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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론│김학두 / 정념의 회화 : 심안의 순수 조형 놀이

김성호

정념의 회화 : 심안의 순수 조형 놀이 


김성호 Kim, Sung-Ho (미술평론가) 


필자는 이전의 글1)에서 화백 김학두(金學斗, 1924~ )의 작품을 ‘마음의 눈으로 그리는 상상정경(想像情景)’으로 풀이한 바 있다. 지금으로부터 근 10년 전의 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마음의 눈으로 그린다”는 필자의 관점은 아직까지 특별히 변하지 않았고, 필자에게 ‘심안’과 ‘상상정경’을 떠올리게 만드는 그의 그림의 풍모는 최근에도 여전하다. 
그는 이미 자신의 작가노트에서 이러한 심안의 의미에 대해 고찰한 바 있다. 즉 인간의 눈에는 혈안(血眼), 육안(肉眼), 심안(心眼) 이 세 가지의 눈이 있는데, 그 중 ‘혈안은 욕심의 눈이자 속세의 눈이며, 육안은 과학적인 눈이자 현실적인 눈이지만 심안이라는 하는 것은 생각하는 눈이자 창조성의 눈’으로 기록해 둔 것이다.2) ‘마음눈’으로 대체되고 ‘마음의 눈’으로 풀이되고 있는 이 심안은 실제의 사전적 의미로 “사물을 살펴 분별하는 능력, 또는 그런 작용”으로 해설된다. 따라서 ‘육안’이 보기(seeing, viewing)의 표피적 현상과 시각적 결과에 집중하는 것이라 할 때, 김학두 화백의 작업 태도에 드러난 ‘심안’은  살펴보기(observation)와 같은 시각 현상의 심층에 대한 통찰과 시각적 과정에 보다 더 집중하는 것이라 하겠다.
10년 동안의 최근작을 더 포함하는 김학두 화백의 전체 작업을 조망하는 필자의 이 글에서도 여전히 ‘심안’은 그의 작업을 이해하는 화두이자 주제를 풀어 보는 핵심어가 된다. 이 ‘심안’이란 핵심어 위에 필자의 부족한 안목으로 감히 다루기도 어려운 철학적 개념인 ‘정념’을 덧붙여 ‘정념의 회화: 심안의 순수 조형 놀이’라는 제목으로, 이전의 글을 불러와 찬찬히 살펴보면서, 새로운 글을 짓고자 한다. 

김학두(1924~  )



I. 심안에 이르는 미술 여정 
구순(九旬)이 넘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김학두 화백은 ‘심안’이란 화두를 쥐고 일상 혹은 일상 속 자연이라는 미적 대상과 부지런히 교감하고 대화해 왔다. 실상 심안이란 육의 욕심을 버리고 자신이 몸담은 번잡한 현실을 비우는 순전한 태도로부터 비롯된다. 
김학두 화백의 블로그의 안부게시판3)에는 그로부터 학창시절 미술교육을 받았던 한 방문자의 추억이 깃든 메시지-‘심안’에 관한 위와 같은 상황을 엿볼 수 있는-가 다음처럼 남겨져 있다: “1963년 중학교 입학하고 첫 번째 미술시간에 / 오늘 아침 학교 오는 길을 그리라고 하셨는데, 그 때의 당혹감이라니.... / 동서남북을 떠올리며 집과 학교의 거리를 측정하려 했던 그 소녀는/ 이제 59세가 되어 선생님의 유의미한 말씀을 알아듣습니다. / 지금 생각하면 /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 기쁜 날들이었던 것을... / 그 기분, 그 마음을 그리라 하신 것을 이제야 압니다.”
그의 옛 제자가 59세가 되어서야 “그 마음을 그리라 하신 것”을 이해했던 것처럼, ‘마음의 눈’ 즉 ‘심안’이란 세상을 여유롭게 바라보는 연륜이 아니라면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세상으로부터 미혹되지 아니한다’는 불혹(不惑)에 이르지 못한다면, 이러한 태도는 흉내조차 내는 일이 쉽지 않을 지도 모를 일이다. 
김학두 화백의 심안에 이르는 미술 여정을 잠시 좇아 보니, 그 첫 출발은 일제 강점기, 그가 소학교 2학년 때 담임이 그려 놓은 링컨 초상을 본 감흥으로부터 비롯되었다.4) 자유로운 창작의 수련을 거쳐서 청주사범학교 ‘심상(心像)과’를 다니게 되는데, 여기서 그는 입시와 관련된 것이긴 하지만, 본격적인 창작 수련에 입문하게 된다. 주지하듯  1926년 이래 “심상과에는 수신, 읽기, 작문, 습작, 산술, 체조가 있었는데, 체조 대신 지리, 역사, 도화, 외국어, 재봉 중 한 과목, 혹은 몇 과목”5)을 배울 수 있었고 ‘읽기, 작문, 습작, 체조, 도화, 외국어 등 인문교양, 예술적 소양을 충분히 쌓을 수 있는 과’였다고 하겠다. 당시 그는 ‘청주사범에서 7명의 학생들로 구성된 칠성회(七星會)라는 단체를 만들어 일본의 미술대학 진학을 준비하던 중, 서울대 미술대학이 생긴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서울대로 목표를 바꾸어 결국 1946년 서울대 진학에 성공하게 된다.6) 
서울대 제2회화과(서양화)에 재학 중일 때 수화 김환기가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고 학생들이 그와 긴밀하게 소통했다는 진술7)을 참조할 때, 1940년대 중후반 김학두 화백의 본격적인 창작 작업이, ‘수화가 1935년 천착했던 초현실주의와 추상주의의 결합의 조형 언어, 1930년대부터 이미 천착했던 추상의 언어 그리고 1950년대 천착했던 한국적 소재의 구상적 조형 언어’8)들 사이에서 일정 부분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추정해 볼 수 있겠다. 초기의 미술과 관련한 인터뷰에 근거할 때, 김학두 화백은 실제로 1940년대 중반의 초기 작업에서 재현적 구상에 기초하되 그것과는 어느 정도 이격된 초기 초현실주의적 경향에 일정 부분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김학두 화백의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의 화업이 당시 유행처럼 번졌던 ‘앵포르멜이라는 이름의 추상미술, 즉 서구의 미술의 직접 수용이라는 평가 속에 한국 미술 현장에 안착한 추상회화’9)의 경향이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시기 그는 ‘한국전쟁으로 이미 대학을 중퇴’10)한 후, 중앙 화단에서 활동도 하지 않았던 까닭에 이러한 영향과 간섭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는 1947년부터 충청도 지역에서 교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었는데, 1958년부터는 수원여자중고등학교에서 교편 생활을 하게 되면서 지금까지 거주하고 있는 수원에 ‘평생의 삶을 잇은 둥지’를 틀기에 이른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유럽의 미술사조와 새로운 재료의 도입’11)에 따른 영향들 그리고 ‘1960년대 홍대파와 서울대파(일명 미대파)의 대립과 교류’12)와 같은 중앙 화단의 상황들과도 거리를 두고 근 40년에 이르는 지역에서의 교육 현장13)에서 학생들과 함께 펼치는 미술 활동14)과 더불어 지역을 개선하려는 다양한 미술 진흥 활동15)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전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김학두, 용주사의 달밤, 91.5 x 46cm (30호변형), 캔버스에 유화, 2015.


김학두, 상쾌한 봄, 91.5 x 46cm (30호 변형), 캔버스에 유화, 2015.


II. 심안으로 그리는 정념의 회화 
김학두 화백의 작품 세계를 이해함에 있어서, ‘심안’ 즉 마음의 눈은 주요한 키워드가 된다. 그것은 심미안(審美眼)의 의미와 얼추 상통한다. 이 말은 ‘아름다움을 살펴 찾는 안목’이라는 한자 뜻풀이 외에도 ‘아름다움과 추함을 분별(分別)하여 살피는 마음의 눈’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이것은 ‘대상에 대한 육안(肉眼)의 판별력’ 보다는 심안(心眼)의 판별력’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말이다. 미적 판단에 관한 한, ‘몸의 눈’ 보다 ‘마음의 눈’에 더 후한 점수를 주고 있는 것이다. 세상을 대면하는 몸의 눈은 조형적 완결미와 형식미라는 ‘외양(外樣)’을 부단히 좇지만, 마음의 눈은 ‘내면과 범상한 것, 심지어 추한 것’에 이르기까지 ‘외양’ 너머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까닭에, 심안은 ‘정념(情念, passion)’이란 철학적 개념을 쉽게 공유한다. 물론 철학자마다 다르게 고찰되는 이 ‘정념’은 “감정에 따라 일어나는, 억누르기 어려운 생각” 또는 “감정(感情)에서 생기는 사념(思念)”과 같은 사전적 의미를 공유한다. 즉 ‘감정’이 가장 큰 중심으로 자리하는 가운데, 담는 ‘사념’과 같은 것이다. 이와 달리, 정념의 반대편에는 자연스럽게 지속적인 상태의 성격, 관습, 도덕 등을 가리키는 에토스(ēthos)와 더불어 언어, 진리, 이성, 논리, 설명, 법칙, 관계, 비례 등을 가리키는 로고스(logos)가 위치한다. 여기서 에토스는 점차 윤리의 개념으로, 로고스는 차차 이성적 사유의 개념으로 발전해 갔음을 상기하자.  
다시 돌아오자, 정념이 자리한 큰 감정에는 욕정, 기쁨, 연민처럼 포지티브의 감정뿐 아니라 분노, 공포, 증오심 같은 네거티브의 감정이 존재한다. ‘정념’의 어원이 그리스어 파토스(pathos)로부터 온 것임을 상기할 때, 그것은 주로 네거티브의 감정을 원용하면서 출발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리스 초기 신화와 그리스 비극에서 정념은 신들이 인간들의 마음에 심어 놓은 혼란이다. 그것은 인간을 초월하고, 말하자면 인간이 그것의 희생자가 되는 그러한 힘에 인간이 사로잡힌 것을 말한다.”16) 그렇다. 오이디푸스(Oedipus)나 이카루스(Icarus)가 등장하는 그리스 신화에서처럼, 정념이란 신에 의해 파국을 맞는 비극의 인간 운명처럼 간주되었다. 
김학두 화백의 작품 속 정념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유념할 것은, 정념이란 개념이, 긍정적이고 낙관적이든, 부정적이고 비관적이든, ‘일시적이고 수동적인 받다(paschein)의 정서 상태’로부터 기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정념이란 의도적인 계획으로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 속에서 주어지는 것이다. 김학두 화백도 자신의 작업 속에 표현된 정념을 이러한 방식으로 설명한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그림은 그리는 행위 자체 속에서 발생한다. 다만, 이때 정념에서 상상으로 창조가 가능”17)하다. 즉 그에게 정념이란 “그리는 행위 자체 속”에서 주어지고 발생하는 것이다. 즉 정념은 꾸미고 가꾸어 ‘주기’의 상황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받기’의 순수한 상태를 이루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유념할 것은 그리스 철학 이후의 정념이 ‘고(苦)’와 같은 부정적 감정을 서서히 벗고 ‘쾌(快)’와 같은 포지티브의 양상으로 점차 변모해 왔는데, 김학두 화백의 작품이 유독 후자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자신의 ‘순수와 자유로움을 통해 이르는 즐거운 작업’을 정념에 따른 것이라 단언한다. 김학두 화백의 또 다른 발언은 앞서의 진술을 잇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설명도 보다 더 구체적이다: '나는 그림을 구도나 물체의 색, 원근법 등 조건에 맞추고자 하지 않는다. / 예술은 조건을 구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 다만, 자유로운 표현에 즐거움을 더한다. / 나는 그림을 통하여 인간미를 나누며 행복에 잠긴다.” 18)
그렇다. 작위적이지 않은 자유로운 표현은 그의 작업이 정념에 근거한 것임을 반증한다. 이러한 언급은 우리가 앞서 말했듯이, 정념이 바로 ‘심안’의 개념과 겹쳐지고 서로를 공유하기에 이르는 상황을 설명한다.‘육안’은 대상을 분석하고 해부해서 발가벗기는데 집중하지만, ‘심안’은 대상과 교감하고 대화하는데 골몰한다. ‘들뜬 기분과 설레는 마음으로 사물을 대면하는 눈’은 ‘건조하고 차가운 몸의 눈’과 달리 대상에 감정이입하고 그것을 따뜻한 시선으로 응시하기 때문이다.19) 그는 “마음의 표현, 이것은 정신적인 것이며 나의 내면의 세계 속으로 나를 투영해 보는 것”20)이라 진술한다.  
그의 작품들을 둘러보자. 화가 김학두의 정념의 회화 안에는 현실을 대면하는 육안(肉眼)의 사생(寫生)의지를 어르고 다독이며 심안(心眼)의 비사생(非寫生) 의지를 넘실대게 하는 생명력 넘치는 자연의 소리들로 가득하다. 버드나무 잎이 흔들리는 소리가, 새싹이 자라는 소리가, 꽃들이 피어나는 소리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이웃의 아낙들이 옹기종기 모여 나누는 수다스러운 대화 소리가 말이다. 이처럼 화가 김학두가 대상에 감정이입하는 ‘마음의 눈’은 보이지 않는 세계마저 꿰뚫어보게 하고, 들리지 않는 우주의 소리마저 섬세하게 듣게 한다. 눈부시게 쏟아지는 햇살마저 포착하게 하고 바람 불고 비 오는 소리마저 화폭에 담아내게 하는 것이다.21) 


김학두, 정조대왕께서 심으신 노송, 73x60.5cm (f20), 캔버스에 유화, 2008,



III. 순수의 조형 놀이
김학두 화백의 그림을 보자! 그가 담는 풍광(風光)은 심산유곡의 빼어난 절경이 아니어도 광활한 대지와 드넓은 바다의 넉넉한 자연의 품이 아니어도 그곳에는 논과 밭이 있고 잡풀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우리 주변의 하찮고 소소한 일상의 자연이 있다. 화가 김학두는 그곳에서부터 ‘절세의 아름다움’을 발견해 내고 이것의 미적 가치를 극대화시켜 낸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 호수가의 버드나무, 꽃 사이를 누비고 다니는 나비, 사람, 집과 같은 익숙한 일상의 모습은 그의 정념과 상념에 따라 그림으로 편입되어 들어온다. 특히 그는 ‘자신의 상념에 따라 그리게 되는 그림’을 마치 초현실주의의 조형 언어처럼 설명한다: “그래서 이제 어떤 물체를 보면 내 상념에 따라서 그림을 그리게 됐어요. 예를 들면, 과일 나무 같은 것도 (실제로) 염소 같은 건 없지만 염소가 내다보는 장면이라던 지, 배경이 (실제로) 육지였는데 강물로 그려서 배를 띄운다던지…… 그런 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22)
그에게 미적 대상이 되는 풍광들은 육안으로 파악되는 시각적 결과물이기보다 심안으로 읽으려고 하는 일련의 시각적 변모의 과정들이다. 즉 이러한 태도에 근거할 때, 그의 “그림은 무엇을 그려야 하느냐보다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다. 예술가의 사명은 사람의 눈에 나타나는 자연의 모습을 자기가 바라는 상념에 따라 독창적으로 표현하는데 있다. (그는) 새로운 것은 정신에서 창조되는 것이지 사물의 묘사는 아니라고 본다” 23)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연 속에서 언제나 새로운 관계항들을 설정한다. “예를 들면, 과일들은 나뭇가지로부터 떨어져 매달려 있고 꽃잎들은 천지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꽃잎의 크기는 자연의 풍경들을 넘어서기도 하면서 근경과 원경의 개념을 전복한다. 오밀조밀 그려진 자연의 풍경과 인접해서 확대된 버드나무 가지가 각각 하나의 화면에 중첩되어 있는가 하면, 바다를 항해하고 있는 선박과 또 다른 화면으로 등장하는 갈매기 등 하나의 화면에 시점(視點)이 다른 시공간이 병렬, 중첩되어 있기도 하다. 꽃잎과 함께 날아다니고 있는 새의 비상, 수면 위로 몸을 드러낸 물고기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새의 모습”24)이 그러한 것들이다. 
이러한 모습을 필자는 이전 글에서 ‘상상정경’이라고 표현한 바 있는데, 그렇게 명명한 까닭은 그가 “현실로부터 비현실과 초현실의 세계를 불러들여 자칫 단순해지고 식상해질 수 있는 자연 풍경을 생명력으로 충만하게 하고”25)있기 때문이다. 현실에 비현실을, 실재에 비실재를 사생에 비사생을 불러들이는 그의 상상정경은 자연의 개별체들 사이의 관계항을 놀랍도록 새롭게 정초시킨다. 
이러한 초현실주의의 결과들은 정념에 기초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순수한 단계의 문학적 관점, 즉 아동문학과 같은 상황과 관계하는 것이다. 나아가 상상정경과 맞물리는 이러한 초현실주의적 결과는 미술에 있어서 순수, 놀이, 유희를 주요한 조형 전략으로 아동미술과 같은 상황과 관계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김학두 화백은 팔순전 카탈로그의 초대 말씀에서 다음처럼 말한다:“사물의 묘사보다 정념에 따라 순수하게, 자유롭게, 밝게 제가 좋아하는 색으로 조형 놀이하듯 즐거운 작업을 해보았습니다.”26)
김학두 화백과 그의 작품을 소개하는 글들에서 ‘한국의 샤갈’, ‘꿈꾸는 어린 왕자’라는 별칭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듯이, 그의 작품에는 이러한 동화적 감성과 동심으로 가득하다. 특히 붉은 땅과 노란 하늘처럼 강렬한 원색이 주도하는 화려한 화면과 더불어 녹색과 붉은 색이 인접한 화면 안에서 자주 교차하는 보색대비 그리고 분홍과 같은 색의 빈번한 사용은 그의 작품을 경쾌하고 생기발랄한 분위기로 이끌어낸다. 원색이 전면(全面)에 다양하게 배치되고 그 사이를 여러 무채색이 가로지르며 질주를 거듭하는 화면은 자연의 정수에서 뽑아 올린 색들로 직조해놓은 한편의 동화책 같이 여겨진다.   
아동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중앙집중식의 화면 구도와 더불어 모든 개별체의 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진 혼성의 전략은 그의 작품을 현실 너머의 것으로 만들기에 족하다. 산이 있으면 들이 있고 그 들녘에는 가로수들이 서 있고 숲이 한 자리를 차지하며 그 숲에는 몇 그루의 나무가 길게 나뭇가지를 늘어뜨리고 있고 주변은 흩날리는 꽃잎으로 가득한 혼성의 전략이 그것이다. 호수가 있으면 오리가 등장하고 물고기가 뛰어놀며 호수에 되비치는 자연의 반영, 그리고 하늘을 나는 몇 마리의 새들과 그 위에 빛나고 있는 태양처럼 이미지의 연쇄와 더불어 혼성은 지속된다.27)
유념할 것은, 이렇듯 일견 상투적이고 관성적인 김학두 화백의 혼성 전략은 기실 산수화에서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동양화적 감성을 서양화의 화폭에 옮겨놓으려는 시도와 닮아 있다. 즉, 자연의 개별체들이 음양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덩어리를 만들어내는 식으로 자연 본성에 대한 동양적 사유를 조형 언어를 통해 실천하려는 것이다. 원근법의 해체나 시점의 분해는 물론이거니와 물감을 붓으로 찍어 바르듯이 그려간 조형 방식도 자연 개체들의 특성들을 전체 자연 풍경 속에 무화시켜 하나의 덩어리로 인식하게 만들기에 족하다. 서로 다른 개체들을 놀라운 방식으로 관계 맺어주는 것은 결국 작가의 상상작용으로부터 기인한다. 상상작용이 넘실대는 그의 작품에서 평화, 동심, 자연, 심원, 사랑과 같은 단어들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김학두 화백은 ‘마음의 눈’에 훈련된 화가이다. 그는 커다란 감정의 호수 속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본질을 통찰하는 정념을 통해 오늘도 심안의 순수 조형 놀이에 천착한다. 정념의 비극적 감정으로부터 쾌와 감동을 주는 조형 놀이가 백수(白壽)를 맞이할 때는 어떻게 또 변모할지 지켜볼 일이다. “나이가 드니까 이제 복잡한 것보다는 단순한 게 좋더라고요”,28) “나는 그림을 완성하려 하지 않아요. 인생은 미완성이지요. 섭리에 따라 가는 것뿐이지요.”29) 그의 진술들이 의미심장하다. ●



김학두, 자연의  과일, 90x 44.5cm (30호 변형), 캔버스에 유화, 2003.


주석)
1) 김성호, 「마음의 눈으로 그리는 상상정경(想像情景)」, 『김학두 85세 미전』, 개인전 카탈로그, 2008, 페이지 수 없음. 
2) 김학두, 「작가노트」, 위의 카탈로그, 2008. 페이지 수 없음. 
3) 김은순의 김학두 블로그 안부 게시판 글, 2008.07.19.  http://blog.naver.com/khd525
4) 이채영의 인터뷰, 인터뷰 자료집, 한글 파일, 2015. 9,  p. 1. 
5) 김향미, 「서구식 미술교육의 수용 및 변용」, 『근현대미술사학』, 11권,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pp. 121-122, * 이지희, 「1920-30년대 파리 유학 작가 연구」, 『인물미술사학』, 인물미술사학회, 제8호, 2012, p. 180에서 재인용.  
6) 이석기, 행복과 평화, 사랑을 표현한 삶, 카탈로그 서문, 김학두팔순미전, 2003, 페이지 수 없음.  
7) 위의 이채영의 인터뷰, p. 2
8) 문정희, 「김환기의 종달새 노래할 때(1935)에서 항아리와 여인들(1951)까지」, 『미술사논단』, 34호, 한국미술연구소, 2012, pp. 253-255.
9) 윤난지, 「한국 앵포르멜 미술의 또 다른 의미」, 『미술사학보』, 48호, 미술사학연구회, 2017, p.126.
10) 위의 이석기의 글, 2003, 페이지 수 없음. 
11) 이경성, 『근대조각의 전개, 한국현대미술전집』 n° 19, 한국일보사, 1978, p. 88.
12) 김성호, 「대칭 속 비대칭’과 ‘결’의 추상미학」, 심봉섭 작가론, 『심봉섭, 화집』, 2012, 정수화랑, pp. 20-22.  - 각기 다른 캠퍼스에 단과대학을 두고 있던 서울대는 1950년 통합로고가 나오기 이전까지는 단과대별 호명을 선호하고 서울대라는 이름을 단과대 이름 앞에 빈번히 사용하지 않았다. 
13) 1947년 첫 임용부터 1992년 퇴직하기까지, 청주사범학교, 청주농업중학교, 청주여자중학교, 증평공업고등학교, 수원여자중학교, 수원여자고등학교 교사 역임 그리고 경기도 교위 장학사, 동성여자중학교 교장을 역임했다. 
14) 위의 이채영의 인터뷰, 2017, p. 2.  - 미술교사로서의 정규 교육 외에 ‘특별 활동부 지도 교사’로서의 교육을 포함한다. 특히 미술반 활동이 활발했는데 당시 300명이 넘게 지원한 까닭에 넓은 강당에서 활동을 펼쳐야만 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15) 위의 이채영의 인터뷰, 2017, pp. 2-5.  - 크로바백화점에 전시장을 구축하여 경기도미술실기대회를 성황리에 개최, 팔단산 위 시민회관 내 전시장 구축, 수원의 미술교사들(안찬주, 이필윤, 윤재상, 박영복, 배길연, 조성국 등)의 동호회를 결성하여 활동, 1966년 한국미협 수원지부 창설 및 1대부터 3대까지 지부장 역임.
16) 박인철, 「정념의 근원」, 『Trans-Humanities』, 3,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인문과학원, 2010, p.122. 
17) 김학두, 「작업 자세 III」, 『김학두 팔순 미전』, 화집, 2003, 페이지 수 없음, 
18) 김학두, 「작업 자세 I」, 『김학두 팔순 미전』, 화집, 2003, 페이지 수 없음, 
19) 김성호, 「마음의 눈으로 그리는 상상정경(想像情景)」, 『김학두 85세 미전』, 개인전 카탈로그, 2008, 페이지 수 없음.
20) 위의 이석기의 글 속에서의 김학두의 진술, 2003, 페이지 수 없음.
21) 김성호의 앞의 글, 2008, 페이지 수 없음. 
22) 앞의 이채영의 인터뷰, 2017. p. 5.
23) 김학두, 「작가 노트」, 『김학두 팔순 미전』, 화집, 2003, 페이지 수 없음,  
24) 김성호의 앞의 글, 2008. 페이지 수 없음. 
25) 김성호의 앞의 글, 2008. 페이지 수 없음. 
26) 김학두, 「초대 말씀」, 『김학두 팔순 미전』, 화집, 2003, 페이지 수 없음. - 여기서 묘사는 ‘로고스에 의한 주기의 방식’, 조형 놀이하듯 즐거운 작업은 ‘정념에 의한 받기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살펴볼 수 있겠다.   
27) 김성호의 앞의 글, 2008. 페이지 수 없음.
28) 앞의 이채영의 인터뷰, 2017. p.5.
29) 김학두, 「작업 자세 IV」, 『김학두 팔순 미전』, 화집, 2003, 페이지 수 없음.

출전/
김성호, 「정념의 회화 : 심안의 순수 조형 놀이」,, 김학두 작가론, 『2017년 지역 미술인 연구 조사 사업 자료집』,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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