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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

하계훈

조각은 원래 공공적인 성격을 띠는 표현매체 가운데 하나로서 근대 이전까지는 종교시설이나 도시의 광장과 같은 인구밀집 지역에서 대중들의 계몽이나 선동, 교화 등에 이바지하는 역할을 주로 담당해왔었다. 따라서 대중적 메시지의 전달이 용이하도록 자연주의적인 형식을 주로 채택해왔으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주의적 형식을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감정적 표현을 강조하는 정도로까지의 왜곡과 확장이 이루어져 왔다.


이러한 조각의 본래의 역할에 이의를 제기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들어서서 피카소나 브랑쿠지 등의 작가들이었다. 자연주의에 대한 저항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각과 사고를 제시한 이들 작가들로부터 조각의 표현 영역이 확장되었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 이후 재료의 확산과 표현 기법의 다양화를 바탕으로 표현 형식의 확산과 함께 주제면에서도 작가의 사적 경험과 사고를 반영한 작업들이 적지 않게 등장하면서 조각은 더 이상 공적 표현수단으로만 머무르지 않게 되었다.


이주형의 작품은 작가 자신의 창작환경 속에서 느끼는 심리상태, 작가의 가족과의 관계망 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적, 정서적 상황 등을 담아내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정서와 심리상태를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조형원칙에 입각하여 딱딱한 원리로서 제시하시보다는 재료를 다루는 원숙한 기술을 바탕으로 하면서 유머와 위트로 심각한 상황을 비껴가는 방식으로 해학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주형의 초기작들은 작가의 창조적 노동이 집중된 결과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이주형은 미술대학과 대학원 과정에서 흙이나 철, 돌 등 다양한 전통적 조각의 재료를 가지고 탄탄하게 조형훈련을 쌓은, 보기 드문 작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러한 사실은 작가가 대한민국미술대전이나 MBC구상조각대전 등을 통해 굵직굵직한 상을 여러 번 수상한 경력으로도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주형이 학창시절과 초기 작가활동 기간에 관심을 집중했던 작품들은 구상성과 표현력을 위주로 조형적 실험을 굳히는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재료의 실험과 표현력에 관한 모색의 기간을 지나온 작가가 최근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작품의 형식실험이나 재료에 대한 탐구를 넘어서서 형식보다는 내용에 초점을 맞추어서 사유와 관조를 바탕으로 한 주제의 측면을 관람객들과 부담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나누고싶어 한다는 점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서 작가가 보여주는 작품들은 이전의 작품들의 사실적 재현과 이질적인 재료의 물리적, 화학적 합성의 단계를 넘어서서 단일한 재료를 압축하고 두드리고 다듬어서 만들어내는 축약과 추상화의 과정을 담고 있다. 작품의 크기 면에서도 이전보다 작게 제작된 작품들이 대부분인데 크기에 반비례하여 작품의 밀도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형식면에서의 밀도와 단순화된 표현과 함께 주제면에서 작가는 미학적 거대담론이나 역사, 사회적 문제 등에서 이야기를 도출하기보다는 작가의 생활주변에서의 경험과 사유로부터 작품의 주제와 모티브를 도출해내고 있다.


조각 작업은 제작과정의 특성상 미술의 다른 어느 분야보다 직접적으로 재료와의 접촉이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따라서 작품의 제작과정은 작가의 사유와 함께 재료와의 교감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리스 신화의 피그말리온 이야기처럼 조각가는 생명이 없는 단순한 무기물 재료로부터 형태를 창조하고 거기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작가에게 재료나 그 재료로부터 태어나는 작품은 단순한 물성을 지닌 생명 없는 대상이 아닌 것이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까지 미국에서 활동한 철학자 겸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자아와 타자를 구분짓는 것은 사물이나 사고에 대한 주체의 감정적 태도라고 말한 적이 있다. 조각가로서 이주형이 자신이 다루는 재료에 대한 태도는 작가라는 주체와 재료라는 객체로서 이분화된 관계 아래서 일정한 정서적 거리감을 두고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작업의 한 순간 한 순간마다 작가의 손길로부터 재료에 주입되는 에너지를 느끼고 그로부터 되살아나오는 작품의 숨결을 손끝과 온몸으로 감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의 과정을 통해 작가는 정서적으로 작품과 하나로 융합되고 창작의 결과물로서의 자신의 작품을 대상이나 타자로서 인식하기보다 자아와 동일한 존재로 받아들이게 된다. 따라서 관람자가 작품에 대해 표현하는 정서적 반응이나 감정이 작가에게는 곧 자신에 대한 반응과 감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이주형은 이제까지 자신이 탐구해 온 조각의 물성과 조형성을 바탕으로 평범한 일상의 주제를 가지고 관람객들과 보다 편하고 자유롭게 소통하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이러한 소통은 작가의 숙련된 재능과 숙성된 사유, 그리고 이 두 가지 요소를 작품으로 표현해내는 데 있어서의 균형이 어느 정도 갖추어지는가에 따라 그 효과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주형이 이번 전시를 작품의 형식이나 주제 면에서 한 층 더 깊이를 더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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