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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성훈 / 시대의 의식과 태도를 반영하는 공간에 대한 탐색

하계훈

공성훈은 미술대학과 공과대학 대학원, 그리고 다시 미술대학 대학원을 다니면서 감수성과 논리성에 입각한 다양한 조형훈련과 실험을 거치고 나서 자신의 독자적인 개성을 확립하며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조형실험을 위해 회화뿐 아니라 영상, 설치 등 다양한 장르와 매체를 섭렵하며 우리의 삶과 의식에 대한 관조와 풍자, 은유적 표현을 다양하게 구사하는 작품상의 변신을 거듭해왔다. 이번 전시는 얼마 전에 작가가 한 달 정도 제주도에 머물며 바다와 계곡 등 주변에 펼쳐지는 대자연의 풍경을 직접 접하고 그 감흥을 ‘바다’라는 주제로 풀어낸 회화 작품 20여 점을 보여주는 기회다.
전시장에 펼쳐진 공성훈의 작품은 한눈에 관람자들을 압도하는 무언가가 있다. 짙은 청색과 청회색, 그리고 흰색 아크릴 물감만 있으면 이번에 출품된 작품 거의 모두를 그려낼 수 있을 것같이 생각될 정도로 단색조의 어두운 화면이 지배하는 공성훈의 풍경 작품들은 서양미술사에 등장하는 19세기 초 독일의 낭만주의 작가 카스퍼 다비드 프리드리히나 스페인의 고야 혹은 16세기 말에서 17세기에 걸쳐 스페인에서 활동했던 엘 그레코의 작품을 연상시켜준다는 평을 듣는다. 대자연의 숭고함이나 극적인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순간의 포착, 이러한 공간에 스며들어 있는 까닭을 알 수 없는 우울과 멜랑콜리를 자극하는 분위기 등으로 볼 때 공성훈의 작품이 이러한 낭만주의 작가들의 작품에 맥이 닿는 것은 사실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공성훈의 작품에서는 작가가 제시하는 공간이 이들 작품들에서 보다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으면서도 왠지 낯설고 기이하며 사실적이면서도 현실에서 한 걸음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교묘한 양면성과 반전이 감지된다.
이번 전시에서 공성훈은 바다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자연현상에 주목하는데, 수평선이 그어진 공간을 묘사한 작품들에서는 화면의 하단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화면의 상단을 환상적으로 구분하는 듯한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낚시>나 <돌던지기> 그리고 <불꽃놀이>나 <구름과 머리카락> 같은 작품에서 보는 것처럼 바닷가에서 조약돌을 던지는 아이들이나 폭죽을 허공으로 쏘아 올리는 사람들, 그리고 방파제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의 모습과 그들이 자리잡은 곳은 지금 작가와 동행하여 그곳을 찾아가면 제주도의 어느 바닷가 거기에 그대로 있음직한 현실의 공간으로 느껴지는 반면에 그러한 장소의 상단부를 차지하는 하늘의 모습은 지극히 비사실적이고 컴퓨터 그래픽에 의해 처리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극적 감흥이 과장되어 있는 표현이 두드러져 보인다. 이처럼 공성훈의 작품 안에는 현실과 환상의 요소가 교차하며 공존하는 상황이 연출됨으로써 작가가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이 복합적이고 상호보완적으로 투영되어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공성훈의 다른 작품들은 화면의 주변부를 전경으로 설정하고 육중한 사물이나 구조물을 배치함으로써 마치 연극 무대의 프로세니엄 아치(proscenium arch)와 같은 역할을 하게 만들어서 관람자의 시선이 무대 중앙에 해당하는 화면의 중앙부로 집중되게 만드는 작품들이다. 이번 출품작들 가운데 <담배피우는 남자(태종대)>나 <담배피우는 남자(폭포)>, <형제바위>, <촛불>, <동굴>, <돌쌓기> 등이 이런 구도를 가진 작품들인데 이러한 작품들은 마치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자가 연극무대를 응시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일어나게 만들어준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연극무대같은 장면을 응시하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서사적 내러티브가 공성훈의 작품에서는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서사적 무대를 꾸며 놓고 정작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찾아볼 수 없는 그림은 자칫 무대막을 구성하는 가벼운 풍경에 그칠 수 있다. 그런데 공성훈은 이러한 평범할 수 있는 장면 안에 등을 보이고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는 인물이나 작은 촛불, 또는 먼 하늘 한복판을 가로지르고 지나간 비행기의 꽁무니에서 뿜어져나온 연기를 삽입함으로써 성공적으로 이러한 장면의 상투성을 떨쳐버리고 있다.
공성훈은 작품 제목을 구체적인 장소의 이름이나 구체적 행위를 특정함으로써 자신의 작품들이 갖는 환상적 분위기를 통제해준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것 자체가 우리 삶의 일상적인 부분인 것처럼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톤해 거창한 명제를 제시하지 않으면서도 관람객들로부터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어느 일간지 기자와의 대화에서 작가가 말한적이 있다고 전해지듯이 ‘어떤 계시라도 떨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작가의 심리적 환영이 가시적으로 표현된 작품 <낚시>에 표현된 바닷가처럼 공성훈의 작품에 표현된 공간은 현실과 환상, 그리고 이 두 영역을 수없이 넘나들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작가의 손에 의해 창조된 우리들 모두의 상상력과 의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공성훈은 우리시대의 의식과 태도를 반영하는 공간을 상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탐색하고 그려내는 작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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