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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대학원 / 4개의 시선이 관찰한 공간의 기록

하계훈

미술대학과 대학원에서 조형훈련을 마친 젊은이들은 이제 미술계라는 정글에 던져지게 된다. 흔히 정글은 곳곳에 위험요소들이 잠복하고 있고 잠시 틈을 보이는 사이에 생명을 잃거나 위해를 당할 위협적 존재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공간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새로운 각도에서 정글을 바라보자. 우리가 익숙한 삶의 공간으로 채택하고 있는 도시와 비교할 때 얼마나 신선하고 다채로운가? 정글은 우리에게 위험과 함께 미지의 세계가 갖는 매력을 드러내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사회로 나오는 학생들에게도 미술계에는 위협요소와 함께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이번에 전시를 갖는 네 명의 신인 작가들은 이제 이러한 정글의 문턱에서 지금까지의 자신들의 작업을 점검하고 작가로서의 호흡을 가다듬어보는 전시를 갖는다.
화가들은 우리의 오감 가운데 주로 시각을 이용하여 자신의 공간을 관찰하고 그것을 기록한다. 그러나 이러한 감각의 활동은 위험한 경계상황으로 전개될수록 청각과 촉각, 그리고 경험과 관념의 협력 등을 필요로 한다. 대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있어서 어떤 작가는 건강한 눈으로 과학적인 원근법에 의해 대상을 본다. 그리고 어떤 작가는 과학적 시각의 기억을 가지고 꿈과 무의식의 세계에서 경험하는 공간을 바라본다. 그리고 또 다른 작가는 이 두 세계의 경계에서 이곳과 저곳을 드나들며 복합된 감각적, 정신적 체험을 수행한다. 20세기에 들어서서 우리의 감각으로 인식하는 공간이 잠재의식과 무의식의 공간으로까지 확대되면서 작가들이 체험하고 기록하는 공간도 그만큼 다양해지고 표현 방식도 다채로워졌지만, 여전히 작가들이 마주한 화면에 담아내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들이 이러한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본 것들의 기록이다.
김민영은 우리 생활공간 가운데 밀집된 공간에 주목한다. 시장이나 달동네 언덕에 빼곡하게 들어선 가게와 집들,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흔적을 파노라마처럼 읽어가다 보면 관람자들은 자신들의 눈이 화면의 구석구석을 훑어가는 보물찾기 게임에 참가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김민영이 바라보는 공간은 이처럼 생활의 공간으로서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다시 한 번 눈길을 주게 되는 공간이다. 김민영의 눈이 머무르는 곳은 수많은 사람들로 넘쳐나다가 어느 순간부터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시장의 공간과 집집마다 휴식과 관계의 신경망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가 모두들 제각각 일터로 떠나버린 사람들을 기다리며 언덕위에서 한낮의 햇볕바라기를 하고 있는 공간이다.
김자혜가 바라보는 공간은 다분히 초현실적이고 복합적이다. 현실에서 한 공간에 공존하기 어려운 개체들이 정밀하게 접합된 공간은 바다와 하늘이 나란히 펼쳐지기도 하고 현실에서 보던 공간과 상상 속의 미지의 공간이 경계면을 맞대고 화면 속에 나란히 제시되기도 한다. 김자혜가 바라보는 공간이 이러한 것처럼 공간의 구성요소를 포착하는 조형 감각 역시 복합적이다. 원근법과 사물의 음영이 제대로 표현된 공간이 있는가 하면 평면화된 화면에 기호처럼 이미지가 제시되기도 한다. 이러한 화면을 통해 작가는 현대사회의 작동 원리가 다중적이고 복합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다.
최명숙은 작은 단위의 유사한 이미지가 개체의 반복을 통해 확산되는 화면을 구사한다. 작고 동그란 색점 모양의 이미지들이 마치 포도송이처럼 군집된 화면 속의 커다란 개체는 숲이나 사계절 가운데 특정 시점의 느낌을 연상하는 이미지를 형성하기도 하고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무는 의식의 가시적 전개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이미지를 형성하기도 한다. 최명숙이 구사하는 개별 이미지는 각각의 작은 개체로서는 크게 의미를 담고 있는 요소로 볼 수 없지만 그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이미지와 공간의 표정, 그리고 군집에 의해 형성되는 커다란 개체의 성격이 강렬하게 다가오는 점에서 현대사회의 특징과 유사한 면을 보여준다.
최정인은 우리 동시대의 삶의 공간을 추상화된 기호로 파악한다. 동일 계열의 색상으로 화면에 산개한 기호들은 숫자와 문자의 파편이 공간에 부유하면서 이동하는 순간을 정지화면으로 포착한 것처럼 드러나는데 화면의 한 부분에 상품의 바코드처럼 수직으로 반복되는 선과 복잡하게 얽힌 문자와 숫자들은 혼돈과 질서의 대조,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대조적 상황을 연상하게 해준다. 작가는 이 밖에도 우리가 생활하는 현재의 상황을 대조적 요소의 병치에서 오는 효과를 통해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출품작 가운데 <끊임없는..> 역시 다른 작품에서의 콘트라스트가 좀 더 확대된 형식으로 제시되는 작품으로 읽을 수 있다.
이처럼 새롭게 미술계에 진입하는 4명의 신진 작가들이 각자가 갖고 있는 시선과 관념의 필터링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우리의 일상과 의식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포착한 무리 없는 이미지로 제시된다. 작가가 자신의 메시지를 관람객에게 전달하는 데에는 개성적인 시각과 함께 숙련된 전달기법이 요구된다. 그래서 미술대학에서의 조형적 수련이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필자는 이번 전시를 통해 이러한 수련을 마치고 새롭게 탄생하는 새내기 작가 김민영, 김자혜, 최명숙, 최정인의 작가로서의 성장을 기원하며 이들의 앞길에 전개되는 상황이 이들의 눈에 어떠한 요소로서 포착되고 해석되는가를 꾸준히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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