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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시대의 국립중앙박물관

하계훈

우리가 이제까지 잘 알지 못했던 어떤 나라의 면모를 파악할 때 처음으로 찾아보는 것은 그 나라의 위치, 크기, 인구, 경제규모, 자연환경 등등일 것이다. 그리고 나면 그 다음으로 그 나라의 역사가 소개된다.
한 나라의 역사는 주로 문자로 기록되거나 유물 자료로 보존되어 후손들에게 전달되고 활용되는데 이러한 자료들은 대부분 도서관과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렇게 보존된 자료들은 도서관과 박물관 내, 외부의 전문 연구가들에 의해 사실 확인 및 다층적인 해석과 가설이 제기되고, 이에 대한 활발한 의견들이 교환되면서 대중적 관심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의 결과들은 출판과 전시 등의 방법으로 대중들에게 전달된다. 이처럼 도서관이나 박물관이 제대로 설립, 운영되고 다수의 사람들이 자료를 둘러싼 해석과 소통에 참여하여 관심을 기울이는 나라가 건강하고 창의적이며 미래의 희망을 보여줄 수 있는 나라인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존하고 기록하는 대표적인 공공 기구 가운데 하나로서 우리나라의 제 모습을 알기 위해서 필요한 필수 정보를 유물을 통해서 제공하는 역사적, 학문적 지식과 정보의 원천지 역할을 담당하여 오고 있다. 요즘처럼 사회의 변화가 빠른 시대에 자칫하면 그 존재가치가 제대로 인식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국립중앙박물관의 역사적, 사회적, 학문적 가치는 어느 시대에도 변함없이 우리의 의식과 사고의 바탕을 마련해주는데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박물관은 원래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산업자본과 식민주의가 전성기에 이르렀을 때 지배자의 우월성과 피지배자에 대한 호기심을 보여주는 지식과 정보의 집결지로서 설립되어 국가 간의 자존심 경쟁 상황을 거치면서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박물관의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1789년 프랑스 시민혁명의 결과로 탄생된 루브르박물관을 근대적 공공박물관 탄생의 중요한 모멘텀으로 꼽고 있지만 모든 박물관들이 이처럼 극적인 정치적 변화의 과정에서 탄생한 것은 아니었다. 루브르박물관과 비슷한 시기에 개관한 그 밖의 대부분의 국제적 규모의 박물관들은 당시의 국왕이나 사회 지배층의 재력과 교양을 과시하던 유물들이 공공화되는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모습을 갖게 된 것들이다. 따라서 초창기의 이러한 박물관에서는 오늘날과 같은 운영방식을 채택하지 않고 관람객보다는 소장자의 입장과 시각을 반영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실제로 우리가 알고 있는 유럽의 대규모 박물관들 가운데 상당수는 초기에 관람객들을 교묘한 방식으로 차별하여 입장시키거나 지배층의 관점을 주입시키는 방식으로 유물을 제시하여 그 사회의 이념적 기준을 제시하고 문화적 권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국가를 대표하는 박물관들이 이와 같은 초기의 운영방식을 버리고 오늘날과 같이 관람객을 지향하는 형태의 운영방식을 채택하게 된 것은 민주주의적 시민사회의 발달과 중산층의 확대, 그리고 대중들의 지식과 정보에 대한 욕구와 호기심의 발달 등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대부분의 박물관들은 초기의 설립자 중심에서 관람자 중심으로 운영방식을 전환하고 있으며 확대된 관람객들의 눈높이에 맞는 대중성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초기에 박물관이 갖고 있던 지식과 정보를 통한 국민계몽의 선도적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여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소장품에 대한 전문적인 해석을 통해 고도의 지식과 정보를 생산해내는데 중점을 두고 박물관을 운영할 것인가, 아니면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춰 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여가생활의 활력소를 제공하는 재미있는 박물관 정도로 운영할 것인가 하는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서 박물관들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박물관들은 이 양자의 절충을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이론적으로는 이 두 가지 운영방식을 하나로 통합하여 박물관을 운영할 수 있다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엘리트주의와 대중주의가 양립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각 나라마다 그 나라를 대표하는 박물관들을 가지고 있는데 일부 국가는 이러한 박물관을 국가가 직접 경영하는 경우도 있고, 또 다른 경우에는 그 운영을 민간에 맡기고 큰 틀에서의 정책방향 정도만 국가가 개입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두 가지 형태의 운영방식에 대해서는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보다 절대적으로 낫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그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적 환경과 역사적 맥락에서의 박물관의 진화과정 등을 고려하여 적절한 운영방식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각 나라마다 그 나라를 대표하는 박물관이 설립된 과정과 그 바탕을 이루는 이념 등은 다를 수 있지만 어느 박물관에서나 바람직한 박물관 운영을 위해서는 큐레이터들을 중심으로 하는 소장품 연구를 통해 전문성을 심화시키는 노력이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한다. 박물관의 기능 가운데 제일 우선으로 꼽는 것이 전시활동이라고 하고 실제로 관람객과 박물관이 만나게 되는 접점이 전시를 통해 형성되긴 하지만 좋은 전시는 훌륭한 연구 활동 없이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뿐 아니라 최근의 박물관들은 관람객과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의 운영에 역점을 두고 있는데 큐레이터의 전문적인 연구의 중요성은 거기서부터 파생되는 박물관 교육 프로그램들과도 연관된다.
박물관의 운영방식이 어떠하든 간에 중요한 것은 그 기관이 큐레이터를 중심으로 한 전문적 연구자들의 유물해석 활동에 대한 자율성을 보장해주고 연구활동을 심화시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 큐레이터들의 전문성을 높이며, 이러한 활동이 자칫 외부로부터의 불필요한 개입이나 간섭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게 하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 많은 박물관들이 세계 경제의 침체 속에 재정적인 압박을 받게 되자 전문 연구자들의 연구 활동이 단기적으로 가시적 성과를 도출하지 못한다는 판단 아래 그 역할의 중요성을 생각하지 않고 재정확보를 위한 활동에 우선순위를 두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박물관을 위한 바람직한 정책으로 볼 수 없다. 물론 박물관 큐레이터들을 중심으로 하는 전문 연구 활동이 보장되는 대신 다른 한 편에서는 그들의 전문 연구의 성과와 질, 전문성을 활용하는데 있어서의 도덕성 등도 엄격하게 평가되는 장치도 함께 필요하다.
일반적인 조직론의 관점에서 볼 때 거대화된 조직은 변화의 속도가 느리고 관료주의화 될 가능성이 높다. 국립중앙박물관도 작고 날렵한 모습의 기관이라고 할 수는 없다. 게다가 국립중앙박물관이 정부의 소관 행정부서로부터 지나친 간섭과 규제를 받는 경우 박물관의 특성이 무시되고 정부 기구의 일반적인 운영방식이 강요될 위험성이 있다. 박물관이 정부의 일반 행정 절차와 기준을 따라 운영되고 운영 성과에 대한 정량적 평가를 중심으로 기관운영의 방향성이 설정된다면 그것은 전문적 연구를 바탕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기관으로서의 박물관의 성격을 져버리는 위험성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최근 들어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한 많은 박물관들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초고속으로 지식정보의 유통이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에서 과연 더 이상 박물관이 19세기나 20세기시절처럼 사회를 정신적으로 이끌어가는 역할을 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러한 기능을 위해 투입되는 인력과 예산의 사회적 효용이 증명될 수 있는가하는 문제 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에 대한 답은 박물관이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역할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따라서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사회가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화 사회로 이어지고 있지만 스스로가 여전히 우리사회의 정신과 문화를 선도하는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으며 변화된 사회에서도 여전히 국민적 관심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음을 증명하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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