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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준 / 희망을 잊은 이들을 위한 희망

하계훈

미술의 다양한 분야 가운데 물리적으로 가장 노동집약적인 분야가 조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원인은 일차적으로 조각활동에 소요되는 재료의 물성 때문일 것이다. 돌이나 나무 그리고 산업사회에 들어서서 철과 유리 등의 재료를 이용하여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조각가의 작업은 작가의 창작 의욕과 결과물의 미학적 완성도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일반 육체노동자들의 중노동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힘든 노동에 대한 기피현상은 현대사회의 일반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근래의 조각 작품에서는 이전에 자주 사용되던 무거운 재료, 특히 돌과 같은 재료가 기피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재료를 이용하여 고대부터 근대까지 제작되어 온 조각 작품들의 대부분은 그 재료의 무게만큼이나 종교적, 신화적으로 의미심장하고 위압적인 주제를 내포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근대 이후에 추상 조각이라는 형식이 도입되어 표현의 다양성을 이끌어낸 점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동서양의 고금을 통해 조각 작품의 대부분은 종교적, 사회적으로 모범을 보여주는 주체를 표현하여 관람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숭배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하거나 그 작품들을 통해 계몽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형식의 소통을 위주로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노준의 작품은 이러한 조각의 보편적 전개 맥락 안에서 그 자리를 찾기 어려운 성격을 갖는다. 우선 그의 작품은 크기에 있어서 대부분의 작품이 등신대 이하의 규모를 가지며 재료에 있어서도 전통적으로 자주 선택되던 재료라 할 수 없는 알루미늄이나 플라스틱 등을 빈번하게 사용한다. 작품에 표현하는 앙증맞은 상상속의 동물의 모습도 전통적인 조각의 규범에서 요구하는 신체비례와는 거리가 멀게 만화나 캐릭터 상품에서 볼 수 있는 비례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다가 작품에 가해지는 채색에 있어서도 현실적 재현과는 거리가 먼 화려하고 현란한 색채로서 자동차용 도료로 사용되는 색채를 사용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서 작가는 전통적 조각작품이 야기하는 관람자와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고 상호 소통의 창작방식을 지향함으로써 조각사의 거대한 흐름을 거슬러 가는 창작활동의 궤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작품을 통해 작가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종교나 정치를 초월하는 인간성의 근본에 바탕을 두고 있다. ‘희망을 잊은 이들을 위한 희망’이라는 이번 전시의 제목처럼 작가는 자신이 창조해 낸 캐릭터 동물들을 통해 일상에 지치고 위축된 현대인들의 일탈과 해방, 휴식과 구원을 도모하는 상상의 장을 전개하여 인간과 인간 또는 인간과 동물 사이의 사회적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새롭게 제시해보려 한다.

노준이 만들어내는 캐릭터 동물들은 작가의 생활환경과 의식을 반영하는 것들이다. 작가는 실제로 강아지와 고양이 등의 애완동물들과 자신의 생활 주변에서 함께 지내며 그들의 습성과 행동을 관찰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관찰 결과를 바탕으로 지금의 작품들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들은 나무나 금속으로 만들어진 오브제로서의 작품이면서도 상징적으로는 생명을 가지고 작가의 주변에 공존하며 대화하고 교감하는 살아있는 동물과 같은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행동 특성과 표정에는 작가가 상상하고 희망하는 우리의 삶이 작품 속에 은유적으로 함축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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