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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상 / 추억과 상상의 시공에서 사유하는 인간상

하계훈

정호상의 작품은 인간의 내면에서 작동하는 사색과 욕망, 미적 탐구와 자아실현에 대한 모색 등을 포함한 다양한 정신작용들을 가시적 이미지로 변환하여 화면에 담아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이러한 사색과 탐구를 작품화하기 위하여 자연 환경을 화면에 도입하고 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으로서 힘찬 붓터치와 과감한 색상을 채택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정호상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자연을 배경으로 하여 그 안에 존재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정호상이 바라보는 자연은 여러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어린 시절의 체험과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추억과 회상의 공간이면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유대감을 발생시키고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사색을 유발하는 사유의 공간이요, 더 나아가 자연이 제공하는 아름다움으로부터 촉발되는 미적 사유에 의해 관조자의 정신을 순화시킬 수 있는 명상과 치유의 공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원래 자연은 인간에게 종교적 신비감을 떠올리게 해주는 신비주의적이고 낭만주의적인 상상력의 주요 원천이었다. 옛사람들은 높은 산, 커다란 나무와 바위,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과 수평선,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자연현상 등에 대하여 호기심과 경외심을 가졌으며, 그곳에 무언가 초인간적인 존재가 개입하는 것을 상상하여 종교와 신화를 만들어내고 문학과 예술의 영감을 이끌어냈다.


전원적 환경에서 성장한 정호상은 유년시절의 삶에서 체험한 자연의 생명력과 원시성을 낭만주의적 정서와 표현주의적 감각을 결합하고 선과 색의 유기적인 혼합과 형태의 변형을 통해 화면을 구성한다. 팔레트 위에서 충분히 혼합되지 않은 상태에서 캔버스에 적용되는 붓의 터치는 화면의 색채 표현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고 다양한 사물의 속도감과 활력을 더해준다. 이러한 붓터치로 작가는 폭포수의 물결과 숲속의 생물들의 모습, 하늘과 물의 표현 등을 시도함으로써 캔버스 공간을 환상적 활기로 넘쳐나게 만든다.


<호수 주변의 사색하는 인간들>은 이러한 작품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 가운데 하나다. 우리는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유발시키는 화면 속 배경에 던져진 두 명의 인물이 곧 작가 본인의 모습이자 우리들의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목과 달리 호수라기보다는 폭포에 가까운 물결이 화면을 지배하는 가운데 섬처럼 고립된 화면의 하단에서 사색에 잠긴 인물은 불확정과 불안정의 섬에 갇힌 현재의 인간의 모습이다. 이 인물이 앉아있는 작은 섬은 가늘게 걸쳐진 고목에 의해 건너편 언덕과 연결될 수 있는데 이것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연결고리다. 작가는 반대편 물속에서 하반신을 담그고 물속에 무언가를 찾는 듯한 인물을 과거의 자신으로 상정하고 있는데 현재의 인물과 달리 그는 물속에 자신의 몸을 담그고 자연과 하나로 존재하고 있으며, 자연을 대상 혹은 배경으로 사색하기보다는 자연과 함께 행동하고 있다.


작가는 빈 캔버스를 마주하고 작품을 시작하면서 밑그림을 그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가 화면에 표현하는 자연은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도출되지만 그것은 자연주의적인 재현을 목표로 하기 보다는 과거의 기억과 경험이 바탕이 되어 그로부터 자연스럽게 증식되는 상상력과 미적 영감이 가미되는 형식으로 표현된다. 결과적으로 정호상의 화면에서는 지금 외부세계의 그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그러나 작가의 마음속에 생생하게 기억되고 상상의 시야에 파노라마적으로 전개되는 환상적인 풍경이 만들어진다.


정호상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자연의 모습은 이처럼 사실주의적 재현성을 넘어 환상주의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는데 그러한 환상성을 강조하게 해주는 요소는 화면의 구도나 붓터치 뿐 아니라 작가가 의도적으로 구사하는 색상의 배열에 의해서 드러나기도 한다. 정호상은 화면의 배열에 있어서 세부적인 붓터치의 활력을 유지하면서도 전체적으로 화면의 색채 균형과 대비를 염두에 두고 붉은 색과 푸른색, 갈색 등을 배열한다. 이러한 시도는 결과적으로 화면 속의 개별적 이미지들의 본모습을 보다 강조하면서 전체적으로 초자연적인 에너지의 분출과 그로부터 유래되는 숭고와 장엄의 파노라마를 경험하게 한다.


정호상이 만들어내는 화면에는 인간과 자연, 인간과 동물의 교감이 적극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신이 마련해준 농장II>에서처럼 보색관계의 색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진 화면에서 관람자들은 자연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고 그로부터 새롭게 드러나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되돌아봄으로써 사색과 환희의 감정으로 세상을 경험하거나 그것에 대한 경이로운 상상을 허락받기도 한다.


정호상은 이처럼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통해 불러일으켜지는 경외심과 미적 상상력을 작품으로 승화시켜 보는 이들의 정서에 호소하며 결과적으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작가의 경험으로부터 창조된 자연을 눈앞에 펼쳐두고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삶의 의미를 사유하게 해주는 작업을 시도한다. 이를 위하여 작가는 미술사와 문학, 철학의 선례를 자기화하려는 노력과 함께 조형적 탐구를 병행하여 더욱 내실있는 작품을 추구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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