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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자연, 소통

하계훈

생명, 자연,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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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우금속공예관이 개관 이후 매년 개최해오고 있는 특별기획전의 2011년 주제는 <인체와 장식>이다. 금속공예는 대부분의 경우 재료의 가격이나 희귀성, 그리고 제작과정에서 요구되는 작업의 강도와 정밀성 때문에 작가의 층이 얇고 작품 활동의 물리적 규모나 작품의 주제 등에 있어서 어느 정도 제한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금속공예에서는 일반적인 금속을 대표하는 철과 같은 재료보다는 귀금속으로 분류되는 금이나 은, 동 등의 금속이 재료로 이용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렇기 때문에 금속공예는 최근까지 회화나 조각과 같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미술활동 영역과 구분지어 그 영역을 개척해 온 결과로 소재의 채택에 있어서도 다소 제한되었고, 활동에 있어서도 남성들보다는 여성들 중심으로 창작과 소통이 이루어져 왔다고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금속장신구는 인류가 금속을 발견한 이후 수 천 년 동안 밀접하게 인간의 생활에서 적용되어왔다. 근대사회에 들어서서 금속장신구가 우리 사회에서 선호되기 시작한 것은 다른 예술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과거의 군주들과 종교 지도자들, 귀족들, 신흥 부유 상인들로부터 시작되어 점차 중류 계층으로까지 확산되었다.

이렇게 금속장신구가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에는 그 사회의 경제적인 성장과 기술적인 발달이 수반되어야 활용이 가능했던 금속 공예 작품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귀금속 장신구의 대표적인 재료 가운데 하나인 백금과 같은 경우에는 그 용융점이 매우 높아서 수소용접 기술이 발달한 이후에나 금속공예의 재료로서 활발하게 사용될 수 있었다.

인류의 역사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교통의 발달이 미흡한 까닭에 먼 지역 사이의 교류가 빈번하지 못하여 지역의 독자적인 조형적 특징을 보였던 것이 교통과 통신의 발달에 따라 점차 지역간의 교류가 빈번해짐으로써 양식적인 혼합과 그를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조형미가 탄생하곤 하였다.

지역간의 교류에는 금속재료에 대한 거래와 교환도 중요한 항목을 차지하였는데 초창기의 금속의 가치는 지금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이었으며 특히 귀금속의 경우에는 더욱 더 그러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한때는 다른 물질로부터 금을 만들어내려는 연금술(alchemy)이 시도되기도 하였다.

금속을 몸에 지닌다는 것은 곧 그 소유자의 사회적 지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고, 그 소유자에게 주술적으로나 건강, 또는 미학적으로도 유익하고 도움이 되는 효과를 가져다준다고 여겨져 왔다.

서양에서 인간이 종교의 속박에서 자유로워지고 의사결정이나 자기표현에 있어서 스스로의 능력과 판단에 의존하게 되면서 인간의 신체는 당당하고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중세 기독교 사회의 긴 터널 저 너머로 그리스와 로마시대에도 인간의 신체에 대한 미적 가치를 존중하는 태도가 널리 퍼져 있었지만, 두 시기의 인체를 표현하는 방식에는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즉 그리스 로마 시대의 예술에서 표현된 인체가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면 르네상스시대 이후로 전개되는 인체의 아름다움은 전보다 더 다양하게 각종 의상과 장신구들의 도움을 받아 이전까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인체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적극적으로 드러낼 수 있도록 해주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금속공예를 중심으로 한 장신구는 착용자의 신체의 특성과 조화를 이루면서 인체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드러내는 역할을 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현대에 와서는 일부 지역에서 단순히 신체에 부착되는 것이 아니라 귓불이나 입술 등의 신체의 일부를 뚫어서 인체와 보다 더 밀접하게 부착함으로써 착용자의 고통을 이겨내는 용기를 상징한다거나 그 지역에서 공유되는 새로운 인체의 미를 표현하기도 하고 착용자가 자신의 신체를 이용하여 표현하는 사회적 메시지를 드러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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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인체와 장식>전은 10 명의 기성 작가들을 초대하는 초대전 형식의 전시와 젊은 작가들을 발굴한다는 의미로 기획된 공모전 형식의 전시로 구성되어 있다. 초대전에 출품한 작가들은 금속공예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중견 이상의 작가들로서 이들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현대공예의 현황과 그 맥락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이들 작가들 대부분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금속공예를 완벽한 예술적 경지로 올려놓기 위한 고도의 수공적 몰입을 통해 작품 속에 생명성과 환경, 전통과 해학 등의 주제를 표현하고 있으며, 재료에 대한 완숙한 해석을 작품에 적용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김영창은 금속을 중심으로 우리 전통공예의 모습을 세련되게 재현하고 있으며 이동춘과 Carlier Makigawa의 경우에도 금속을 통해 화려하거나 요란스럽지 않게 선과 형태의 미를 살려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김정지와 최재욱의 작품에서는 금속 재료를 선으로 환원하여 선들이 엮어내는 조형을 기본으로 부로치나 팔찌, 목걸이 등을 세련된 형태로 만들어내고 있다.

김정후와 신문영은 직접적으로 작품 속에 인체를 도입하고 있는데 김정후는 인체 표현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명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반면에 신문영은 구두의 뒷굽의 모양과 기능을 인체모양으로 대체함으로써 인간의 동작이 갖는 상징성을 의미 있게 표현하며 해학적인 맛까지 느낄 수 있게 해준다.

한규익과 박은주, Robert Ebendorf는 금속 이외에 가죽이나 비닐, 섬유, 진주 등의 재료들을 함께 사용하여 장신구와 가방 모자 등을 만들고 있는데, 이러한 재료의 다양화를 통한 표현 영역의 확장은 미술의 여러 장르간의 경계를 넘어서서 상호교류와 통섭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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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을 통해 선발된 작가들은 금속 그 자체의 물성을 강조하며 재료를 다루는 과정에서의 긴장감과 작품의 형성과정의 신비로움에 탐닉하는 작가들과 금속공예의 개념을 확장시켜 보다 폭 넓은 재료를 작품에 도입하는 작가들로 이분될 수 있는데, 첫 번째 그룹에 속하는 작가로는 김미경, 박성철, 오세린, 주소원, 이영주 등이 있다.

김미경의 경우에는 금과 은 등의 귀금속을 재료로 하여 전통기법인 입사기법으로 작품의 세부를 구성하고 있으며 소재 면에서는 집이라는 우리 생활의 기본적인 공간을 선택함으로써 안정감과 소속감을 추구하고 있다.

작가는 우리 공예의 전통기법인 입사기법을 차용하지만 작품의 형태나 표현에 있어서 현대적인 감각에 맞게 전통기법을 재해석하여 작품 속에서 새롭게 드러나는 전통의 아름다움을 잘 살려내고 있으며 예술성과 함께 실용적 응용 면에서도 성공적인 작업을 하고 있다.

박성철은 작은 사각의 구리나 은 금속판을 접고, 꺾고, 펴나가면서 그 과정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형되어가는 재료와 작가 사이의 교감을 형성하고, 더 나아가서 이러한 과정을 거쳐 가면서 공예 작가로서의 자세를 가다듬는 기회를 갖는다고 한다.

일정한 규격을 가진 금속판이 작가의 손노동에 의해 여러 가지 형태의 작품으로 탄생되는데 무엇보다도 재료로 쓰이는 금속의 물성이 직접적으로 드러날 수 있도록 물리적인 작업에 집중하는 작업태도의 진정성이 두드러진다.

오세린은 흥미로운 작업과정을 거쳐 작품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길거리 장신구 여러 개를 몰딩기법으로 재생하여 이것들을 조합함으로써 새로운 조형적 구성을 이루는 오리지널리티가 탄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값싼 거리장신구 제품의 제조성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창조적 의지가 작품 속에 부여되고 최종적으로 탄생된 작품에서는 값싼 재료의 거리장신구와 달리 은과 같은 귀금속에 재료로 사용됨으로써 오브제의 물성과 가치의 전환을 통한 작품의 새로운 차원을 구현해내고 있다.

주소원의 경우에는 은실을 이용하여 인간의 삶에 초점을 둔 작품을 제작한다. 탄생에서 사망까지 인간은 모두 성장과정의 일정한 패턴을 따른다.
탄생과 사망 사이에서 전개되는 삶의 양상은 개인의 환경과 경험의 차이에 의하여 다소간의 변화가 있을 수는 있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모두 거의 동일한 과정을 거쳐 나아간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태어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규범을 학습하며 혼인과 같은 각종의 통과의례를 지나면서 겪는 변화와 성장을 경험한다. 주소원은 다양한 재료를 통해 이러한 삶의 궤적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주소원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이러한 생의 주기에 순환적으로 다가오는 탄생과 성장, 그리고 소멸의 사회적 의미를 천착하고 급변하는 현대생활 속에 함몰된 우리들의 자존감과 숭고한 정신을 회복하며 내면의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싶어 한다.

작가의 작품 가운데 탄생을 상징하는 꽃의 수정과 개화, 만개와 낙화라는 생명주기 가운데 한 순간을 상징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꽃의 일생에 함축된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들어준다.

이영주는 은을 주재료로 입체적 풍경화를 그리는 듯한 작업을 한다. 작가 스스로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심리적, 정신적 작용을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재료의 한계에 머무르지 않고 마치 공간을 대상으로 입체적 산수화를 구사하는 듯한 21번의 작품은 금속의 세련미와 함께 전통미술에서 강조되는 조형감각이나 공간감각과 공유되는 접점을 형성하는 데에도 성공하고 있는 듯하다.

두 번째 그룹에 속하는 작가들 가운데 김연경의 경우에는 백수정과 금속의 결합에 의해 작가의 감성과 직관을 표현하고 있으며, 나아가 이렇게 탄생된 작품이 착용자와 교감하고 소통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번 작품에서 작가는 생명의 근원인 물의 흐름을 금속과 결합시켜 빛의 효과를 조형적으로 극대화시키고 있다. 김희주의 경우는 금속과 가죽, 종이 등을 결합하여 식물의 원시적인 강인함과 원초적 생명력을 표현하는데 주안점을 둠으로써 감상자가 자연의 생명력에 대해 새롭게 감각을 환기하도록 만들고 있다.

박상미의 경우에는 금속과 버려진 천을 재료로 작업하고 있는데 재료의 수집 지역에 따라 드러나는 조형적 가치와 그 안에 내포된 사회적 암시와 상징을 도시풍경이라는 연작으로 표현하고 있다. 박정혜의 경우는 금속과 섬유를 결합하여 장식성이 뛰어난 장신구를 제작하고 있는데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금속과 섬유재료의 물성과 색상을 다채롭게 구사하여 꽃, 줄기, 잎 등의 사실적 형태들과 잎맥, 넝쿨 등을 연상시키는 추상적 패턴을 혼합하여 생명력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손채이의 경우는 금속과 함께 현대 산업사회에서 발생하는 산업폐기물로서의 재활용 플라스틱 필름을 이용하여 생명성과 미적 요소를 생산해낸다는 긍정적인 가치를 창출하려는 의도를 표현하였다. 이를 통해 작가는 장신구 재료 분야의 확장을 유도하기도 한다.

원재선은 금속과 함께 광섬유나 실크 등의 재료를 이용하여 선적인 조형미를 강조하는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이러한 작품은 그 자체로서 공간에 표현된 하나의 선 드로잉처럼 드러나며 인체에 적용되었을 때에는 또 다른 장식성과 생명감을 나타내준다.

정유리는 금속과 고무줄을 결합하여 목걸이를 제작하고 있는데, 작가가 시중에서 흔히 구입할 수 있는 고무줄을 장신구의 주재료로 삼은 것은 재료가 갖는 가벼움, 생동감, 재료의 친숙함이 주는 안정감, 그리고 고무줄로 표현할 수 있는 의외의 효과 등을 표현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정호연 역시 고무나 종이 먹 등을 금속과 함께 사용하여 장신구를 만들어내고 있는데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통해 장식이라는 것이 무언가를 치장하는 도구가 아닌 자아의 내면세계를 내보일 수 있는 소통의 미디엄임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차영주는 금속재료와 함께 돌이나 대나무 등의 재료를 사용하여 개인적인 추억이 담긴 오브제를 작품화하고 있다. 작가의 체류지였던 뉴욕, 신혼 여행지였던 프랑스와 이탈리아, 그리고 여행지 몽블랑 등의 장소에서 떠오르는 수많은 기억의 편린(片鱗)들을 현지에서 채집한 오브제들을 통해 구체적인 형상으로 만들어낸 작품들이 출품되었다.

현지연은 은과 칠보의 결합을 통해 시간과 계절의 변화와 자연의 순환 등을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흐름과 자연의 순화의 체계를 반사에 의해 굴절된 이미지를 통해 표현한다. 반사체의 뒷면에 칠보로 표현된 색채와 형태는 금속의 반사면에 비춰져 확장된 공간의 환영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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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공예를 포함한 공예분야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에게는 아티스트 혹은 디자이너라는 명칭이 붙을 수 있다. 우리말로는 작가라는 공통적인 명칭을 적용할 수 있지만 외래어인 아티스트와 디자이너라는 두 용어가 주는 어감의 미묘한 차이는 그 작가가 작품을 제작하는 데 있어서 어떠한 부분에 중점을 두는가에 따라 조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금속공예는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고도의 집중과 노력이 수반되는 작업이며 작품의 예술적인 측면과 생활 속에서 실용적으로 활용되는 측면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하는 작업이다. 이 두 가지 측면은 어느 하나가 다른 한 분야보다 우선될 수 있는 성실의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되고 상호 촉진시켜주는 가운데 금속공예의 새로운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번 치우금속공예관의 기획전시는 우리나라의 금속공예 발전을 견인하는 중요한 전통의 시작으로 볼 수 있으며 여러 가지 여건이 불비한 가운데에도 지금까지 어렵게 행사를 이끌어 온 치우금속공예관의 관장님과 직원들의 노력은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젊은 작가들의 공모전을 통하여 새로운 공예작가들을 발굴, 육성하는 작업은 아직 시작단계이고 작가들의 층이 두텁지 못한 가운데 시행되고 있지만 한해한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이나마 발전의 역량을 축적하여 우리나라 금속공예의 진정한 산실이자 발전소로서 자리 잡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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