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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덕 / 생명과 사랑이 충만한 메시지

하계훈

강신덕의 작품의 중심에는 생명과 사랑이 있다. 작가는 화강석과 스테인리스 스틸, 그리고 테라코타 등을 이용하여 입체 작품을 제작하거나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평면 작품을 제작하기도 하고 영상을 프로젝션하는 설치 작업을 시도하기도 한다. 이처럼 작가가 관심을 두는 매체와 재료의 스펙트럼이 폭넓게 전개되기 때문에 이들 작품들을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와 개념의 포착이 어려울 듯하지만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강신덕이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온 것은 생명과 사랑 그리고 이러한 주제가 구현되는 형태와 선, 빛이 상호작용하여 만들어지는 온화함과 따뜻함이다.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여 강신덕이 탐구하는 세계는 인간을 둘러싼 총체적 대우주(macrocosm)라고 할 수 있다. 그녀의 작품들 가운데 화강암 작품들의 대부분의 명제는 ‘하늘과 땅’이고 스테인리스 스틸 조각 작품의 대부분은 '대양(Ocean)'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이러한 대명제 사이에 틈틈이 인간, 얼굴, 나무, 나비 등 자연에 서식하는 개체로서의 생명체가 등장한다.

예술적 표현에서 우주나 생명과 같은 거대한 명제는 자칫 관념주의에 빠지기 쉽다. 적지 않은 작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에 방대한 명제와 철학을 주입하려는 의도에서 복잡한 표현에 의존하는 시도로부터 좌절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강신덕의 경우는 대명제를 취급하되 관념적이지 않고, 재료나 형식면에서 좀 더 구체적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해학적인 경쾌함까지 담고 있다. 따라서 강신덕의 작품에서는 심오하되 난해하지 않고 기본적으로 추상적이지만 구상성을 언뜻언뜻 드러내는 관람객 친화적인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강신덕은 붉은색, 푸른색, 흰색 등 다양한 색상을 지닌 돌들을 화강암의 특징에 맞게 거칠게 쪼아서 표면의 질감을 형성하면서 단순하고 볼륨감 넘치는 형태를 지어낸다. 몇 해 전 작가가 이러한 돌작품들을 가지고 전시회를 개최하면서 ‘자라나는 돌’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처럼 강신덕의 돌조각 작품들은 단순하게 표현되었지만 생명감이 충만하고 마치 살아있는 생명으로서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성장하는 것같은 친근함과 부드러움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렇게 제작된 작품들은 그 형태에 있어서 마치 어린이 방송 프로그램의 애니메이션에 사용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오브제같은 느낌을 준다. 물론 이러한 단순함이 자칫 기법적 단순함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강신덕의 작품에는 비례와 균형, 결합과 연마를 통해 작품을 구성하고 마무리를 향해 돌을 다듬는 숙련된 솜씨가 다년간의 작업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있음을 목격할 수 있다. 짐작컨대 작가는 이러한 단순함을 통해 우리 삶의 공간을 형성하는 하늘과 땅이라는 대명제를 탐구하는데 있어서 결국 진실은 단순하고 명료한 것이기 마련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듯하다.


화강암 조각 작품이 단순하고 소박한 정서를 반영한다면 스테인리스 스틸은 강신덕의 작품 가운데 또 다른 특징을 보여준다. '대양(Ocean)'이라는 명제를 가진 대부분의 작품들은 재료가 갖는 특성처럼 세련되고 도회적이며 표면의 반사효과에 따라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화려함도 함께 가지고 있다. 명확하게 형상을 설명할 수 없으나 깊은 바다 속에서 탄생하는 생명체의 모습같기도 하고 유동액을 가득 담은 금속재질의 얇은 용기같기도 한 작품들이 조명을 받아 반짝이며 주변의 이미지들을 흡수하는 모습은 마치 생명을 가진 유기체가 살아 움직이며 성장하는 것같은 자연의 신비로움을 느끼게 해준다.


강신덕은 이러한 스테인리스 스틸 작품의 형태를 실크 스크린 작업을 통해 평면이미지로 구현하기도 한다. 입체 작품과 달리 실크 스크린으로 표현된 이미지에서는 굵고 명확하게 확정되는 윤곽선과 색채,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이미지의 표현에 의해 또 다른 의미의 생명감과 운동성, 그리고 이러한 표현을 통해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자연의 존재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법 등을 일깨워주며 관람자들과 상호 교감하는 장을 펼치고 있다.


강신덕이 관람객과 보다 적극적으로 상호 교감하는 형식은 작가의 설치작업에서 보다 잘 찾아볼 수 있다. 다분히 한국적 색채를 지니는 반투명한 천을 조각보처럼 연결한 대형 패브릭으로 자동차와 같은 오브제를 감싸거나 나무숲에 허공을 가로지르게 펼쳐놓음으로써 주체와 대상 사이의 분리와 소통을 동시에 이야기하면서 작품의 시각적 효과를 발휘하기도 하였던 강신덕이 이번에 출품하는 작품은 커다란 원통형 스크린 설치 작품 위로 영상이 투사되는 형식의 작품이다. 이제까지 작가가 제작해 온 작품들을 영상 이미지로 단순화시킨 프로젝션 작품을 통해서 강신덕은 또 다른 형태의 자연과 우주, 그리고 그로부터 생성되는 개체의 생명감과 활력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강신덕은 이처럼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재료와 표현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삶의 작은 부분, 작은 구석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따뜻한 시각으로 관찰해왔다. 육중하고 투박한 화강암에서부터 가볍고 경쾌하게 느껴지는 스테인리스 스틸이나 실크 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재료의 물성을 이용하여 자신이 수 십 년간 일관되게 천착(穿鑿)해온 인간의 삶과 이를 둘러싼 자연과 생명의 문제를 다양하게 작품 속에 구현해 온 강신덕의 이번 전시회에서 관람객들은 작품의 형태와 질감, 색상과 빛이 상호작용하여 만들어내는 온화함과 따뜻함을 통해 생명과 사랑을 다시 한 번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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