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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展

하계훈

현대미술 속 다양한 얼굴을 만나다
얼굴



사람의 얼굴은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사업상으로나 사교상으로나 어떠한 상대를 만날 경우 그 사람의 얼굴 모습에서 그가 살아온 과거와 현재, 성격, 나에 대한 호감도 등등 많은 것들을 읽을 수도 있다. 이러한 얼굴은 미술 분야에서 오래 전부터 시각적으로 표현되어 왔는데, 역사적으로 가장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집트 시대의 미이라를 안치한 무덤에서 석관의 안쪽에 넣은 목관의 머리 부분에 죽은 사람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가 그려지거나 나무 판넬에 그려져 미이라와 함께 묻혔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때 화가는 망자의 얼굴을 잘 알고 있는 생전의 지인일 가능성이 높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가 그린 망자의 얼굴에는 객관적 사실성과 함께 망자와의 이별을 슬퍼하는 정서가 담겨 있었을 수도 있다. 서양미술사에서 얼굴이 표현되는 초상화와 인물화는 이처럼 수천년 전부터 제작되어 왔으며 나중에 역사화나 종교화 등에서도 화면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게 된다. 중세 이후에는 인물화가 역사화와 종교화의 일부분으로서의 역할에서 벗어나서 단독 인물 초상화로 표현되는 빈도가 높아지며 부르조아 사회의 귀족들과 부호들의 존재감과 허영심을 충족해주는 도구로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유지해 오고 있다.

동양 미술에서도 인물의 초상은 주로 관념적 상징성을 강조하는 산수화와 달리 대부분의 경우 사실주의적 표현을 바탕으로 하여 그 대상의 표정 뿐 아니라 내면의 심리상태까지 담아내려는 노력을 경주해왔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고구려시대 안악 3호분과 덕흥리 고분 등에서 발견된 구구려 왕이나 신분 높은 귀족으로 추측되는 인물들의 초상화는 생동감 있고 실감나게 인물을 표현하여 그 인물의 표정 뿐 아니라 성품이나 사회적 지위, 당시의 나이 등 많은 것을 추측 가능하게 해주기도 한다. 이러한 인물이 표현되는 방식은 불교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되며 주인공 양 옆으로 배치된 인물의 구도가 부처와 양쪽의 보살을 연상케 해준다. 삼국시대의 불교 승려들의 초상화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중요 인물 초상화에서도 단순한 사실주의를 넘어서는 상징성과 은유를 내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초상화를 통하여 우리는 오늘날에도 그림 속의 중요 인물들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조선시대의 화가 윤두서의 자화상에 이르면 우리는 우리나라의 초상화 표현의 기법과 수준이 동시대의 어느 작품과 비교하여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얼굴은 정상인이라면 당연히 갖추게 되는 우리 신체부위의 일부분이다. 너무나 당연하게 얼굴은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정작 그것을 유지하는 데에는 책임감과 노력이 필요하기도 하다. 얼굴은 생물학적 신체 부위로서 뿐 아니라 우리들의 사회생활에서의 상징적인 의미로도 그 중요성을 내포한다. 우리는 흔히 어느 조직이나 분야를 대표하는 우수한 인물에게 ‘얼굴’이라는 칭호를 부여하기도 한다. 또 이와 반대로 자랑스럽지 못한 행위의 결과를 반성할 때 얼굴을 보여주기가 부끄럽다는 의미로 ‘면목(面目)’이 없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서양의 경우도 우리와 유사하게 얼굴의 의미를 사용한다. 우리가 유럽 여행에서 흔하게 마주치는 건물의 전면을 파사드(facade)라고 하는데 이 용어의 기원도 얼굴을 의미하는 face에서 유래한 것이다. 즉 파사드는 건물의 얼굴이며 그것을 통해 우리는 그 건물의 성격과 용도 등의 정체성을 파악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영어 표현에 있어서 직역을 하면 얼굴을 보여준다(show ones face)는 표현은 곧 얼굴의 주인인 그 사람이 등장한다는 뜻을 나타냄으로써 우리의 전신, 즉 존재를 대표하는 신체부위로서 얼굴을 강조하고 있다.

이번에 63 스카이 아트 미술관에서 열리는 얼굴전은 이런 의미에서 평범하면서도 동시에 흥미로운 주제를 선택하고 있는 셈이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 치고 누구 하나도 인물화를 그려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인물화와 그 속의 인물의 얼굴을 표현해오고 있지만 이번 전시는 그러한 작가들 가운데 동서양 미술에서 보편적으로 다루어진 인물화를 중심으로 오늘날 가장 두드러진 인물 표현으로 주목을 받는 국내외의 작가 7명의 작품 61점을 보여준다. 전시기획자는 이번 전시를 통해서 현대인의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인물을 표현하는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을 준비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일곱 명의 작가 가운데 두 명은 미국과 영국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작가로서 서양에서 인물과 그들의 표정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방법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출품한 다섯 명의 국내작가들도 자기 나름대로의 인물 표현에 있어서 독특한 특징을 확립하였다고 할 수 있는 평면과 영상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 안에 담긴 얼굴은 특징에 따라 5부로 구성된 전시장에 배분되는데 입구로부터 전개되는 첫 번째 부분에서는 ‘정지된 얼굴’로서 미국 팝아트의 대표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며 오랫동안 인물의 모습을 단순하고 평면화된 형태로 표현해 온 알렉스 캐츠(Alex Katz)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알렉스 캐츠는 뉴욕에서 미술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메트로폴리틴미술관에서 밀턴 애브리(Milton Avery)와 마티스 등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아 넓은 2차원의 색면을 정성스럽게 붓으로 칠해나가는 형식의 작품에 몰두하게 된다. 이러한 제작과정을 통해 알렉스 캐츠는 가족과 친구, 그리고 자신이 교류하던 미술계 인사들의 특징적인 모습을 대형 화면에 담아내는 작품을 거의 평생 동안 제작해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인물화 작품의 제목에는 구체적으로 그 인물의 이름이 언급되기도 한다. 알렉스 캐츠가 왕성한 활동을 개시하던 1950년대의 미국은 2차대전의 승전국이자 유럽 참전국들의 전쟁물자 공급 병참기지로서의 채권국으로서 풍요로운 소비사회가 전개되고 있던 시기였다. 이러한 환경에서 알렉스 캐츠는 텔레비전 광고나 거리의 대형 삼품 광고판 등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인물들의 이미지에서 자신의 작품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알렉스 캐츠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나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단순한 모습을 그리되 또한 그 작품 안에 누구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복잡성을 담고 싶다”는, 어찌 보면 역설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즉 그는 인물의 성격이나 미묘한 심리 상태를 단순화 시킨 평면의 화면에 담아내고 싶어 한 것으로서, 이 과정에서 실물을 회화적 언어로 번역할 때 겪게 되는 작가로서의 의지와 긴장감을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알렉스 캐츠는 1980년경부터 패션모델이나 시인, 소설가 등의 인물화를 자주 그리게 되는데 특히 스냅사진을 찍는 것처럼 모델들이 순간적으로 포착되는 모습을 화면에 담아내는 것을 즐겼다. 이처럼 알렉스캐츠의 인물들의 모습은 순간적으로 포착되어 정지된 얼굴을 보여주며 알렉스 캐츠는 이러한 작품을 통해 인물화를 주로 그리는 에릭 피슬(Eric Fischl), 데이빗 샐리(David Salle), 프란시스코 클레멘테(Francisco Clemente) 등의 후배 화가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두 번째로 ‘단순한 얼굴’ 부분에서는 최근 우리 미술계에도 잘 알려진 영국의 yBA세대의 대표 화가들 가운데 한 사람인 쥴리앙 오피(Julian Opie)의 작품들이 펼쳐져 있다. 오피는 작품을 제작할 때 우선 모델의 사진을 찍는다. 작가는 자신이 촬영한 모델의 사진을 바탕으로 하여 우선 컴퓨터로 이미지 처리 작업을 한다. 이렇게 컴퓨터 그래픽 작업을 통해 모델의 이미지는 생략과 단순화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요약되고 압축적으로 표현된 작품 이미지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제작된 그의 작품 속에서 인물들의 얼굴은 두 개의 점으로 표현한 눈, 콧구멍이나 입술의 윤곽만 최소한으로 표현한 기호 같은 코와 입 등을 통해 개성을 나타내게 되는데 놀랍게도 이렇게 단순화된 인물의 정체는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게 된다. 오피는 이처럼 현란한 묘사와 설명을 배제하면서도 자신이 묘사하고 있는 인물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해주며 그들의 개성적이며 현대적인 세련미를 최대한으로 드러나게 해준다.

오피는 이밖에도 다수의 사람들이 빠르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나타낸 시각 기호인 픽토그램처럼 표현된 간결하면서도 색과 선이 뚜렷한 인물화들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작품은 오피가 이제까지 수행해 온 단순화 작업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는 작업이다. 머리로 생각되는 동그란 원이 인물의 상체와 약간의 거리를 두고 허공에 떠있는 듯하게 표현된 이미지는 인간의 신체적 구조의 특징과 움직임에 있어서의 근육과 관절의 작용을 정확하게 표현해냄으로써 간결하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오피는 이러한 인물작품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인물을 표현한 동영상도 제작하였다. 그는 영국의 유명한 록그룹 U2의 공연무대에도 이러한 영상을 설치하기도 하였으며 이보다 앞서서 또 다른 음악그룹인 블러(Blur)의 음반 재킷을 이러한 방식으로 디자인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오피가 표현하는 얼굴들은 단순한, 그러나 그 특징을 잘 드러내주는 얼굴인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 오피의 동영상 작품이 포함되지 않아서 다소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세 번째인 ‘포근한 얼굴’ 부분에서는 이수동 작가의 회화와 드로잉을 모은 ‘우리 회사 회식자리’ ‘과장님’, 그리고 ‘어제 과음한 신입사원’ 등 우리 주변의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얼굴을 중심으로 하여 삽화처럼 표현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우리 주변의 인물들을 묘사하다 보니 인물의 얼굴은 실물보다 과장되어서 길쭉하거나 넓적하게 표현되고 눈매는 얇고 콧날은 납작한 모습들이 대부분인데, 이렇게 표현된 얼굴은 종교화나 정통 초상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엄숙성과는 정반대 지점에 자리 잡게 된다. 이수동 역시 자신의 주변 인물들로부터 작품의 모티브를 찾아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러한 인물들은 1900년대 초에 파리에서 활동했던 이탈리아 화가 아마데오 모딜리아니의 인물들을 떠올리게 해주기도 한다.

원래 이수동은 자작나무 숲 속의 작은 인물이나 석양의 수평선과 언덕이 넓게 펼쳐진 자연의 모습을 부드러운 파스텔 톤으로 아름답게 표현하여 시인들의 문집이나 소설의 삽화 등에 잘 어울리는 시적인 작품들을 주로 제작해왔다. 그의 작품에서는 종종 사물과 인물, 혹은 사물과 사물간의 비례가 과장됨으로써 환상적인 내러티브를 만들어내기도 하는데, 이번에 출품된 작품에서도 그의 작품들은 인물의 눈이나 코와 입의 모습이 삽화적으로 변형되어 인물의 사진같은 사실성보다는 특징을 강조하는 캐리커처에 가깝다고 여겨지고 있으며 아카데미적 데생에 엄격히 적용되는 균형과 비례, 이상화의 원칙으로부터 해방됨으로써 관람객들에게 쉽게 다가가서 포근하고 친근한 느낌을 선사하고 있다. 이러한 속성 때문에 그의 인물화에는 포근한 얼굴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네번째 ‘명쾌한 얼굴’에서는 윤기원의 인물 작품들이 소개된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미술대학을 졸업한 윤기원 작가는 인물을 위주로 작업을 한다. 윤기원은 특히 자기 주변 친구들의 자연스러운 일상의 순간을 마치 스냅사진으로 포착한 것같은 모습으로 표현한 ‘프렌즈’ 시리즈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윤기원의 대부분의 작품에는 그의 친구들의 이름이 작품제목으로 제시되고 있다. 작가가 자신의 지인들을 화면 속에서 멋지게 표현해내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현실과 다른 색채감각의 표현에 있다. 현실감을 벗어난 강렬한 색채의 대비와 명료한 윤곽선, 그리고 이러한 조형 요소를 조합하여 평면적으로 표현한 화면 속의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윤기원은 우리나라의 젊은 현대 팝 아티스트 가운데 선도적인 작가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다.

윤기원은 작업의 과정에서 모델이나 관객과의 소통을 중요시하고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작품 속의 인물들은 단순한 묘사 대상으로서 객체화된 인물이 아니라 작가의 지인이거나 의식과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는 정신적 교감을 전제로 한 관계망 속의 인물들이다. 대부분의 인물들은 관람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과 시선을 교환하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이것은 곧 작가가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모델이 되는 인물들과 눈빛을 교환하고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작품을 완성하였을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케 해준다. 이러한 컨셉으로 명쾌하게 제작된 윤기원의 인물의 특징이 경우에 따라서는 형식상으로 영국 작가 쥴리앙 오피와 공유되는 부분이 있어서 윤기원은 종종 한국의 줄리앙 오피라고 불리기도 한다. 실제로 윤기원과 줄리앙 오피의 작품 사이에는 유사점을 찾아볼 수도 있다. 하지만 오피가 기본적으로 생략과 단순화에 의해서 인물의 특징을 강조한다면 윤기원은 단순화하되 화려한 색상과 뚜렷한 윤곽선을 한층 더 강조하여 명쾌한 얼굴을 만들어낸다.

다섯 번째 ‘위장된 얼굴’ 부분에서는 똑같은 소녀의 얼굴 모습에 서로 다른 가발이나 가면과 같은 장식물을 첨부하여 자신을 위장하고 감추는 김민경의 ‘위장된 자아’ 시리즈가 출품되었다. 하나의 틀을 이용하여 복수로 인물의 얼굴을 찍어낸 듯한 작품은 반복성에 의해 시각적 충격과 주제 전달을 강화하는 효과를 주면서도 이와 함께 이러한 얼굴에 첨가되는 장식의 변화때문에 시선의 분산을 통해 정확한 자기 자신의 존재가 파악되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는 듯하기도 하다. 작가는 마치 일인다역의 연극에서 인물들의 변화를 조율하고 연출하는 감독처럼 자신의 작품 속 인물을 놓고 이리저리 치장을 하면서 다중적 자아를 만들어내려고 하는 듯하다. 이렇게 되면 인물의 자기정체성을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게 된다.

위장 혹은 변장은 오늘날의 사람들, 특히 그 중에서도 도시인들이 자신들의 주변 환경과의 부조리한 관계에서 야기되는 소외를 극복하는 자기방어적인 몸짓일 수도 있다. 김민경의 작품에 등장하는 위장된 자아에 대한 첫 인상은 밝고 경쾌하고 발랄하며 상큼하다. 재료면에 있어서도 매끄럽고 광택이 나는 도시적이고 세련된 재료와 안료를 사용함으로써 작품의 완성미를 더해준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 작품 속에 표현된 인물들은 핏기 없는 회백색의 얼굴에 눈동자도 표현되지 않아서 그들이 어디를 응시하며 무엇을 말하려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또 한 작품 속에 두 명 이상의 인물이 등장하는 경우에는 그들이 한 공간에 있으면서도 서로서로 모종의 교류가 이루어진다는 표정이나 인상을 제공하지 않는데, 이런 의미에서 김민경의 작품 속 인물은 함께 출품된 다른 네 작가의 작품 속 인물들보다 경쾌한 듯하게 표현되어 있으면서도 사실은 가장 모호하게 드러나는 위장된 얼굴인 것이다.

이제까지 살펴본 다섯 부분의 작품들은 다섯 작가들의 인물화에서 얼굴을 표현하는 개성적이고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모두 평면적 회화성을 기본으로 하고 각자의 표현 방식을 적용하고 있지만 이들 다섯 작가들의 작품에서는 공통적인 면이 발견되기도 하는데 그것은 얼굴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방법인 사실주의적 묘사를 각자의 방식으로 조금씩 비켜가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들 작품들은 보다 자유로우면서 현대적인 성격을 갖는 것이다. 미국의 인물과가 가운데 한 사람인 척 클로즈가 자신의 대형 인물화에 관해서 말하면서 “나는 사진이 담는 진실을 그림으로 전환하고 싶었다”고 말했던 것처럼, 이들 작가들은 사진처럼 그리는 것에서 한 발씩 벗어나 자신의 고유한 표현 방법으로 인물들의 얼굴을 표현하되 사진이 언제나 놓치지 않고 잡아내는 재현적 사실성과 거기에 더하여 사실적 재현을 넘어서는 대상을 향한 내면의 묘사, 그리고 작가와 대상 사이의 교감을 추구한 점에서 관람객과의 소통에 성공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특별 코너인 ‘즐거운 얼굴’에는 오창근과 조성현의 인터랙티브한 영상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던 다섯 작가의 작품들이 그 자체로서 완성된 상태에서 관람객들에게 제시되고 있다면 이들 두 작가들의 작품은 전시되는 시점에서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괌람객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 오창근의 영상 작품은 관람객의 모습을 옅은 채색 부조처럼 연출한 영상작품으로서 관람객의 참여에 의해 화면이 변화한다. 설치된 모니터 앞으로 관람객이 다가와 소리를 내면 모니터 속의 영상이 확대됐다가 사라지는 오창근의 작품은 물감과 캔버스가 아닌 디지털 환경 속에서 인물의 얼굴이 표현되고 변형되는 프로세스를 보여준다. 모니터 주변의 크고 작은 소리에 반응하여 연속적으로 미세하게 흔들리는 화면 속의 이미지를 통해 오창근의 작품에서는 살아있는 듯한 조각적 얼굴들이 수시로 교체되며 등장한다. 평면 작품 속의 인물들과 달리 관람객의 참여에 의해 변화하는 화면의 이미지는 묘사된 인물의 다양한 감정을 담아낼 수도 있다. 이러한 작품을 통해 오창근은 디지털 환경 속에서 등장하는 사람들의 살아있는 듯한 초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관람객들이 자기 자신의 얼굴을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듯이 대상화하여 자신과 또 다른 자신 사이의 소통을 경험하게 해준다.

조성현은 검은 색 허공과 같은 특정할 수 없는 화면 공간 속에 조그만 각면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3차원적 인물의 얼굴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관람객이 다가가면서 만들어내는 소리에 의해 그 얼굴이 반응하여 점차 세부적으로 파편화되어 결국 그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수많은 조각들의 덩어리로 변하게 된다. 이렇게 화면 속의 허공에서 둥둥 떠다니듯하게 표현된 이미지는 우리의 선험적 경험과 관념에서 여전히 사람의 얼굴이라고 인식된다. 작가는 이와 같은 인식체계의 오류를 관람객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것같다. 작가가 디지털 페이스(face)라고 이름붙인 이러한 작품을 통해 조성현은 피부조직으로 구성된 얼굴이 디지털 환경 속에서 픽셀의 조합으로 전환되고 그러한 이미지의 조작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바꿀 수 있는 오늘날의 얼굴에 대해 관람객들이 생각해보게 한다. 보다 정확하고 보다 과학적인 진실을 추구하기 위하여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는 실제의 얼굴보다 가상현실의 공간에서 드러나는 디지털 이미지로서의 얼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거기에 우리들의 생각의 틀을 맞춰가는 아이러니의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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