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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두 / 과거에 대한 향수와 미래에 대한 꿈

하계훈

정연두는 현실과 상상의 경계, 이상과 현실을 대비시키거나 이질적 문화 환경 속의 상황들을 접합하는 사진과 영상 작품을 많이 제작해왔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구상하고 제작하는 과정을 다큐멘터리처럼 기록하기도 하는데 그 과정에서 언제나 폭넓은 시야를 가지고 작품에 몰입한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도입되는 공간을 선택하는데 있어서나 작품에 등장하는 구체적 대상을 물색하는 데 있어서도 나이와 성별, 국적과 문화적 배경 등 모든 조건에 경계를 설정하지 않고 다양한 장소와 모델을 선정하여 작업을 해왔다.

작가의 이력을 간단하게 살펴보자면 정연두는 원래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했지만 영국 대학원 유학 시절부터 입체 작품을 만드는 것과 함께 사진 작업을 시작하여 서서히 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 중반 영국 유학시절 필자가 우연한 기회에 런던에 유학중인 한국 작가들을 초대해서 전시회를 개최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정연두도 출품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조금 오래 된 기억이라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그는 식빵위에 치즈를 두껍게 얹어 마이크로웨이브에 넣었다가 꺼내서 뜨겁고 흐물흐물해진 치즈를 주물러 사람의 얼굴 형상을 만들고 이것을 사진으로 찍었었다고 기억된다. 아직 대학원 학생 신분이었던 그 당시만 해도 정연두는 형식면에서 자신의 전공이었던 조소적 작업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이탈하지는 못하였던 것 같지만 자신의 작품을 전달하는 미디엄으로 사진을 선택하고 있었다.

작가로서의 출발에서부터 정연두가 관심을 가진 주제 가운데 하나는 문화의 고정적 개념을 자유롭고 경쾌하게 헝클어뜨리고 이질적 문화의 혼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우리들의 인식의 어긋나기를 의도적으로 부각시키는 것이었다. 우리의 김치처럼 서양의 대표 음식인 치즈에 한국인의 얼굴을 담아내거나, 귀국 후 성곡미술관에서 가진 <엘비스 궁중반점>(1999) 퍼포먼스에서 자장면 배달 퍼포먼스를 통해 작가가 유학했던 도시에서는 생소한,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지극히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배달문화를 통해 두 지역 사이의 생활 방식이나 배달이라는 노동 형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차이를 보여주었다.
그 후 정연두는 런던과 서울이라는 두 지역의 지하철에서 만나는 평범한 인물들을 가상의 공간에서 크고 작게 또는 남자와 여자, 동양인과 서양인으로 서로 대비되는 모습으로 콜라쥬 처리하여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유학생활을 하였던 작가의 문화적 체험의 혼성과 일상의 평범한 인물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작업의 모티브를 캐내는 작가의 촉수를 키우게 되었다. 정연두의 다음 작품은 지하철 7호선 차량이나 기존의 전시공간을 댄스홀로 탈바꿈시켜 보통 사람들의 춤이라는 일상적 행위나 유희를 특정 공간에서 일어나는 예술적 퍼포먼스로 연출하고 이분위기를 그대로 담아내는 퍼포먼스 사진이었는데 이렇게 제작된 사진 작품인 <보라매 댄스홀>로 관람객들의 주목을 받았다. 우리나라 서울의 봉천동이라는 곳에서 지극히 평범한 중년 남성과 여성들이 무대처럼 꾸며진 공간에서 지구 반대편에서 유래한 탱고 춤을 추는 상황은 현실이면서도 어딘가 현실같지 않은, 즉 두 공간과 시간 혹은 두 문화의 혼성과 교차를 보여주는 상황이지만 우리는 작가의 손을 거쳐 탄생한 작품을 통해서 비로소 그것들을 현실의 맥락에서 발췌하여 보다 선명하게 인식하고 반응하게 된다. 이처럼 정연두의 초기 작품들은 작가가 체험한 일상에서 발견한 모티브를 서로 대비시키고 시간과 장소를 교란시켜 때로는 인식의 충격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의 기억과 정서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기도 하면서 주제를 비교적 가볍고 유쾌하게 표현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정연두가 미술계의 주목을 받게 되는 결정적인 작품은 이러한 맥락에서 탄생한 <내사랑 지니>(2001)와 <원더랜드>(2004), 그리고 <상록아파트> 시리즈다. <내사랑 지니>는 1964년부터 1972년까지 미국 텔레비전에서 방영되었던 시츄에이션 코미디 드라마인 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작품으로서 요술쟁이 주인공 여배우가 코를 씰룩거리면 한 순간에 공간을 이동한다거나 물건들을 이동시킨다는 비현실적인 설정이지만 당시 시청자들 사이에 높은 인기를 누렸으며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수입 방영되기도 하였다.

정연두의 <내사랑 지니> 작품 속에서는 한 사람의 현재의 모습과 동일인의 장래 희망이 이루어진 모습을 거의 동일한 자세로 함께 보여준다. 예를 들어 서울의 한 주유소에서 일하며 F1 자동차 경주의 챔피언이 되기를 꿈꾸는 젊은 한국 청년, 북경의 한 단란주점에서 일하며 팝 스타가 되길 꿈꾸는 중국인 웨이터, 높은 산 정상에 올라서서 일상 속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길 원하는 한 일본 고등학생의 모습 등에서 그들의 초상은 단지 한 개인의 소망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각기 다른 나라의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사회적 상황을 반영한다고도 볼 수 있다.

<원더랜드> 역시 <내사랑 지니>의 연장선상에서 어린 아이들의 그림 속에 담긴 환상을 사진을 통해 현실로 구현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정연두는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4개월간 스스로 유치원 교사로 근무하며 아동들의 행동과 생각을 관찰하고 그들이 그린 작품 1200점을 수집하였다. <내사랑 지니>나 <원더랜드> 제작과정에서 작가는 이러한 꿈의 실현자로서 작업하는 동안 작업의 일관성을 보이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작품 속의 인물이나 작품에 아이디어를 제공해주는 밑그림의 주인공들과의 충분한 교감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꿈을 실현하는 방법으로서 공간과 인물의 모습을 연출하는데 있어서 컴퓨터 그래픽과 같은 손쉬운 방법을 사용하기 보다는 의상 하나하나, 배경의 소품 하나하나 까지 작가가 직접 만들거나 섭외하는 프로세스를 거친다는 점이다. 이렇게 해서 정연두의 꿈실현 프로젝트가 진행되었고, 두 연작은 사진 작품 속에서나마 작가가 꿈을 현실로 만들어준다는 환상을 통해 관람자들도 함께 자신을 작품 속에 투영하고 꿈꾸게 해주었다.

<상록아파트>(2001) 시리즈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대상에 접근한다. 작품 제작당시 한국 사회는 점차 개인주택에서 아파트라는 획일화된 집단적 공간으로 주거형태가 변화하고 있는 시기였다. 작가는 <상록아파트>라는 동일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32가구의 가족 구성원들을 그들의 거실에 배치시키고 일종의 가족사진과 같은 작품을 제작하여 그 사진들을 한데 모아놓음으로써 동일한 공간에서의 서로 다른 가구 배치와 서로 다른 인테리어 취향을 드러내며 사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함으로써 작가는 관람객들의 훔쳐보기 본능을 자극하고 그들이 부지불식간에 작가의 작품 속 공간과 자신의 주거 공간과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비교하며 작품 속에 빠져들게 만든다.
<내사랑 지니>와 <원더랜드>의 연장선상에서 2005년부터 정연두는 <로케이션> 연작을 제작한다. 로케이션 연작은 이름 그대로 국내외의 다양한 장소에서 작품 촬영이 이루어졌다. 제주도와 설악산, 국도변의 휴게소에서부터 미국 뉴욕의 롱아일랜드 해변까지 이르는 장소에서 작가는 실존하는 풍경에 인공적인 장치와 조명을 더하여 한 공간 안에 실제와 허구가 공존하게 만든다. 앞선 작품에서 그랬던 것처럼 현실이 아닌 공간과 상황을 제작해내는 과정에서 작가는 현실의 이미지와 가상의 이미지가 교차하여 만들어내는 초현실주의적인 상황에 주목한다. 현실과 비현실 상황이 동시에 한 작품 안에 존재하는 모호한 심상의 풍경을 나타내는 사진 속에서 관람객은 자유롭게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서 과거에 대한 향수와 미래에 대한 꿈을 동시에 떠올리기도 한다.

이러한 작업을 이어오는 과정에서 정연두는 2008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다.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선정기념 전시에서 정연두는 <보라매 댄스홀>, <로케이션>, 그리고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어>를 선보였다. 이 가운데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어>는 설치 작업으로서 공간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관객은 거실처럼 보이는 방에 입장하게 되는데 이곳에는 소파가 있고 벽에는 PDP TV가 걸려있다. 관객들은 소파에 앉아 TV에 상영되는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이어서 이 방을 나서면 넓은 전시장이 펼쳐진다. 그곳에는 영화 촬영 장비와 소품들이 놓여있다. 정연두는 바로 이곳에서 카메라, 조명, 소품, 장비 등을 이용해 TV에 나오는 여섯 가지의 영상을 중간에 끊김 없이 70분 동안 촬영한 것이다.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어>는 이처럼 TV에 나오는 영상과 전시장에 나열된 장비와 소품, 즉 설치로 구성된 작품이다.

이제까지 살펴본 것처럼 정연두는 사진에서 설치와 영상으로 진행되는 작품 제작과정에서 현실과 상상의 경계, 이상과 현실의 대비를 통해 발생하는 인식의 충격과 기억이나 매래의 희망 등을 작품 속에 담아왔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가능한 한 모든 것을 작가 스스로 찾고, 체험하고, 만들고, 사진 찍는 작업을 성실하게 수행해왔다. 오늘날의 디지털 환경에서 좀 더 편리한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었겠지만 정연두는 자신의 이야기의 요소요소 마다 작가의 호흡과 손길을 개입시켜 관람객과의 소통에 있어서 친근감과 밀도를 더해주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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