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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전시 서문

하계훈

1887년 겨울 파리의 한 물감 가게 문을 들어서는 화가의 옆구리에는 물감 값 대신 맡겨놓을 자신의 그림이 들려있었다. 퀭한 눈에 마른 얼굴이지만 유난히 고집스러워 보이는 이 사람의 이름은 빈센트 반 고흐, 그 가게의 주인은 일명 탕기 아저씨라고 불린 맘씨 좋은 주인장이었다. 청년시절 책방 점원과 화랑 보조원, 견습 목사 등을 두루 거치면서 뒤늦게 화가의 길로 들어선 반 고흐는 열정적으로 작품을 제작하였지만 그렇게 제작한 작품이 제대로 팔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내부에서 뿜어 나오는 열정을 분출하기 위해서 반 고흐는 계속해서 물감과 붓, 캔버스가 필요했다.



반 고흐의 시대에는 창작을 위한 재료로서 물감과 붓, 그리고 캔버스가 필요했다. 1950년대 우리나라의 화가 이중섭도 이런 재료들이 필요했으나 그것을 구할 돈이 없었기에 담뱃갑 속에 든 은박지에 드로잉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시대의 화가들은 이제 더 이상 재료의 부족으로 창작활동을 중단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창작을 위한 재료들은 더욱 더 개량되고 다양화되었으며 그것들은 이제 작가들의 손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있지 않다. 특히 전자 기기들이 발달한 오늘날에는 작가들의 창작 활동이 아날로그적 평면 공간을 넘어서 디지털 영역의 가상공간으로 확대되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서고 창작 재료의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게 됨으로써 오늘날의 작가들은 창조적 영감의 뒷받침만 있다면 조형감각과 상상력을 무한대로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이번에 갤러리 페이지에서 열리는 는 이러한 디지털 환경 속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갤럭시 노트에 담긴 그래픽 툴을 이용하여 우리 삶의 희망을 그려내는 6명의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다. 우리 삶의 주요 화두인 사랑, 꿈, 미(美), 부(富), 인연, 그리고 건강을 주제로 펼치는 여섯 명의 작가들의 작품은 갤럭시 노트의 그래픽에서 생성된 이미지를 캔버스, 도자기, 종이, 비단, 스테인리스 스틸 등에 출력하여 타블로 형식이나 입체적으로 제시되기도 하고 모니터 속 디지털 이미지 상태로 보이기도 함으로써 아날로그와 디지털 공간의 인터페이스를 이루게 된다.
하트 모양의 얼굴을 한 인물을 다양하게 응용하여 재치있는 작품을 제작해온 강영민은 7개국어로 “당신은 정말 아름답군요”라는 말을 인물의 모습을 표현한다. 찰스 장은 갤러시 노트의 그래픽 툴이 갖는 선명한 색상을 활용하여 그래피티나 코믹의 이미지를 만든다. 작가는 이러한 과감하고 풍부한 이미지들을 유리창 위에 투명하게 부착하여 전시장 안과 밖에서 동시에 이것을 감상할 수 있게 해준다. 아트놈은 작가의 손맛을 살린 자유롭고 나이브한 드로잉을 통해 개성있는 이미지를 만들어냄으로써 건강한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엄정호는 사랑을 주제로 삼는다. 작가는 소소한 일상의 오브제를 그래픽으로 표현하여 이러한 이미지들을 도자기에 전사하는 형식의 작품을 출품한다. 이상민은 갤럭시 노트에서 만들어낸 이미지를 스테인리스 스틸에 출력하여 이것을 3차원의 전시 공간에서 나선형을 중심으로 한 입체적 표현으로 연결함으로써 인연이라는 주제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윤세열은 꿈과 상상 속에서 도출한 이미지를 비단 조각에 출력하여 작은 조각들이 모여 전체를 이루는 하나의 작품 형식을 통해 꿈의 세계를 가시적으로 표현하려고 한다.
이러한 6명의 작가들의 작품들은 이제까지 작가들이 아날로그 환경에서 종이나 캔버스 등에 작업해 온 조형적 표현을 붓과 펜 대신 갤럭시 노트의 그래픽 툴을 이용하여 디지털 공간 안에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다시 현실의 공간으로 끌어내는 실험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 아트의 한계 가운데 하나는 원본성의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이미 판화 형식처럼 당당하게 미술의 한 분야로 자리매김한 상태에서 이제는 디지털 아트의 단점을 넘어서는 장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나 재료의 물리적 제한성을 초월하는 디지털 아트의 가능성은 무한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디지털 환경에서 성장한 미래의 관람객들에게 디지털 아트가 미칠 영향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일지도 모른다.
디지털 아트에서 구현하는 시공의 관통과 표현의 확대는 일찍이 1900년대 초 미래파 화가들이 상상한 공간과도 연결되며, 세계 미술사 속의 피카소나 뒤샹과 같은 거장들의 공간인식이나 조형개념과도 부분적으로 접점을 이룰 수 있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포스트모던 미술 비평가 핼 포스터가 미술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스스로의 순환주기를 발전적으로 반복한다고 말한 것처럼 오늘날 디지털 시대의 작가들은 과거 미술사의 거장들이 상상한 세계를 가시화해주며 다시 다음 세대의 작가들에게 또 다른 상상력의 바탕을 제공해주는 것인 셈이다. 이번 전시에 출품하는 6명의 작가들의 작품을 살펴보면서 필자는 피카소나 뒤샹과 같은 미술사 속의 작가들이 오늘날 갤러시 노트와 같은 표현 도구를 만난다면 어떤 상상력을 발휘할 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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