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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시 쿠리바야시 / 경계의 지점을 감지하는 뛰어난 공간 해석력

하계훈

경계의 지점을 감지하는 뛰어난 공간 해석력







비욘드뮤지엄 전시관에서 열린 타카시 쿠리바야시-Inbetween전은 전시명에 담긴 영어 단어의 의미 그대로 어떤 상황의 중간에 혹은 양 진영 사이의 경계에 끼어있는 상태에 주목하는 사진과 설치, 영상 등의 작품 20여점을 보여주는 전시다. 설치미술작가 타카시 쿠리바야시는 12년간 독일 유학을 통해서 이처럼 두 시간이나 공간, 혹은 두 진영의 경계 지점에서 발생하는 현상에 대하여 일관된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해왔다. 그의 유학 시절 작품 가운데에는 독일과 벨기에의 국경에 설치된 초소의 지붕면에 바다로 둘러싸인 일본 열도를 표현한 작품이 있다. 섬나라 출신인 작가로서 자신의 나라의 경계가 바다로 둘러싸인 것에 비하여 유럽 대륙에 국경을 사이로 마주하고 있는 두 나라의 상대편은 여전히 육지로 접해있고, 경계가 불분명하게 규정된 가운데 인위적으로 설정된 국경선과 이를 관장하는 국경 초소에 의해 경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의식의 차이를 표현하였다.

작가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항상 문제가 일어나는 곳이 바로 경계 지점'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경계라는 곳에서 항상 많은 문제가 일어나면서도 그곳에는 모종의 에너지와 위대한 힘이 숨어 있다고 본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처럼 타카시 쿠리바야시의 모국인 일본에서는 지난 3월 커다란 자연의 변화가 일어났다. 우리 언론에서도 여러 날 관심깊게 다루었던 강력한 지진과 그 여파로 발생한 쓰나미, 그리고 이러한 소동의 결과로 초래된 원자력 발전소의 붕괴와 방사능의 유출. 거의 실시간으로 스포츠 중계하듯 전해지는 방사능 피해 앞에서 무력해지는 사람들. 이 모든 것은 자연과 마주선 우리들 뿐 아니라 작가에게도 적지 않은 충격이며 공포이자 자기성찰과 반성의 기회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엄청난 충격과 시련을 겪은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서 타카시 쿠리바야시는 '나의 작품 인생은 3.11 대지진을 경계선으로, 그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번 전시도 대지진을 기점으로 작가의 이전과 이후 작품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고 볼 수 있다. 원래 타카시 쿠리바야시는 자연과 인간이 조우하는 경계의 지점 혹은 접점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작가는 이번에 선보이는 작업을 통해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 어느 한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경계에 선 중간자가 되어 인간과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작품을 통해 양쪽을 매개하고 소통하게 해주며 서로를 통해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해주는 예술가의 역할을 보여주고자 했다.

타카시 쿠리바야시가 이러한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방식은 어렵거나 복잡한 사고를 요구하지 않는다. 물론 직접적으로 주제를 표현하는 대신 은유적으로 암시하는 방식을 택했지만 작가는 관람객을 자신의 작품의 일부로서 참여시키며 공간의 구분 없이 관람자와 작품이 하나로 어울리게 만들어 작품을 완성시킨다.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전개되는 한 층 전체를 차지하는 거대한 숲을 구현해낸 대형 설치작품 Wald aus Wald(Forest from Forest)는 지난해 일본 모리미술관 기획전시에도 출품하여 큰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다. 비욘드뮤지엄이 이 작가를 초대하게 된 것도 여기서 미술관 관계자들의 눈길을 끈 데서 비롯되었다. 작가는 1층 전시장 전체 공간에 닥나무와 삼지닥나무 등을 이용해 하얀 나무들이 서 있는 하얀 숲을 만들어 내고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지표면 아랫부분과 지표면 위부분의 경계를 설정하였다. 거대한 종이가 대형 천막처럼 성인의 상반신 근처의 높이에 굴곡을 보이며 내려앉은 공간을 허리를 구부리고 이리저리 다니다 보면 관람객들은 마치 자신이 나무들의 뿌리가 자리 잡고 있는 땅속의 공간을 거닐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갖는다. 이렇게 지표면을 상징하는 종이 군데군데에 작가는 관람객의 머리 하나가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 놓고 있는데, 그곳에 서 있으면 관람객은 마치 땅 속에서 머리를 살짝 내밀고 거대하면서도 고요한 지상의 숲 속을 올려다보는 셈이 되는 것이다.

1층 전시장의 뒤편에는 물고기들을 담은 aquarium이라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관상용 물고기들이 담겨있는 수조는 밖에서 관람객이 이 물고기들을 바라볼 수도 있지만 수조 중앙 바닥으로부터 사람의 머리가 들어갈 수 있는 직각육면체의 투명유리 공간을 만들어 관람객이 수조의 밑에서부터 머리를 넣고 수조 안을 들여다보면 물고기들이 관람객을 구경하는 것인지 관람객이 물고기를 구경하는 것인지, 또는 물고기들을 가운데 놓고 양 쪽의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된다.

2층에 전시중인 `빙산(Iceberg)`은 대지진 이후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일본에서 가져온 물과 한국 물을 섞고 거기에 일본에서 가져온 풀을 넣어 얼려 빙산을 만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작품을 통해서 드러나지 않고 보충설명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양국 사이의 문화적, 외교적 상징성을 담고 있다. 그러나 빙산의 원료가 되는 물의 원산지에 관계없이 이 작품은 인간과 자연 환경과의 보편적 관계를 되돌아보게 만들어주는 작품으로서 우리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간과되기 쉬운 환경 파괴와 남용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게 해주는 작품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작가는 실제의 나무 모양을 본떠서 만든 얼음 나무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녹아내려 물로 변하는 과정에서의 순간들을 기록함으로써 비록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무의 형체는 사라지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 그것이 영원히 남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얼음 나무는 기억의 문제 뿐 아니라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서 익숙한 고정관념의 틀을 벗어던지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비록 작가의 손에 의해 얌전한 얼음 조각으로 전시장 한 구석을 차지하는 작품이지만 이러한 작품의 원료가 되는 물의 집합체가 두 나라의 어딘가에서 강으로부터 바다로 이어지면서 거대하게 몸집을 키워가면 이번 일본 대지진 사태에서 본 것처럼 대규모의 쓰나미를 구성하는 요소로까지 발전한다. 이렇게 생각을 해보면 인간은 대부분의 우리들이 착각하는 것처럼 댐을 건설하거나 방파제를 세웠다고 해서 자연을 정복하거나 개척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타카시 쿠리바야시의 관계에 대한 관심과 소통에 관한 일관된 욕구는 작가가 직접 일본식 포장마차인 야타이를 끌고 서울과 네팔, 싱가포르 등지를 돌아다니며 선보였던 야타이 트립 퍼포먼스를 담은 영상에서도 표현된다. 야타이는 그 형태 구조상 열려있는 상태에서는 주위의 외부 공간을 흡수하며 방이나 마당과 같은 공간으로 변화하는 반면 닫혀있을 때에는 하나의 입체작품처럼 보이는 양면성을 지니는데, 작가는 몇 해 전의 레지던시 활동과 Korea Yatai Trip이라는 퍼포먼스를 통해 이미 한국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 작가가 서울과 네팔의 히말라야 산맥에서 펼치는 야타이 트립 퍼포먼스를 통해 전달하는 메시지는 영토와 문화 그리고 이를 뛰어넘는 탈영토의 문제나 장소성과 공간성의 변화에 따른 관람객의 반응을 비교 관찰하는 것으로서 이번 전시에서는 영상 작품을 통해 이러한 퍼포먼스를 제시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예술 안에서의 삶’ 이라는 모토 아래 뮤지엄피플(museum.people)에서현대사회의 범사회적인 문제, 그리고 도시 변화의 주요한 원인으로 주목받고 있는 환경문제를 문화, 예술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 새로운 프로젝트다. 2011년 첫 사업으로 선보인 타카시 쿠리바야시의 작품전을 통해서 관람객들은 인간이 지키려고 하는 환경과 자연이 전개시키고자하는 환경 사이에서 존재하는 경계를 되짚어보며, 우리가 진정으로 환경을 지킨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인가를 객관적인 시각에서 조망해본 작가의 작품들과 마주하게 된다. 특히 2011년 봄의 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원자력발전소의 파괴와 방사선 유출을 경험한 작가가 자연 속에서의 환경 수호자로서의 자기정체성을 추구하고, 경계지역에서 발생하는 관계의 에너지, 경계 지점을 둘러싼 개방과 차단, 이러한 경험에 의한 의식의 성숙과 고정관념에 대한 환기 등을 새롭게 유도하는 이번 전시는 작가의 뛰어난 공간 해석력에 의해 우리나라 관람객들에게 신선한 경험의 기회를 제공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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