art as Politics in the Third Reich,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1996) p. 8

2)이러한 형식의 행사는 프랑스의 살롱전을 모델로 하는 것이며 프랑스의 경우 수상작들은 왕실의 영광에 기여하는 내용이거나 특정 경향을 선호하는 군주의 취향이 반영된 작품들이 선발되었다.

3)조선총독부가 1922~44년에 걸쳐 해마다 개최한 대규모 종합전람회. 조미전(朝美展) 또는 선전(鮮展)이라고 줄여 부르기도 한다. 처음에는 1부 동양화, 2부 서양화 및 조각, 3부 서예로 구분했고, 1932년에는 서예를 없애고 공예부를 신설했다.

4)미술은행 사업은 미국의 1930년대 대공황기의 The Federal Art Project (FAP)나 the Public Works of Art Project와 부분적으로 유사성을 갖는다고 볼 수도 있다.


세 번째의 경우는 정부의 개별 부서가 사무 공간을 신축하거나 공간을 장식할 목적으로 수집한 작품들을 확보한 경우인데 현재 약 16,000점 정도로 파악되고 있는 이 작품들의 규모나 관리 시스템 등이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어서 관리 효율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세 가지 방법으로 정부가 미술품을 수집해 온 결과물들은 현재 첫 번째와 두 번째의 경우 국립현대미술관과 문화예술위원회, 한국미술협회 등 미술관련 전문성을 어느 정도 담보할 수 있는 기관의 전문적인 관리를 받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세 번째의 경우에는 미술품의 수집에서 보존, 관리에 이르기까지 전문 인력의 개입이 부족한 편이어서 상당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생각된다. 현재 이와 같은 경로로 수집된 국가 소유 미술품은 조달청에서 ‘미술품’이 아닌 물품으로 분류되고 있고, 미술품의 구입, 보존, 관리의 책임은 정부부처별로 흩어져있어서 총괄 관리가 어렵게 되어 있다.

국가가 미술품을 소장하는 형식은 근대 이전의 군주국가에서부터 이루어져 왔으며, 근대 이후 시민정부가 들어선 다음에도 각 나라마다 국내적으로는 국민계몽과 국민 문화 향수권을 신장시킨다는 의미로, 그리고 국제적으로는 국가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 미술품을 소장, 활용해오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미술품의 수집에는 분명한 목표가 선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군주국가에서는 군주의 위엄과 영광을 위한 가시적인 물증으로서의 미술품이 압도적으로 우위를 차지하였으며 민주 시민사회에 들어선 국가에서는 국민 대다수가 받아들일 수 있는 계몽적인 내용이나 보편적인 주제와 미감을 담은 작품들이 수집되게 된다.

근대 문화를 선도한 영국이나 프랑스와 같은 나라의 국가 미술품 수집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특정 시대에 권력층으로부터 선호되던 미술품들은 그 당시의 정치적 지각 변동을 민감하게 반영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루이 15세 시절 권세를 누리던 퐁파두르 후작 부인의 일가들은 위축되어가던 왕립미술 아카데미의 기능을 강화하고 역사화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세금 징수인 출신이었던 자신들의 가문을 영광스럽게 치장하는데 역점을 기울이기도 하였다.5)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의 각 부처에서 이제까지 수집, 관리해오고 있는 미술품들은 외교통상부를 통한 국외 공관 등을 장식하는 미술품과 그 밖의 부서에서 국내 사무 공간을 장식하는데 이용하는 미술품으로 분류될 수 있다. 외교통상부의 경우에는 미술품의 구입과 활용에 있어서 비교적 체계적인 계획을 세우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며 사업을 실행하고 있는 편이라고 볼 수 있다. 외교통상부에서는 2003년부터 현재까지 문화외교국 문화예술사업과 주관으로 연간 약 5억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해외 공관의 미술품 장식 사업을 시행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서 주무과에서는 8명의 미술관련 자문위원을 선임하여 전문적인 협조와 조언을 구하고 있다.


주석
5)Andrew McClellan, Inventing the Louvre, Art, Politics, and the Origins of the Modern Museum in Eighteenth-Century Pari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4) pp 15-17

6)외교통상부 미술품 관리규정(외교통상부 훈령43호) 및 외교통상부미술자문위원회설치운영규정(외교통상부 훈령47호) 참조


한편 국내의 정부기관에서 미술품을 수집하여 활용하는 경우는 특별한 규정이나 절차가 일괄적으로 적용되기보다는 부서에 따라 규정을 제정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규정에 의존하지 않고 의사결정권자의 결심에 의해 구입과 활용이 결정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경우 전문가들의 개입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부서의 의사결정권자의 취향이나 판단이 미술품의 수집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적지 않게 됨으로써 부서별로 수집한 미술품의 내용이나 질적 수준은 커다란 편차를 보인다.

이렇게 정부 부서마다 개별적으로 미술품을 수집, 활용하는 경우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지적될 수 있는데, 무엇보다도 미술품 수집과 활용에 대한 일관된 목표와 방향성의 부재를 들 수 있다. 처음부터 미술품 수집의 목표를 분명히 하고 장기적인 목표와 단기적인 계획을 세워 단계적으로 수집 활동을 이어가기보다는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상황에 따라 수집이 이루어지고 후속 수집 활동과의 맥락이 연결되지 않음으로써 전체적인 미술품이 그려내는 해당 부서의 성격이나 지향점은 모호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정부가 소유한 미술품을 통해 국민들에게 제시하는 일관된 목표와 방향성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정부 소유 미술품의 수집과 관리를 위한 전문적이고 통합된 기구의 설립과 운영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이밖에도 국가 전체적으로 볼 때 부서별 개별 수집활동의 결과로 개별적인 수집에 의한 미술품 수집의 중복성의 문제나 전문적 관리가 미비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수집에 따른 비용의 비효율성, 수집 작품의 향후 관리비용을 계상하지 못함으로써 구입 이후의 관리가 부실해지는 경우도 다반사인 것으로 나타난다. 현재 정확한 조사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정부 부서마다 미술품 구입 예산을 별도로 편성하고 있는 부서는 많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2004년에 실시된 어느 자방자치단체의 151개 산하 기관에 대한 미술품 예산 편성 조사결과를 보면 전체의 5.3%인 8개 기관만이 미술품 구입예산을 편성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7)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 부서별로 소장하고 있는 미술품에 대한 기본적인 목록화 역시 정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참고로 영국의 영국문화원 컬렉션(The British Council Collection)의 경우에는 지난 70 여년간 수집해 온 8천 점이 넘는 작품들에 대한 카탈로그가 잘 정리되어있는 것은 물론이고8) 이러한 목록을 바탕으로 전문가들에 의해 기획되는 전시를 세계적으로 순회시킴으로써 영국 현대미술의 진면목을 110개가 넘는 나라에 성공적으로 널리 알려오고 있다.

이러한 작업의 결과로 영국문화원은 2001년에는 소장하고 있는 현대미술품들을 활용하여 미술감상과 교육에 이바지한 공로로 ARCO International Prize를 수상하기도 했다.9) 이와 같은 영국의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정부에서 수집한 미술품들도 일원화된 관리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으며 이제까지의 소장품에 대한 전문가들의 검토와 목록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목록화 작업에는 작품의 출처(provenance)에 대한 조사도 함께 시행되어야 한다. 작품의 출처 조사에는 구입경로와 이전 소장자에 대한 이력, 그리고 작품의 도난, 도굴 등에 대한 사실 확인 조사 등이 빠짐없이 시행되어야 한다.


주석
7)경기문화재단, <경기도내 공공기관의 미술품 구입과 활용에 관한 연구> (2004.12)

8)영국문화원은 소장품에 대한 카탈로그를 1984년과 2009년에 각각 발간하였다.

9)http://collection.britishcouncil.org/about


목록화의 결과는 다시 소장 작품에 대한 전문적인 평가와 재평가, 그리고 감정을 거쳐 개별 작품에 대한 정확한 가치를 부여하고 이러한 평가의 결과에 따라 개별 작품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소장하고 있는 미술품은 해당 부서를 위하여 활용하기도 하겠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대중에게 공개되어야 하며 이 경우 보험을 통해 만약의 경우에 발생하는 위험으로부터 작품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10)

우리 정부 부서의 미술품 수집이 출발 시점에서부터 체계적인 준비와 계획이 선행되었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기존의 수집 작품들 가운데에는 처분(deaccession)의 필요성이 제기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의 관점에서 처분이 고려될 수 있는 작품이라도 우리 미술사의 연구에 필요한 작품이거나 향후 그 가치가 변화하여 다시 필요한 작품이 될 수도 있으므로 웬만하면 소장 작품들은 처분보다는 장기임대나 관리이전의 형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한 나라에서 소유하고 있는 미술품은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 그 시대의 정신을 시각적으로 드러내주는 산물이다. 특히 정부에서 소유하고 있는 미술품들은 국내외적으로 그 나라 국민들의 미의식이나 정치적, 역사적 관점을 제시하는 상징적인 지표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국가 소유 미술품들은 수집과 활용에 있어서 좀 더 세심하고 전문적인 고려가 필요하며 보존과 관리에 있어서도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비전이 요구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부소유 미술품은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공모전의 수상작을 비롯하여 이런 저런 기회를 통해 각 부서에 소장되게 되었는데 그 관리가 체계화되어 있지 못함으로써 그 효율성과 전문성이 떨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국내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국가적 이미지의 훼손과 경쟁력의 저하를 초래할 수밖에 없으므로 지금부터라도 국가소유 미술품에 대한 좀 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관리가 시급하게 요구된다.

주석
10)정부나 국공립미술관의 소장품에 대한 보험은 GIS(Government Indemnity Scheme)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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