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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SKY

하계훈

63스카이아트 미술관에서 개최하는 제1회 <63 SKY ART NEW ARTIST PROJECT 展>은 2010년부터 시작한 미술관의 유망작가 지원 프로그램에서 2010년과 2011년에 매년 2명씩 선발된 4명의 작가가 미술관의 지원을 받아 제작한 작품들 가운데 회화 49점, 영상 3점을 합하여 총 52점의 작품을 선보이는 기회다. 이번에 출품하는 4명의 작가들은 63빌딩 60층에 자리 잡아 작품 감상과 함께 도시를 조망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63스카이아트 미술관의 특징을 살려 선택한 주제로서 도시 공간과 그 안에서 펼쳐지는 풍경과 삶의 모습들을 표현한 작품을 제작해 온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도시는 근대 공업화, 산업화의 산물이며 좀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가보면 중세 말기부터 시작된 탈봉건화(脫封建化)의 산물이었다. 원래 중세 영국에서의 도시(city)란 인구가 밀집된 지역 가운데 대규모 성당을 갖추고 국왕의 칙령에 의해 일정 지위를 인정받은 곳을 의미하였다. 즉 자연적 생성과 진화, 그리고 자연스런 재생의 순환을 거쳐 온 농촌에 비하여 도시라는 공간은 인위적이며 정치,경제적인 결정에 의해 그 정체성이 부여된 공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세 말 봉건사회가 붕괴하는 시점에서 유럽인들의 생활 방식에는 커다란 변화가 발생한다. 태어날 때부터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극소수의 상류층 사람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농촌이나 어촌에서 태어나 들판과 바다에서 일하고 휴식하고, 결혼하고 출산하며 늙어가는 것을 숙명으로 알고 살아갔다. 그런데 점차 경제활동의 중심이 이동하면서 그들의 생활공간을 떠나 도시로 이주하는 인구가 증가하여 오늘날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도시 공간이 점차 확대되어온 것이다. 이러한 도시는 농어촌의 자연에 비하여 인위적인 탄생과 성장, 그리고 자연적 노후화뿐 아니라 전쟁이나 커다란 자연 재해를 계기로 또다시 도시계획과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인위적인 소멸과 재탄생의 주기를 반복하여 온 경우가 적지 않다.
산업화하는 도시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인구과밀과 이에 따른 주택, 교통, 위생, 치안 등의 문제가 1960년대 말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1960년대 말부터 압축성장의 동력으로서의 공업화를 거치면서 도시의 급속한 팽창과 농촌사회의 상대적인 해체가 빠르게 나타났다. 농촌의 노동력이 도시의 공장 근로 노동력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개인적으로는 자신과 아무런 연고가 없는 공간으로의 이주에 따른 낯선 공간에서의 생활에 적응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발생하였고, 이러한 개인의 경험들이 집단적으로는 군중 속의 소외와 낯선 곳에서의 익명성에 기댄 돌발 행동들로 나타나 사회적 병리현상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발전이라는 최면에 걸린 도시의 공간은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속도로 변화와 확장을 겪으며 성장통을 앓게 되었었다.
이번 전시의 주제인 <공간 그리고 풍경>은 출품작가 4명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관심사로서 각각의 작가마다 자신의 고유한 조형언어로 도시공간을 바라보는 시각을 풀어놓은 것이다. 이번에 출품한 네 명의 작가들은 도시에서 태어났거나 예술적 성장기의 상당부분을 도시에서 지내오면서 거기서 벌어지는 현상을 목격하고 자신의 주변 공간을 관찰하고 해석하면서 작품에 그 결과를 반영해 온 작가들이다.

정직성은 원래 우리 사회의 급속한 도시화의 여파로 생겨난 인구과밀 현상이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대표적인 현상에 주목한다. 작가는 도시의 급속한 팽창으로 나타나는 현상 가운데 하나로서 서민적 주거지역의 연립주택이 화면 가득히 들어선 풍경을 과감한 붓터치와 색채를 통해 기하학적인 형태로 표현한 작품으로 미술계의 관심을 끌며 작품 발표를 시작하였다. 학창시절 사진 동아리 활동을 통해 우리 생활공간으로서의 도시 곳곳을 직접 답사하면서 도시의 생태를 연구한 작가의 눈에 비친 오늘날 도시 공간의 모습은 자연의 생명 논리로 설명될 수 없는 부자연스러움을 안겨준다. 정직성의 초기작에서 화면 가득히 회색 또는 붉은 벽돌색의 선들이 거친 붓질로 채워진 풍경은 곧 이러한 도시의 게토(ghetto)화와 난개발에 대한 분석과 비판의 결과이며 이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에 대해 작가가 제시하는 조형적 증언이라고 할 수 있다.
정직성이 이러한 집단주택을 화면에 담아내는 방법은 마치 각각의 주택이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한자리에 모여 있는 것처럼 서로를 연결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화면 속의 연립주택들은 마치 축구경기장 응원석에 모여 앉은 응원단 모양으로 나란히, 그리고 층층이 화면을 가득 채운 채 측면에서 쏟아지는 햇빛을 받으며 모두 한곳을 향해 응원단의 함성처럼 과밀의 통증을 외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정작 정직성의 작품 속에는 도시가 갖는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인구의 밀집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을 화면에 배치하는 형식을 취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화면으로부터 의도적으로 배제하여 역설적이게도 화면에서 사람들이 철저하게 제외됨으로써 초현실주의적 낯설음을 느끼게 해준다.
2008년 독일 베를린의 단기 스튜디오 프로그램에 다녀온 뒤 정직성은 이전과 다르게 재현성이 강조되고 화면에 사람의 모습이 등장하는 초기 작품들과 베를린에서의 기억을 담은 작품을 가지고 2009년 Space Da에서 전시를 가진 적이 있다. 이러한 작품에서 작가는 이전보다 재현적인 색채와 형태를 적극적으로 화면에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곧 다시 정직성의 작품은 부산의 도시 풍경을 포착하는 과정에서 이전과 같은 밀집과 혼합이 강조된 관념적인 화면으로 복귀한다.
최근에 들어 정직성의 작품에는 도시 공간의 건축적 구조 대신 교량이나 부두, 혹은 건설 현장의 장비와 기계장치들, 그리고 복잡하게 연결된 기계의 부품들을 연상시켜주는 이미지들이 등장한다. 이러한 변화는 소재 면에서 분명한 변화로 비춰질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작가가 처음부터 일관되게 천착해 온 우리의 일상의 모습으로서의 도시의 모습을 또 다른 시각으로 관조하는 것일 수도 있다.
미래파 화가들이 주장했던 것처럼 도시는 움직임이고 속도라고 할 수 있다. 산업화의 초기에 급격한 인구 유입에 대처하지 못한 우리나라의 도시에서는 게토화된 주거의 난맥상과 함께 우리 생활공간에서 그림자처럼 일상적으로 찾아오는 개발의 소음과 기계들의 아우성이 지금까지도 들린다. 지금도 우리는 귀를 기울이면 이웃의 어느 장소에서 도로공사나 건축공사를 위해 기계를 가동하는 소음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부산이라는 항구도시가 가진 도시의 모습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이러한 기계의 이미지들을 발견하여 도시의 또 다른 속성이자 도시 공간에서 펼쳐지는 우리 삶의 또 다른 상징으로서의 기계를 제시하고 있다.
항만 하역작업에 동원되는 초대형 크레인과 그 기계의 작동에 동원되는 각종 부속들의 집적처럼 표현된 화면에는 이전의 작품들에서 보이는 연립주택에서보다 이미지의 밀도가 다소 완화된 인상을 준다. 커다란 평붓으로 과감하게 그은 색선들이 교차하고 중첩되면서 드러나는 운동감과 공간감을 보여주는 작가의 화면은 이전보다 과감하게 화면을 지배하면서 점차 추상화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정직성은 이전보다 과감하게 붓을 놀리고 있으며 색채의 사용에서도 과감한 보색성 색채의 충돌에 의해 화면에 생동감과 운동성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하고 있는 듯하다. 작품의 제작 완성일로 추측되는 숫자를 제목으로 삼은 이번 출품작품들은 이렇게 작가가 도시의 밀집된 주택의 생태계에서 시작하여 또 다른 밀집과 연결의 유기체적인 메카니즘을 보여주는 기계장치들의 조합을 담은 화면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한조영은 생활공간의 변화로 인해 우연히 체험한 개인적인 경험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도시의 야경을 파노라마적으로 묘사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고교시절까지 지방의 소도시에서 생활하였던 작가에게 서울과 같은 국제적 메트로폴리스는 한편으로는 가능성이자 활력이고 속도였겠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한 순간에 느끼는 낯설음과 배척성이 비인간적 입김을 뿜어내는 두려운 공간일 수 있다. 특히 그러한 도시의 야경에서 작가는 개성의 함몰과 자기정체성의 혼돈을 가져오는 일종의 자폐적 공포를 경험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환각적 체험을 바탕으로 해서 한조영은 그때부터 자신이 그 속에서 머물러 생활하고 있는 공간으로서의 도시의 모습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때부터 작가는 자신이 생활하던 도시라는 공간을 대상화하여 먼 곳에서 바라보는 관조적 시각을 선택함으로써 도시 공간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생태 작용을 관찰한다.
한조영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마치 비행기 조종사가 착륙을 앞두고 접근하는 도시의 모습을 바라보거나, 혹은 관람자가 도시 인근의 높은 장소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는듯한 파노라마적 시각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그 도시들의 모습은 대부분 깊은 밤 혹은 지평선 위의 하늘이 부옇게 밝아오는 새벽처럼 묘사된다. 멀리서 바라본 도시는 어둠 속에 점점이 밝혀진 불빛에 의하여 그 좌표를 알려주며 보는 이의 시선을 빨아들이듯 잡아당기면서 빌딩과 도로의 불빛이 만들어내는 선과 윤곽에 의해 그 모습과 규모를 드러낸다.
이번에 출품한 한조영의 작품은 크게 4가지 주제-Memory of Space, Off the Map, Recycling City, Grid of Space-로 분류될 수 있다. 첫 번째 주제 의 작품들은 작가가 삶의 현실적인 모습에 구체적으로 다가가는 작품들이 제시된다. 작품들은 작가의 대도시 생활의 초기에 겪었던 삶에 대한 불안과 고통으로 외롭고 쓸쓸하게 생활하던 시절의 정신 상태를 반영한다. 서울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한강과 남산 등이 어둠 속에 뚜렷하게 그 자태를 드러내는 화면에서 우리는 작가의 이러한 개인적인 삶의 궤적을 엿볼 수 있다.
두 번째 주제 에서는 암흑 속에서 펼쳐지는 상상 속의 도시가 한낮의 모습을 감추어버리고 세포같이 세분화된 단위 공간으로부터 뿜어 나오는 인공조명에 의해 드러나는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들의 눈앞에 나타난다. 한낮의 도시의 모습과 달리 어둠과 밝음의 이분법적인 조형요소에 의해서 가려질 것이 가려지고 드러날 것이 드러난 도시의 야경 속에는 새로운 질서와 생명이 등장한다. 작가는 이러한 생명성의 표현을 위해 작은 불빛 하나하나를 스티커 조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그렇게 표현된 숨어있는 도시는 자신의 온전한 전체 모습을 은폐한 채 보는 이들의 상상력과 기억에 공간을 경험할 것을 요구한다. 한조영이 그리기를 통해 화면을 구성하지 않고 형광 스티커 조각을 붙이는 형식으로 작업하는 데에는 작가로서 오랫동안 수행해 온 그리기에 대한 일탈과 확장된 표현의 가능성에 대한 모색의 의지가 담겨 있다.
세 번째 주제 에서 작가는 도시의 모습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 그 속에서 생활하는 구성원들의 모습을 포착한다. 거대 도시라는 공간에서 쓸모를 다해 버려진 폐품을 수집하는 초라하고 단편적인 삶을 사는 이들이 꿈꾸는 풍요로운 삶을 상징적으로 구현하는 방법으로 작가는 폐품의 형상을 한 거대하고 화려한 도시의 모습을 야경으로 재현하여 그들이 꿈꾸는 삶의 공간으로서 도시의 희망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마지막 주인 는 작가가 이제까지 제작해 온 도시의 야경의 연장선에서 기하학적인 조형 실험을 수행하는 단계의 작품으로서 작가는 아직 완성된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상태에서 앞으로 작가가 새롭게 추구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한다.

권인경은 도시라는 대상을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 파악한다. 그리고 그러한 도시가 만들어내는 모습으로서의 풍경은 ‘인간의 삶이 총체적으로 표현된 모자이크’라고 본다. 그리하여 작가와 도시 공간이 상호관계를 유지하는 태도에 따라서 도시는 그 현재의 모습뿐 아니라 과거의 역사를 드러내기도 하고 미래의 모습을 예측하게 해주기도 하며 생성과 변화와 소멸을 인식하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양자간의 교류와 소통에 의해 작가에게는 새로운 경험이 축적되고 이에 따라 도시 공간에 대한 또 다른 구조가 생성되며 새로운 형상을 감각으로 포착해 냄으로써 기존의 형식에서 벗어난 지각의 장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권인경은 도시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라난 작가로서 도시 공간에 대한 친숙함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도시의 확장과 전개에 반비례하여 소멸되는 자연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표시한다. 작가는 현재 우리가 사는 도시 공간을 이전까지의 아름다운 조화로 빚어진 자연과의 상호관계와 균형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이러한 안타까움은 권인경의 작품 속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녹지와 녹색식물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러나 작가는 이러한 도시 공안에서 벌어지는 외부적 상황의 변화를 수용하여 작가의 내부에서 새롭게 구성되는 풍경으로 담아내기 위해서는 우리의 도시 공간에서 발생하는 변화의 속도와 리듬을 수용하고 이에 적절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믿는다. 도시공간으로 대표되는 외부 세계의 새로운 형상을 감각으로 포착해 내고 이를 외부 세계의 변화와 동조시켜 그 곳에서 하나의 질서를 발견하도록 하는 것이 곧 도시라는 공간을 관조하는 권인경의 창작의 과정인 것이다.
권인경의 작품은 크게 몇 가지 종류로 분류되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도시의 건물이나 공간을 일정한 거리에서 마주보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는데 충실하려고 하는 작품이다. 이러한 작품에서 작가는 끈기 있게 디테일에 몰두하며 대상의 외관 뿐 아니라 그 내부적 모습들 속에 투영된 속성을 전달하려고 애쓴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우리들은 우리의 집과 동네 같이 자신이 속한 장소를 통해 그 안에 녹아들어 있는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찾아보는 것이다.
권인경은 오늘날의 도시의 모습이 상업주의적 요소에 의해 시각적으로 완전히 변형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은 작품 속에서 눈에 거슬릴 정도로 현란하게 등장하는 다양한 간판과 교통 표시판 등으로 표현되는데, 이렇게 도시의 모습을 형성하는 요소로서 등장하는 상징물들은 도시의 특징이며 그것을 통해 도시의 경관은 전략적 외관을 형성하고 자연의 변화와 전개가 예측 불가능한 것처럼 도시 역시 변화하는 곳이며 그 속의 삶도 불확실 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권인경의 작품 가운데 일부 작품들은 밑에서 올려보거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극적인 시점을 취하기도 하고, 입체적 이미지와 평면적 이미지가 한 공간 안에 나란히 존재함으로써 과학적 원근법으로 설명되지 못하는 변형과 왜곡을 담고 있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 화면을 휘감거나 가로지르는 쪽빛의 띠는 도시의 젖줄인 강물을 상징하면서도 그것은 어느새 가게 현관 앞이나 거실에까지 침투하여 우리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 도시 공간인지 자연의 한 모퉁이인지 분간할 수 없게 동시다발적 시공간의 층위를 만들어준다.
이러한 도시 공간이 표현 수단으로서 수묵으로 시작하여 점차 채색의 농도가 높아지고 화면에 고서를 콜라주 형식으로 붙여감으로써 권인경은 자신의 작품이 단순한 대상의 재현이 아니라 주관적 시각의 표현이며 단순히 현재의 공간에서 머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역사적 시간성을 읽어나가는 과정으로까지 확장되기를 희망한다.

이상원은 도시의 공간 그 자체보다는 그곳에서 벌어지는 사람들의 움직임에 주목한다. 2006년부터 작가는 작품의 소재를 찾기 위해 우리의 일상에서 여가와 휴식을 위해 모여드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다녔다. 한여름 무더위를 피하여 모여든 수영장 주위의 인파나 바닷가의 해수욕 인파, 겨울 스포츠를 대표하는 스키장에 운집한 스키어들, 그리고 공원에 산책 나온 사람들이나 서울 근교의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그가 관찰해온 중요한 대상들이다. 작가는 이렇게 모여든 인파 속에서 도시의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적인 삶의 고달픔을 해소해주는 휴식과 여가를 발견한다고 말한다. 도시에 집중되는 생산시설과 여가시설, 그리고 그 시설에서 노동하고 휴식하려고 몰려드는 사람들의 생활태도와 공간에 대한 반응이 이상원의 작품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는 것이다.
산업화에 따른 도시로의 인구집중은 노동자 인구의 확대와 이에 따르는 다양한 사회문제를 야기했으며 노동의 피로와 긴장을 해소시켜줄 여가 공간의 필요성을 낳게 되었다. 출신지가 서로 다른 많은 수의 사람들이 모여든 도시는 하나의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단일한 성격을 벗어나 수없이 다양한 사정과 사연이 얽혀 돌아가는 용광로와 같다. 최근 들어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 노동시장에 대량으로 유입되면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띤다. 이러한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들은 서로 부대끼며 거대한 도시의 삶을 엮어내서 마치 도시 자체가 살아있는 거대한 유기체처럼 움직이고 창조하며, 소비하고 소멸한다. 이러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는 속도와 생산을 그 주요 속성으로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속도와 생산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충전의 동력이 필요하기도 하다.
이상원은 이러한 충전의 동력이 발원하는 도시와 근교의 휴식처를 찾는 사람들로부터 작품의 영감을 얻는다. 이상원의 작품 속 인물들은 얼굴 표정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그 사람은 바로 작가 자신일 수도 있고 관람자 가운데 누구라도 화면 속의 인물과 동일시 될 수 있다. 그리고 화면에 표현된 사람들은 상호 단절된 고립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삼삼오오 어울려 대화하고, 갈등하고, 협동하면서 전체 화면을 구성한다. 작품 화면을 들여다보면 그 속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속삭임과 왁자지껄한 소란스러움, 동료를 부르는 외침과 위험에 처한 사람의 비명, 아이의 칭얼거림과 천진난만한 웃음소리 등이 들리는 듯하다. 우리가 이상원의 작품에서 친근함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의 작품 속에서 우리 삶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인간과 인간 간의 관계와 소통이 마치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파노라마적 광경을 펼쳐 보여주며 그들의 사소한 일상의 모습을 따뜻하게 관찰하고 묘사하는 작가의 손길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상원은 이러한 평면회화에서 동영상으로 표현의 영역을 확장시켰다. 2008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아트센터에서 시작한 조깅하는 사람들을 묘사한 드로잉은 초당 18 프레임의 서로 다른 인물들이 묘사되는데 마치 한 사람이 조깅하는 모습으로 보이는 흥미로운 동영상으로 제작되었다. 최근에 들어서서 작가는 인수봉이나 태종대와 같이 잘 알려진 장소에서의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과 중첩시켜 드로잉에서 동영상으로 전환되는 흥미로운 영상물을 제작하고 있는데 이러한 작품들 역시 작가의 첫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군중들에 대한 관찰과 묘사를 바탕으로 표현 형식을 확대해나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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