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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영석

하계훈

몇 해 전 <건강한 정물>이라는 주제로 연필 드로잉 작품을 선보였던 차영석이 이번에는 <습관적 세계>라는 제목으로 다시 개인전을 열었다. 경도가 서로 다른 여러 가지 연필을 사용하여 자신과 주변인들의 생활공간에서 발견되는 의미있는 기물들을 단색의 드로잉으로 묘사하여 화면 가득 펼쳤던 지난번의 전시가, 작가 스스로 말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기의 기본에 충실하면서 처음부터 다시 출발하여 작업한다는 각오와 태도를 다지는 기회였다면 이번 전시는 그러한 태도의 연장선에서 자신의 작품을 돌아보고 새로운 관점을 정리하여 앞으로의 작업 방향을 조율하는 작은 전환점을 제시하는 기회로 볼 수 있다.

 

지난번에 지적되었듯이 연필만을 이용한 단색의 드로잉은 수없이 많은 필선의 반복에서 오는 제작 속도의 제약, 그리고 이와 연동되는 작품의 크기의 한계, 모노톤 형식이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 제한적인 표현성과 표현 소재나 장르의 제약 등을 극복하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주로 정물을 통해 작품을 제작해 온 작가가 앞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이와 같은 것들이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여전히 정물과 동물도감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같은 동물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지만, 이전과 다르게 이미지들이 정리되고 화면의 여백이 늘어났으며 무엇보다도 연필을 주로 사용하면서도 금색 펜을 이용하여 화면의 단조로움을 개선하고 부분적으로 장식적 효과를 도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작품에서도 차영석은 지난번에 그렸던 소재들을 반복한다. 러시아 인형, 화분 속에서 자라는 식물들, 배의 모형, 도자기와 성냥개비들. 그런데 여기에 더하여 동그란 틴슬(tinsel) 공같은 형태들이 반복되기도 하고 크기가 다른 동그라미들이 일렬로 정렬하여 화면 안에 운동성과 방향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작가는 이러한 작품에 <망각한 변형>, <은밀한 습관>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있는데 이러한 제목은 작가의 작업에 있어서 자신이 지향해 온 바와 그 과정에서 작가가 습득하는 습관, 반복되는 작업에서 생겨나는 무의식적인 변화와 과거의 습관으로 회귀하는 작가의 손, 그리고 그러한 자신의 작업에 대한 자각의 독백을 읽을 수 있게 해주는 듯하다.

 

이러한 작품들에서 관람자들은 차영석의 이전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화면을 가득 메우는 수평적인 기물의 배치와 각각의 이미지 요소 사이의 균등한 비중 등에서 벗어나 화면의 중심을 의식하고 질서와 방향성 등을 기획하려하는 작가의 손길을 읽을 수 있다. 여전히 연필의 세밀한 필선을 반복함으로써 생겨나는 맛을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이제 금색 펜으로 표현한 색상의 확대와 화면에 구성을 생각하는 기물의 배치 등이 이전과 다른 변화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차영석의 이전 작품과 지금의 작품을 잇는 작품으로는 <망각한 변형>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원형의 화면 속에 식물의 잎이나 아메바 동물과 같은 형태들과 함께 크기가 다른 원형의 도안(처럼 보이는 형태)들이 펼쳐지고, 큰 원 안에 작은 원들이 줄지어 늘어서기도 하는 <망각한 변형>에서는 금색 펜과 함께 여전히 연필의 필선에 탐닉하는 작가의 손길을 읽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하 전시장에 설치된 동물화들은 작가의 새로운 작업들을 보여준다. 검은 종이 위에 대담하게 그은 금색의 굵은 선들과 달리 얇게 반복하여 그은 연필의 필선은 검은 색 위에 그은 검은 선으로서 작품 앞으로 다가가야만 그 모습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이전의 작품들과 달리 한 화면에 한 오브제가 화면의 중앙에 자리잡은 이러한 작품들은 다분히 고전적인 엄격성을 자아낸다. 차영석은 이러한 작품들을 <망각한 변형>이라고 명명하고 있는데 어쩌면 이러한 작품이 이전의 작품들에서 가졌던 관심을 돌린다는 의미의 ‘망각’이며 앞으로의 방향을 암시하는 ‘변형’이 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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