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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과 치유의 이상향, 산토리니의 추억

하계훈

사물의 양면성은 한쪽 면에 치중하여 그것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그 반대편의 모습을 발견할 때 그들을 적지 않게 놀래키기도 한다. 아름다움의 뒤편에 숨겨진 추함, 깨끗한 거리의 뒷골목에 펼쳐지는 오물 투성이의 난장판, 전쟁터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평화의 에피소드, 쾌활한 희극 배우의 사생활에서 발견되는 우울증 등등. 이러한 대조적 사물과 상황은 다른 한 편의 존재를 상대적으로 더욱 강조해준다.

 

산토리니. 그리스 반도 남쪽 지중해에 솟은 다섯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지역을 부르는 이름이다. 원래 그리스어로 티라(Thira)라는 행정지역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산토리니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산토리니라는 이름은 13세기 서로마 제국의 부활을 꿈꾸던 라틴제국에 의해서 붙여진 이름으로서 세바스찬 성인의 상처를 치료해준 성 이리나(Saint Irene)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산토리니섬 역시 현대인들의 지친 마음과 상처를 치유해주기에 적합한 곳이니 이름 한번 잘 지은 듯하다.

이렇게 알려진 산토리니는 지상의 낙원, 환상의 섬, 최고의 신혼여행지 등등으로 수식된다. 하지만 산토리니는 멀게는 기원전 1500년 고대 그리스 시대에 화산 폭발로 전 주민이 사망하고 모든 동물들과 식물들도 멸종에 가깝게 사라진 폐허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가깝게는 1956년에 다시 큰 지진에 의해 이 지역 전체가 크게 피해를 입기도 했다. 산토리니는 이러한 역경을 딛고 다시 일어났기에 더 의미가 있는 낙원이며 우리들의 눈에 오늘날의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는 지중해의 섬마을인 것이다.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의 아름다움이 더욱 놀랍듯이 산토리니의 폐허의 역사는 우리가 지중해의 맑은 햇빛을 받으며 도도한 여인처럼 바다 한가운데 앉아있는 이 섬을 경이와 찬탄의 눈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우리나라에서는 모 스포츠 이온음료 광고를 통해 널리 알려진 곳이기도 한 산토리니는 많은 예술가들에게는 영감의 원천이었고 예술적 재충전의 요람이 되기도 하였다. 푸른 바다와 햇빛 가득한 하늘을 배경으로 서있는 섬들의 언덕에 하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은 이번 여행을 다녀온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 말한 것처럼 그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안식과 평화를 가져다준다.

 

갤러리 산토리니서울에서는 매년 중견작가와 신진작가들 가운데 작업의 성과가 기대되는 이들을 선발하여 이곳 산토리니 현지에서 한 달간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그 결과를 서울에 있는 갤러리에서 전시회 형식으로 제시한다. 이번 전시에는 작년 8월 중견작가 5인(사석원, 안윤모, 이수동, 정일, 황주리)이 산토리니에 머물면서 일대를 여행하는 가운데 떠오른 조형적 영감을 다듬어 펼쳐 보여주는 전시다.

 

일명 “신토리니를 탐한 5가지의 시선”이라는 주제로 실시된 이번 프로젝트는 국내 미술계에서 종종 시행된 작가들의 예술 탐방 기행 형식을 띠고 있다. 이러한 예술 기행이 초기에는 파리를 비롯한 예술의 도시를 주로 선택하였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집트나 로마와 같은 미술사의 원천이 되는 도시로 이러한 프로젝트가 확대되어 갔지만, 산토리니처럼 예술의 역사에서 별로 기억되지 않았던 장소가 예술가들의 탐방 대상으로 부상하게 된 것은 산토리니에 담긴 역사와 문화에 심취한 기획자의 의지에 바탕을 둔 선택이 결정적으로 작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현대사회의 숨막히는 긴장과 탈출구를 찾기 힘든 현실은 산토리니처럼 평화롭고 한가하며 현대도시의 단점을 모조리 보상하는 이상향으로서의 섬마을 산토리니를 더욱 부각시킨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기 위하여 지중해의 평화와 휴식을 찾아가기를 희망하겠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에 이번 기회를 통하여 화가들의 눈으로 그들의 마음속에 담아온 산토리니를 만나고, 그곳에서 호흡하고, 영혼의 치유를 맛보는 기회를 가져보도록 한다.

 

안윤모는 올빼미가 화면에 등장하며 우리 생활과 사고의 다양한 모습을 마치 어린이들의 동화책 삽화처럼 그려내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이번 작품들에서도 안윤모의 올빼미는 산토리니의 언덕과 그 섬의 앞바다, 그리고 언덕 위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의 발코니 위에 등장한다. 작가는 이번 여행에서 작가의 마음속에 함께 데려간 올빼미를 산토리니의 풍경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찍듯이 화면에 등장시키고 있는데, 화면 밖의 관람자들을 바라보는 올빼미는 마치 우리들에게 여기 이곳을 한번 다녀가라는 듯하게 산토리니의 곳곳을 배경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면서 자연스럽게 그곳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산토리니에 간 안윤모의 올빼미는 올빼미의 야행성 속성을 넘어서 주간과 야간을 두루 거치면서 산토리니를 소개해준다. 한낮의 햇빛이 어깨너머로 쏟아지는 테라스에 앉아서 우리를 바라보는 올빼미도 있고 초승달이 뜬 하늘을 배경으로 마을의 건물 지붕에 올라앉아 멋진 포즈를 취한 올빼미가 있는가 하면 아예 배를 타고 산토리니 앞바다로 나아가 마을 언덕을 배경으로 하면서 여유롭게 낚시를 즐기는 의인화된 올빼미도 있다.

 

화면 속의 올빼미로부터 눈을 돌려 배경의 마을을 살펴보면 우리는 산토리니 마을의 집들이 원래의 모습이 아닌 커다란 책들이 겹겹이 세워진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상하다. 그런데 사실 이상한 건 그뿐만이 아니다. 아무리 고즈넉한 마을이라지만 인적이 전혀 없고 화면 속에 표현된 밤이건 낮이건 살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올빼미 하나뿐이다. 그나마 올빼미의 모습도 그림자가 없이 담장 위나 지붕 위에 앉아 있어서 작품 속의 공간은 산토리니를 연상시켜주기는 하지만 사실상 현실의 구체적인 장소를 초월한 어떤 장소로 드러난다. 마치 데 키리코의 화면 속의 공간을 연상시켜주는 이곳에서 작가는 영혼의 안식과 희망을 구하고 있는 것이리라 추측해본다.

 

자작나무 숲의 풍경을 즐겨 그려온 이수동 역시 사실적인 표현 보다는 이야기가 담긴 삽화적인 이미지를 즐겨 그려왔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작가의 이러한 특징이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출품작 가운데 <연서>에서는 푸른 바다와 흰 구름을 멀리 바라보는 여인의 뒷모습을 재치있게 표현하고 있다. 여인이 서있는 마을의 계단과 담장은 주체할 수 없이 쏟아지는 지중해의 햇빛으로 인해 빛이 드리워지는 모든 공간이 거의 표백될 듯이 눈이 부시다. 이곳에서 멀리 바다를 바라보는 여인의 길고 가느다란 목과 팔이 우리의 눈에 들어온다. 이 여인은 지중해 한가운데 떠있는 섬인 산토리니를 의인화 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환상의 섬을 방문한 여행자로서 고향의 연인에게 이 아름다운 풍경의 감흥을 사랑의 편지에 담아 보내려는 모습일 수도 있다.

 

뒷모습을 보이는 여인이 누구일까 하는 호기심과 산토리니의 마을 골목을 이리저리 탐구하듯 돌아다닌 작가의 호기심은 어느 정도 공통점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굵은 웨이브 머리에 센스있게 가느다란 목에 목걸이를 걸친 모습으로 푸른 하늘색 배경으로부터 돋보이는 분홍색 상의와 하얀 주름치마를 입은 여인이 허리를 약간 꺾어 오른발에 체중을 실은 상태로 먼곳을 바라보는데 자세히 보면 그녀의 뒷짐진 손에는 편지봉투 하나가 들려있다.

산토리니를 다녀온 작가에게 그곳의 추억은 이처럼 작가를 다시 불러들이는 여인의 편지같은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산토리니가 작가를 부르는 것이다. 아니 사실은 작가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부르고 있다는 것을 작가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이수동의 작품에서는 이렇게 관람자가 재미있는 이야기와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어서 좋았고 산토리니를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그곳의 모습과 분위기를 잘 전해주고 있어서 작가에게 고마움을 전하고싶다.

 

사석원 역시 산토리니에서 푸른 바다와 하얀 구름, 하얀 집과 파란 지붕, 그리고 그곳에서 술과 음악과 꽃을 보았다. 당나귀, 고양이, 부엉이 등의 동물들이 무지개를 품은 푸른색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표현되어 있는 사석원의 작품은 이제까지 그래왔었던 것처럼 대담하고 강렬하다. 이러한 표현 역시 작가가 산토리니를 만났을 때 잘 어울릴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석원은 산토리니에 체류하면서 얻게 된 감흥을 짧은 글로 표현하기도 했는데 그 글에서는 산토리니에서 받은 감흥이 하얀, 파란, 검은 색 등의 단어로 표현되어 있고 그것은 다시 그의 그림 속에서 그 단어가 지시하는 색의 시각적 표현으로 자유롭게 풀어진다.

 

산토리니의 태양으로 녹인 초컬릿같은 찐득한 질감의 물감을 과감한 원색으로 화면에 적용한 사석원의 작품은 야수파나 표현주의 작가들의 거침없는 붓의 움직임을 느끼게 해주고 있지만 부분부분에서 발견되는 한국화적 붓놀림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점이 사석원을 그냥 표현주의적이거나 아수파적인 화가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독창적인 특색을 보여주는 작가로 평가받게 하는 것같다.

 

사석원의 이번 출품작품들 가운데 파란 테이블 위에 버릇없이 올라앉아 건방진 눈초리로 화면 밖을 바라보는 고양이를 그린 <산토리니 고양이>의 상단부에는 그리스어를 모르는 우리가 해독하기 어려운 글이 적혀있다. 우리가 이 작품을 해석함에 있어서 이러한 글을 해독해야 할 지 아니면 이 글을 작품 속의 하나의 조형요소로 보아야 할지에 대해서는 통일된 의견을 구하기 어렵겠지만, 이러한 텍스트의 도입은 작품의 배경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는 방법의 하나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화면 속의 그곳은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산토리니며 이 고양이는 우리 이웃의 고양이가 아니라 그곳 산토리니 출신의 검은 털을 가진 고양이다.

 

정일은 산토리니에 대한 기억을, 함께 방문했던 다른 작가들에 비해서 조금은 간접적으로 그곳의 경험을 표현하고 있다. 그의 화면에서 산토리니를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푸른 바다, 흰 집들 등에 관한 시각적 이미지는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남녀 두 인물이 등장하거나 화면 중앙에 커다란 나무가 표현되는데 이러한 구도 안에서 산토리니는 인물들의 의복에 담긴 무늬나 나무에 성탄트리 장식처럼 달려있는 다양한 사물들 가운데 그리스정교회의 지붕과 흰 십자가, 촛대, 대리석 기둥과 신전 등의 파편화된 이미지로 제시된다.

 

<산토리니의 추억(souvenire de santorini)>이라는 제목을 가진 두 개의 작품에서 작가는 파스텔 톤의 화면 중앙에 커다란 화분을 배치하고 그 안에 작가가 산토리니에서 만나고 경험했던 이야기들을 풀어내기 위해 도입하는 사물들을 마치 나무의 열매처럼 주렁주렁 매달아놓고 있다. 또 다른 <산토리니의 추억(souvenire de santorini)>라는 작품에는 포도 송이와 꽃이 환상적으로 열린 나뭇가지 아래 두 남녀가 사랑의 접촉을 시도하는대 그 배경에는 지중해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대리석 기둥과 산토리니에 있는 건물의 지붕이 멀리 보인다. 산토리니의 추억은 사랑과 행복을 떠올리게 해주는 것이다.

<낭만의 정원(romantic garden)>에서도 이러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포도, 대리석 기둥과 신전, 산토리니 교회의 파란 지붕 등이 꽃들과 함께 풍성하게 열린 나무 한가운데로 흰 말을 타고 날아가는 두 남녀는 어쩌면 산토리니를 찾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낭만적인 환상일 수도 있고 그곳을 방문하고 난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느낌과 인상을 조형적으로 풀어낸 작업일 수도 있다.

 

황주리는 이번 여행에 참가한 작가 가운데 유일한 여성 작가로서 평소 문학적 감각을 발휘해 온 작가답게 산토리니에 대한 추억을 그림과 글, 두 가지 모두에서 잘 풀어내고 있다. 산토리니의 풍경이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여 그 풍경, 특히 일몰의 광경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짧은 순간이나마 시인이 되고 철학자가 되어보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황주리는 그 순간 그곳이서 엉뚱하게도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를 떠올리고, 다시 이 상황을 자신의 어머니의 삶과 연결시키는 경험을 한다.

이번에 출품된 작품들은 <두 사람>과 <식물학>이라는 제목을 가진 작품들인데 <두 사람>은 흑백의 화면에서 입을 맞추는 두 남녀를 보여준다. 햇빛과 바다와 하늘의 푸른색과는 거리가 먼 회색의 화면이 산토리니를 다녀온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이 당혹스럽지만 우리는 종종 사물의 양면을 보는 것처럼 밝은 곳에서 어두움을, 신혼여행을 온 부부의 화려한 닭살 행각에서 자신의 무채색 과거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식물학> 연작은 작가가 현장에서 찍은 듯한 사진 이미지 위에 황주리 작가가 즐겨 표현해 온 방식대로 마치 만화의 말풍선처럼 공간을 구획하여 다양한 삶의 모습을 채워넣는 형식의 작품들이다. 산토리니 마을의 골목과 창문을 찍은 사진 위에 해바라기 꽃처럼 피어오른 공간에 산토리니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같은 일상의 삶들이 그려진 작품들은 작가가 스스로 말한 것처럼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이 그리 흥미롭지 않고 오히려 지산의 주변 인물들과 사물들에 관심을 갖는 태도를 유지하면서 산토리니를 추억하는 작가만의 방식일 수도 있다.

 

이번 전시에 출품한 다섯명의 작가들에게는 각각의 개성이 드러나면서도 한 편으로는 서로서로 공유할 수 있는 감성의 코드와 이미지의 시각화 방법이 있는 듯하다. 다섯 명의 작가들은 모두 서정적 내러티브를 자신들의 작품의 기본적인 축으로 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위에 작품을 구체적으로 전개함에 있어서 상징성을 더 강조할 것인가, 표현주의적 정서를 보다 적극적으로 내보일 것인가, 또는 이 중간의 어느 지점에서 머물 것인가에 따라 작가마다의 작품의 특성이 달라지긴 하지만, 이러한 성향의 작가들이 함께 지중해의 섬 산토리니를 다녀온 경험은 모두에게 소중한 추억이 되며 앞으로 자신들의 작품을 펼쳐 나아가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제까지 간단하게 살펴본 것처럼 이번 전시는 기본적으로 다섯 명의 중견 작가들이 산토리니를 다녀온 추억과 경험을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화면에 풀어놓고, 그것을 관람자들과 공유해보는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산토리니로 상징되는 안식과 치유의 이상향과 우리가 일상에서 피하지 못하면서도 언제라도 기회만 잡으면 저지르고 말겠다는 일탈을 꿈꾸는 도시 생활의 번잡함은 산토리니를 다녀온 작가들과 그렇지 않은 관람객들 사이의 감성의 공유를 얼마만큼 성공적으로 이루어내느냐에 따라 이번 전시회의 성과가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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