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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평│세 청년들의 또 다른 콜라보 실험 - 따로 함께

김성호

세 청년들의 또 다른 콜라보 실험 - 따로 함께


김성호 Kim, Sung-Ho (미술평론가) 



 I. 테이크오버존에서의 바톤 패스와 콜라보 
대안공간 눈에서 펼쳐진 전시 《테이크오버존(Take over zone)》은 최은철, 전미현이 독일인 루카스 타인(Lukas Tein)과 함께 꾸민 협동 전시이다. 상기의 전시명은 ‘릴레이 경기에서 바턴을 넘겨받는 구간’을 지칭하는 용어 자체를 그대로 빌려 온 것이다. 그러한 차원에서, 스포츠에서 공동의 경주에 참여하는 자신들의 몫과 역할을 ‘마치거나 시작하는 공간’인 그것은 3인의 작가들에게 자신들의 콜라보(Collaboration) 전시를 지칭하는 주요한 메타포가 된다. 여기에는 실제의 ‘테이크오버존’에서 벌어지는 바톤 패스(Baton pass)의 사건처럼, 그룹의 구성원들이 마침과 시작을 순차적으로 이어가는 창작을 선보이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공동 창작에 임했던 작품들을 선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이 전시는, 콜라보 전시뿐만 아니라 세 작가의 독창적인 개인 작업을 함께 선보임으로써 ‘따로 함께’의 내용을 한꺼번에 드러낸다. 즉 ‘개인 작품 소개(따로)와 공동 작품 실험(함께)’이 동시에 이루어진 전시가 된다. 이러한 ‘따로 함께’의 전시 유형은 각기 창작의 감각과 색(色)이 다른 세 작가의 작업이 어떻게 하나의 작품으로 콜라보를 이룰 수 있는지를 관객으로 하여금 가늠하게 만드는 주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뿐만 아니라 향후 노년의 작가들이 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따로 함께’ 창작에 임할 이들 세 작가의 행보를 가늠하게 만들기도 한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삼인의 청년 작가들의 개별적인 작품 세계를 먼저 들여다보고 이들이 함께 하는 콜라보가 어떤 시너지를 불러일으키게 되었는지를 가늠하고 따져 묻고자 한다. 


포스터 


II. 따로 - 삼인의 청년 작가들 
최은철 / 그의 작업에서는 인간 문명에 대한 다양한 비유들이 펼쳐진다. 그것은 대개 한 방향에서 새들의 이미지로 표현되며, 또 다른 방향에서는 설탕을 쌓아올린 설치물로 표현된다. 
먼저 최은철에게 ‘새’는 인간에 대한 은유이다. 개별체로 존재하면서도, 무리를 이루어 함께 거주하고 이동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최은철은 ‘개별 주체’로서의 인간과 ‘사회적 주체’로서의 인간의 존재론을 이들 ‘새의 무리’에게서 찾아낸다. 보라! 드로잉 작품 〈대중(Mass)〉에서 까마귀와 인간은 몽타주의 언어로 뒤섞인다. 새들의 무리 안에는 인간의 존재가 뭉뚱그려 하나처럼 인식된다. 근거리에서 세부 형태가 명확하게 보이는 이들의 모습은 원거리에서 그저 하나의 무리처럼 덩어리로 보일 따름이다.  
또 다른 작품 〈설탕도시(Sugarcity)〉에서는 인간 주체의 문제보다 인간 문명의 문제의식에 보다 더 집중한다. 현대인이 자신을 위한 거주지로 고려한 ‘도시’에 관한 이미지가 바로 그것이다. 도시는 인간 문명의 대표적 이미지이며 빌딩과 같은 건축적 구조물은 도시의 가장 함축적인 구조물이다. 그것은 편의와 실용에 기초한 산뜻한 이미지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건조하다. 
최은철은 이러한 도시의 양면성을 각설탕을 무수히 쌓아 올려 표현한다. 각설탕은 최은철이 구축하는 도시의 구조적 모듈이다. 이것들이 집적된 ‘설탕도시’는 인간 문명이 추구하는 달콤한 욕망과 그것이 초래한 현대적 질병을 함께 함유한다. 또한 그것은 차은철이 작가노트에서 피력하고 있듯이 ‘당뇨병, 비만 등 온갖 질병의 발생률을 높인다는 이유로 일부 국가에서 실시되는 설탕소비세(Sugartax)’의 문제로 확장된다. 이러한 세금은 또 다시 사회 계층을 부자와 서민으로 나누며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초래’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 뿐인가? “단단해 보이지만 상대적으로 쉽게 부서지고 액체와 닿는 순간 사라져 없어지는” 설탕이라는 재료의 변주 가능성은 현대의 인간 문명이 지닌 각종의 범죄의 가능성들과 병적 징후들과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현대 도시인의 희로애락의 일상과도 연계된다. 즉 도시의 한 인간 주체가 복잡한 타자와의 관계망을 만들면서도 스스로를 계층화시키는 가운데 자신을 위치시키는 구별의 사회학이 그의 설탕도시에서 전면적으로 펼쳐지는 셈이다. 


최은철, Sugarcity, 각설탕, 480 X 480 X 30 cm (가변설치), 2016


 
루카스 타인(Lukas Tein) / 그의 작품 세계는 다년간 “자연, 풍경 그리고 문명 개화론을 주제로 한 회화 작업”이라고 소개된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작업은 자연과 환경으로부터 온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가 자연 또는 삶의 환경에서 채집된 오브제들을 개량해 모으는 아카이브식의 진열의 방법론을 선호하거나 그 오브제들 위에 드로잉과 페인팅을 겹쳐 놓으면서 ‘자연물과 오브제 자체를 예술 작품화하는 일’을 에스키스의 하나처럼 수시로 감행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게다가 그의 작업은 ‘자연-회화’가 다시 ‘자연-설치’의 언어로 확장되어 간다는 점에서 ‘자연과 환경’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루카스 타인의 작품이 함유하는 주제 의식 안에는 인간과 자연 그리고 환경이 함께 있다. 더 구체적으로는 인간 옆에 지속적으로 ‘자연과 환경’이 위치한다. 자연의 식물이 건조된 채 보관되고 기록되면서 조형 예술이 되고 우리 삶의 환경 속에서 무심히 ‘발견된 오브제들(Objets trouvés)’이 그가 낡은 실로 실행하는 바느질로 꿰매지고 연결되면서 ‘만들어진 오브제들(Objets créés)’이 되어 가는 과정 자체가 그의 작업이다. 자연과 환경으로부터 수집한 종이, 섬유질, 공산품, 조형물 등 각종 오브제들과 그것들에 가하는 조형 행위가 어우러진 그의 작업들은 피상적으로 총체적인 양상을 지향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매우 개념적이거나 소규모의 양상을 지향한다. 


루카스 타인, The Alpsflora of the Alexander Berthold, 믹스미디어, 가변설치, 2016




전미현 / 그녀의 작업에서는 나와 너 사이에서 우리와 당신들 사이에서 펼쳐지는 인간관계의 지형도가 그려진다. 이러한 인간관계의 지형도는 대개 명료하게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나라는 주체와 2인칭, 3인칭의 단수와 복수의 타자들로 쉽게 이원화되거나 명징하게 범주화되지 않은 채로 복잡하게 얽혀지거나 뭉뚱그린 상태로 던져지는 것들이다. 관계의 애매모호함은 인간관계의 지형도의 복잡다기함으로부터 나온다. 작가 자신이 벌써 누구의 딸, 동생, 친구, 선생, 제자와 같은 다양한 상태로 지속적으로 다시 정의되면서 호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미현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관계의 작용이 존재, 그리고 존재의 가치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어머니의 가슴에 안긴 갓난아이의 이미지를 천 위에 크게 형상화한 작품  ‘파든마돈나(Fadenmadonna)'는 매듭 없이 불규칙적인 방식의 바느질로 꿰매어 형상을 만든 ’실로 된 마돈나’이다. 이 작품은 인간이 “탄생 직후부터 분리된 관계에 대한 그리움이 시작”이라는 내용을 표현한다. 즉 아기가 어머니로부터 분리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해 나가듯이 인간관계는 원래 분리되는 것들을 그리워하면서 시작되고 있다는 인간 존재의 주제 의식을 조형화한다. 이러한 인간 존재의 주제 의식은 ’어머니와 아이‘의 사이뿐 아니라, ‘남과 여, 아이와 어른’의 사이에서 스멀스멀 자라는 것들이다.   
나아가 그것은 비단 인간관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신과 인간’은 물론이며 ‘인간과 자연, 인간과 문명, 인간과 비물질적 존재’ 모두를 아우르는 관계의 지형도를 그린다. 나아가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고 현재는 실재하지 않는 주체(사물)이거나 아예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 대상과 맺는 관계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관계의 다양성이자 관계의 상대성을 지향해 나간다. 상대화의 관계 속에서 타자로부터 나를 객관화하면서 들여다보는 일은, 관객을 또 다른 창작의 주체로 간주하려는 그녀의 상호 작용적 작업 속에서 구체화된다. 작가의 경험이 관객에 의해서 공유되고 소통의 이름으로 확장되면서 관계의 지평이 드넓게 해석되어 갈 수 있기에 때문이다.  


전민현, Untitled_Fadenmadonna, 천 위에 실, 240 X 200 cm, 2014




III. 함께 - 재기발랄함과 진지함 사이의 콜라보 실험 
3인의 청년 작가들이 ‘따로’ 그리는 개별적인 작품 세계를 우리는 ‘인간/문명(최은철) - 인간/자연/환경(루카스 타인) - 인간/관계(전미현)’처럼 거칠게 범주화해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세 청년 작가들이 공동으로 견지하는 협업 즉 콜라보의 세계는 어떠할까? 삼인의 청년 작가들이 그리는 콜라보 실험은 제도권 작가들이 구축한 정형화된 조형 언어의 관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실험이라는 이름으로 지속적으로 변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탐구한다. 즉 삼인의 작가들은 미술 창작이라는 것이 타 작가들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정형화된 조형 언어를 마치 브랜드처럼 찾고 구축하는 일이 아니라 타 작가들과 부딪히거나 겹쳐지는 조형 언어마저 재검토하고 연구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 실험 그 자체임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러한 창작 태도는 미술이라는 것이 ‘자기 것’을 찾아낸 하나의 브랜드가 아니라 실험이라는 이름 밑에서 찾아가는 ‘무수한 가능성’임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런 까닭일까? 세 청년 작가들의 협업에는 재기발랄함과 진지함이 함께 묻어난다. 서로가 비슷한 듯 다른 작업을 펼치고 있는 세 작가, 그것도 성별이 다르고 국적이 다르고 성장 과정이 다른 작가들이 함께 펼치는 공동의 협업은 처음부터 예측 불허를 낳는다. 협업은 시차를 두고 벌어지거나 처음부터 한꺼번에 혼란스럽게 뒤섞여 일어나기도 한다. 그것은 때로는 게임처럼 즐겁고 활력이 넘치는 것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힘든 노동의 것이기도 하다. 심지어 한국 작가 2인은 독일에 있는 루카스 타인과 항공 우편으로 작품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순차적인 콜라보를 이어가는 번거로움까지 진지하게 수렴하기도 한다. 


3인의 콜라보 작업 

이처럼 이들의 콜라보 안에는 마치 릴레이 경기 중 ‘테이크오버존’에서 바턴을 주고 넘겨받는 역동적인 순간의 재기발랄함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주고받을 바톤을 분별하고 그 시간과 공간을 유심하게 살펴보는 진지한 성찰이 함께 자리한다. 젊은 청년이라는 공통의 정신세계가 만들어 내는 커다란 힘에 기인하는 까닭이라고 하겠다. 그런 면에서 스스로의 작업을 점검하고 공동의 참여를 콜라보의 형식으로 실험하는 이들의 ‘따로 함께’의 전시는, 분리와 화합이, 자율성과 총체적 고민이 나뉘고 뒤섞이는 역동적인 면모를 드러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

출전 / 
김성호, 「세 청년들의 또 다른 콜라보 실험 - 따로 함께」, 『2017대안공간 자료집』, 《Take over zone전-최은철, 전미현, 루카스 타인》 (대안공간 눈, 2017. 6. 30-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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